당김이라는 주체적인 행위
APE EXPANSION 아티스트 콘텐츠: STRATA 〈당기시오〉
당김이라는 주체적인 행위
2026 APE EXPANSION 선정팀 STRATA의 〈당기시오(The Pull)〉를 소개합니다. 스스로 방문을 열지 못하는 은둔·고립 청년들이 온라인에 남긴 일상의 기록을 혼합현실(MR) 공간으로 옮기고, 관람객이 실물 문 오브제를 통해 그 정서를 함께 감각하는 설치 미디어 아트입니다.
'지층'이라는 뜻의 팀 이름처럼, 서로 다른 분야에서 각자의 결을 쌓아온 세 사람. 조소연, 유영재, 백준현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Q1. 팀과 멤버를 소개해 주세요. 서로 어떻게 만나 지금의 팀이 되었는지, 그 여정에서 에이프캠프는 어떤 자리였는지 궁금합니다.



[STRATA] 조소연 (기획·연출) · 유영재 (AI 파이프라인 및 앱개발) · 백준현 (3D 그래픽 및 인터랙션 구현)
조소연 |
안녕하세요 팀 STRATA의 조소연입니다! 저희는 유영재, 백준현, 그리고 저 조소연, 이렇게 세 명으로 이루어진 팀입니다. '지층'이라는 뜻의 팀 이름처럼, 서로 다른 분야에서 각자의 결을 쌓아온 세 사람이 모였습니다. 기획과 프로듀싱을 맡은 저, AI 엔지니어인 영재님, 3D 그래픽과 인터랙션을 만드는 아티스트 준현님. 이 세 겹이 포개지면서 지금의 STRATA가 완성됐습니다.
저희가 처음 만난 건 2024년 에이프캠프였습니다. 이후로도 종종 서로의 활동을 지켜보며 지내다가, 2026년 이번 지원사업을 계기로 처음 함께 작업하게 됐습니다. "우리 한번 같이 해보자"는 영재님의 제안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에이프캠프는 단순히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는 장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지 나누고, 함께 미션을 수행하며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좋았던 기억이 커서, 저는 올해 2026년 캠프에도 다시 참여하게 됐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에이프캠프에서 영감을 주고받고, 함께 작업할 동료를 만나는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Q2. 이번 프로젝트를 아직 모르는 독자에게 세 문장으로 소개한다면요? 그리고 수많은 주제 가운데 '지금, 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결심한 이유도 들려주세요.

〈당기시오〉 컨셉 이미지(AI 생성)
조소연 |
"당사자의 일상과 삶이,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저희는 이 질문 하나로 은둔·고립 청년의 기록을 문 하나 너머의 공간으로 옮겼습니다. 예술과 기술이 소외된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묻는 프로젝트, 〈당기시오〉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당기시오〉는 스스로 방문을 열지 못하는 은둔·고립 청년들이 온라인에 남긴 일상의 기록을 혼합현실(MR) 공간으로 옮기고, 관람객이 실물 문 오브제를 통해 그 공간에서 이들의 정서를 함께 감각하도록 만든 설치 미디어 아트입니다.
저희가 소외 공동체 중에서도 은둔·고립 청년을 택한 이유는, 저희 역시 같은 세대의 청년이기 때문입니다. 취업이든 관계든, 각자의 방식으로 불안을 안고 살아가지만, 이들은 그 불안을 나눌 창구조차 갖지 못한 채 혼자 짊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순간 이 이야기는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Q3. APE EXPANSION의 키워드는 '확장'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무엇이 어디까지 확장되어 있기를 바라시나요.

공유 플랫폼 컨셉 이미지 — AI 생성
조소연 |
이번 프로젝트를 확장이라는 키워드로 본다면, 저는 〈당기시오〉를 앞으로 그리고 있는 플랫폼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으로 이번 작업 자체가 작품이 확장해나가는 과정의 한 단계인 셈입니다.
다음 단계로 그리고 있는 건, 작품과 아티스트를 오픈소스로 공유하는 플랫폼입니다. 개발자들이 자신의 코드를 나누는 깃허브처럼, 예술계에도 서로의 작업과 방법을 열어두고 나눌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습니다. 참여자가 창작자가 되고, 창작자가 다시 참여자가 되는 순환이 만들어진다면, 그 안에서 예술 생태계는 지금보다 더 넓고 깊고 다양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그 순환의 첫걸음이 놓여 있기를 바랍니다.
Q4. 문에 붙은 가장 흔한 안내문 '당기시오'가 제목이 되었습니다. 밀어서 들어가고, 당겨서 나오는 이 평범한 동작에 담으신 의미부터 들려주세요.
백준현 |
저희는 '문'을 핵심 오브제로 선정한 후, 문을 열고 닫는 행위 자체가 콘텐츠의 시작과 끝을 완성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여닫이문은 이용자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밀기'와 '당기기'라는 상반된 행위를 요구합니다.
저희가 제목을 '미시오'가 아닌 '당기시오'로 정한 이유는, 은둔고립 청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방 안'의 시점을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방 안에 서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문을 열 때 필요한 동작이 바로 '당김'입니다. 이는 청년들이 스스로 방문을 당겨 열고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과도 궤를 같이합니다. 콘텐츠의 최종 지점에서 관람객이 직접 경험하게 될 이 '당김'이라는 주체적인 행위를 핵심 주제로 삼아 프로젝트 제목에 담았습니다.
Q5. 피칭덱부터 작품 구조까지 README, issues, contributors 같은 깃허브(GitHub)의 문법을 가져오셨습니다. 오픈소스라는 형식이 이 프로젝트의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조소연 |
오픈소스라는 형식을 가져온 이유는, 이 프로젝트의 주제 자체가 '공유'와 '재생산', 그리고 '연결'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되기 때문입니다.
은둔·고립이라는 상태는 결국 연결이 끊어진 상태입니다. 저희는 이 단절을 다시 잇는 방법으로, 누군가의 것을 다른 누군가가 열어보고 이어받아 다시 세상에 내놓는 오픈소스의 구조를 가져왔습니다. 은둔 청년들이 익명으로 남긴 일상의 흔적은 그 자체로 닫혀 있지 않고, 관람객이 공간을 탐색하며 함께 완성해가는 열린 재료가 됩니다. 관람객이 그 흔적에 응답하며 공간의 왜곡을 풀어나가는 순간, 당사자의 기록은 다시 한번 소리와 감각으로 재생됩니다. 오브제를 만질 때 흘러나오는 건 다름 아닌 당사자의 목소리와 기록이고, 관람객 한 명 한 명이 그 흔적과 만날 때마다 당사자의 삶은 새롭게 재생산됩니다. 한 번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관람객을 만날 때마다 다시 살아나는 예술이 되는 셈입니다.
깃허브에서 코드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계속 고쳐지고 확장되듯, 이 작품도 누군가의 일상이 다른 누군가의 손을 거쳐 계속 살아있는 이야기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픈소스라는 형식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람객은 낯선 타인의 삶을 '나와 연결된 것'으로 느끼게 됩니다. 저희가 감동이라 부르는 감정은, 결국 이 연결의 순간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Q6. "접근성·포용성은 배려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회원가입 없는 익명 링크, 휴대폰만으로 가능한 참여처럼 '처음부터 누구나 진입하도록 설계한다'는 원칙이 실제 참여 과정에 어떻게 녹아 있나요.

고립은둔청년 공동체 관련 기관 온라인 줌 회의
유영재 | 이번 전시를 위한 데이터 수집 과정에서 은둔 청년들은 단순한 데이터 제공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술 작품 생성에 기여하는 활동가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이를 위해 새로운 전용 모바일 앱을 개발할 예정이며, 이 앱을 통해 청년들은 개인의 정보 입력 없이 접속하여 자신을 익명화한 뒤 안전하게 자신을 디지털 환경에서 표현하게 될 것입니다. 입력된 정보는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되어 스스로 확인하는 한편 참가자 그룹 간 긍정적 상호작용을 위한 공유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 것입니다.
Q7. 여러 청년의 하루를 하나의 가상 페르소나로 합치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개인은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가짜는 아닌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AI 파이프라인에서 가장 지키려는 것은 무엇인가요.
유영재 |
실제 사람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상의 디지털 휴먼, 혹은 가상 페르소나를 만들려는 일은 최근에 AI를 통해 더욱 관심 있게 시도되고 있는 방법입니다. 저희도 이번 전시에서 관객들에게 스토리텔링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마치 KBS의 '다큐 3일' 프로그램과 유사하게 한 명의 은둔형 청년을 가상 페르소나로 만들어 전시의 몰입감을 높이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실제 프로그램 참가자들로부터 수집되는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은둔형 청년의 특성과 어려움, 그리고 앞으로의 희망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오브제 기반 에피소드를 통합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현장의 전문가들과 미팅을 시작하며 알게 된 사실은, 생각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청년들이 실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참가자들 각 개인의 특성과 그 자체로의 가치를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형태로 새롭게 방향성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Q8. 간호사로 일한 임상 경험, 청년 우울 완화 AI 연구, 몰입형 3D 작업. 서로 다른 결이 겹겹이 쌓여(STRATA) 이 프로젝트가 되었는데요. 세 사람의 층위가 실제로 포개졌던 순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조소연 | 세 사람의 층위가 실제로 포개졌던 순간을 꼽자면, 이번 지원사업의 주제를 정하던 때였습니다. 한 가지 주제를 두고 각자가 이걸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은지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다른 결이 드러났습니다. 간호사로 일하며 봐온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우울과 고립을 연구해온 AI 엔지니어의 시선, 공간을 감각적으로 설계해온 3D 아티스트의 눈. 같은 주제 앞에서도 세 사람이 전혀 다른 지점에서 반응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다른 반응들 안에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나가는 과정 자체가, 저희에게는 STRATA라는 이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Q9. '오래 머물수록 천장이 내려오고 문이 멀어진다'는 연출이 서늘하게 다가옵니다. 고립의 시간을 공간의 왜곡으로 번역할 때 참고한 감각이나 증언이 있었나요.
백준현 | 연출적인 부분은 제작 과정에서 조정될 수 있지만, 우선 '천장이 내려오고 문이 멀어진다'는 연출은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발상입니다. 답답한 고민이 있을 때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천장이 이마에 닿을 것처럼 내려오면서 공간이 나를 옭아매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는 이러한 저의 경험처럼, 은둔고립 청년들이 방 안에서 느꼈던 각자만의 사적인 감각과 경험들을 직접 들어보고 연출을 통해 이를 작품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표현하려는 '방'은 단순한 실내 공간이라기보다 청년들의 내면을 담은 '하나의 세계'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청년들 각자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간을 왜곡하는 등 다채로운 연출 방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Q10. 가상 공간의 입구가 스크린이 아니라 아두이노 센서가 달린 실물 문틀입니다. 진짜 문이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프로토타입 테스트 장면 / 아두이노로 만든 프로토타입
백준현 |
방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행위 자체가 저희 콘텐츠의 시작과 끝을 완성하기 때문입니다. HMD를 쓰고 마주하는 VR 공간 속 연출은 현실보다 시각적으로 화려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물리적 촉감이나 무게감을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관람객이 손으로 직접 잡고 움직일 수 있는 실제 상호작용 요소를 반드시 배치하고 싶었습니다.
아울러 단순한 문틀에 그치지 않고 아두이노 장치를 직접 제작해 결합하려는 이유는, 문이 열리는 각도를 실시간으로 트래킹하기 위해서입니다. 실물 문이 움직이는 각도를 VR 공간 속 문에 그대로 연동함으로써, 관람객이 현실 세계에서 가상 세계로 자연스럽게 이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콘텐츠를 모두 체험하고 나와 다시 그 실물 문을 마주했을 때, 들어가기 전 보았던 문과는 전혀 다른 감정으로 '문'과 '방'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한 번 더 깊이 되새겨볼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Q11. 전시가 끝나면 익명 데이터셋과 3D 소스를 개방하고, 참여 경험이 은둔형 청년의 인식·정서·행동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논문으로 잇겠다고 하셨습니다. 작품이 데이터가 되고, 데이터가 다시 다음 창작과 근거가 되는 순환으로서의 이 플랫폼의 청사진을 조금 더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소연 |
이 플랫폼의 청사진은, 작품이 끝난 자리에서 새로운 순환이 시작된다는 데 있습니다.
전시가 끝나면, 이번 과정에서 모인 익명 데이터셋과 3D 소스를 공개합니다. 저희가 만든 재료를 다른 창작자들이 가져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쓸 수 있도록 여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번 참여 경험이 실제로 은둔·고립 청년들의 인식과 정서, 행동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연구 논문으로도 기록합니다. 예술적 실험으로 시작한 작업에 학문적 근거가 더해지는 셈입니다.
그렇게 작품은 데이터가 되고, 데이터는 다음 창작의 재료가 되고, 그 경험은 논문이라는 근거로 남아 다시 다음 작업을 뒷받침합니다. 저희가 만든 하나의 작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순환을 거치며 계속 자라나는 무언가가 되는 것. 그것이 저희 플랫폼이 그리는 청사진입니다.
[인터뷰이]
APE EXPANSION STRATA(조소연, 유영재, 백준현)
[인터뷰어]
APECAMP 2023 참여자 · 2026 협력기획자 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