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하시겠습니까? 세 개의 플러그인으로 읽는 아트앤테크
제1회 아르코 예술기술융합 청년 포럼
실행하시겠습니까? 세 개의 플러그인으로 읽는 제1회 아르코 예술기술융합 청년 포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에이프캠프(APE CAMP)는 예술가(Artist) · 기획자(Producer) · 기술전문가(Engineer) 120인이 3박 4일간 예술-기술 협업 프로젝트를 만들고 나누는 캠프다. 올해로 5회를 맞았고, 그 둘째 날 청년 포럼이 새롭게 도입되었다. 형식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이 포럼의 만듦새다. 기관이 의제를 내려보내고 청년이 받아 적는 자리가 아니라, 캠프를 거쳐 간 알럼나이들이 연구위원으로 기획 단계부터 들어와 의제를 직접 세웠다. 정책의 수혜자가 담론의 주체가 되는 상향식 거버넌스다. 여기서 나온 제안은 향후 에이프캠프 사업과 정책 수립에 반영된다. 포럼이 그대로 하나의 연결고리가 된다.
세 연구위원 곡수인·한단비내린·배준형이 내건 대주제는 「플러그인: 90년대생 연구위원이 본 한국 아트앤테크의 조건」이다. 판을 갈아엎자는 것도, 새 판을 짜자는 것도 아니다. 이미 돌아가는 시스템 위에 각자 벼려 온 작은 부품을 하나씩 끼워 넣겠다는 말이다. 선언 대신 지금 작동하는 것을 들고 나오겠다는 감각이 세 세션을 잇는다.

말하기와 침묵의 일곱 테이블: 곡수인, 「피노키오 코 안 자라는 플러그인」
포럼의 문을 연 곡수인의 세션은 발표가 아니라 자리 만들기였다. 부제는 '제페토의 거대한 공방: 말하기와 침묵의 일곱 테이블'. 에이프캠프 참가자와 외부 참관객을 합쳐 약 150명이 공방의 손님으로 들어왔다.
점심시간부터 준비가 시작됐다. 마술사 홍의택이 테이블을 돌며 클로즈업 마술을 선보였고, 각 테이블에는 마술과 짝지어진 '메타포 질문 팜플렛'이 놓였다. 세션의 주제로 스미듯 진입시키는 장치였다. 스테이지 마술로 문을 연 뒤, 참가자들은 게임마스터가 지키는 일곱 개의 테이블을 10분 단위로 옮겨 다녔다. '닉네임 주사위' 같은 미니게임을 통해 소속과 경력이라는 라벨 없이 자기를 드러내는 실험이 반복됐다. 규칙은 하나, 피노키오 룰의 전복이다. 이곳에서는 어떤 말을 해도 코가 자라지 않는다. 침묵해도 자라지 않는다. 거짓말도 우회도 농담도 관찰도 모두 정당한 발화로 친다.

유쾌한 장치 밑에는 날카로운 진단이 깔려 있다. 곡수인이 리서치로 짚어낸 90년대생의 발화 조건은 양극단으로 찢겨 있다. 한쪽에는 지원사업 서류와 자기 마케팅이 강요하는 과잉 발화, 곧 자기증명과 감정노동이 있다. 다른 쪽에는 우회·관찰·밈·농담·가면으로 이루어진 다층적 침묵이 있다. 우리의 진짜 목소리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들리지 못한 채 머문다. 누가 말할 수 있고 누구의 말이 들리는가를 물었던 자크 랑시에르의 '감각의 분배', 관객을 행위자로 바꾸는 아우구스토 보알의 포럼 시어터가 이 세션의 배경 리서치에 놓인 이유다. 다만 곡수인은 이론을 강연으로 풀지 않았다. TRPG(장세진 자문)와 마술이라는 동시대의 문법으로 옮겨, 90분짜리 공간 설계로 시연했다.
협업이 기본값인 아트앤테크 필드에서, 정작 협업의 전제 조건인 '위계 없이 말하고 들리는 환경'은 좀처럼 설계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곡수인은 그 빈자리를 발화 환경의 미시 실험으로 채웠다. 산출물인 「소통 프로토콜 매뉴얼」은 이어지는 두 세션과 포럼 전체의 운영 인프라로 되돌아가도록 기획됐다. [검수 필요: 매뉴얼의 실제 제작·배포 여부와 공개 형태] 우화에 나오는 한 문장이 그대로 이 세션의 방법론이자 결론이다. "제페토는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자리를 만들었다."

곡수인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한 연극 연출가이자 드라마투르그, 융합예술가다. 에이프캠프 1기와 2기 캠퍼로 참여했고 지난해에는 퍼실리테이터로 캠프에 돌아왔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흔드는 연극적 사유를, 이번에는 포럼이라는 형식 안에 옮겨 심었다. 이 세션의 마술과 게임 설계는 마술사 홍의택, TRPG 자문 장세진, 게임마스터 6인과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박제된 전통을 다시 우려내기: 한단비내린, 「전통을 우려먹는 플러그인」
제목부터가 논평이다. 한단비내린이 보기에 한국의 전통은 식민지배와 전쟁, 한 세대에 몰아친 압축 근대화를 지나며 천천히 변할 여유를 얻지 못한 채 삶에서 끊겨 있다. 1962년 무형문화재 제도가 무형의 예술을 '원형(原型)'으로 박제하면서, 전통은 일상에서 무대와 교과서로 옮겨 갔다. 지금 우리가 쥔 것은 전통이 아니라 전통의 상징이다. BTS의 아리랑을 둘러싼 자부심과 거부감의 공존이 그 혼란을 드러낸다. 우리가 아는 전통의 상당 부분은 20세기의 발명품이다. 물려받은 답이 없다는 건, 무엇이 한국적인지가 지금 우리가 쓰는 만큼 정해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권리와 책임이 단절도 발명도 K콘텐츠의 부상도 모두 통과한 80·90년대생에게 있다고 본다.
그는 전통을 기술로 옮길 때 생기는 마찰을 넷으로 정리했다. 해금에서 출발한 김예지, 미디어아트 아트디렉터 신효흔, 인형극·탈춤·창작판소리에서 AI 제작까지 넘나드는 조정현. 세 작가를 인터뷰해 얻은 결론은 배경지식의 간극, 서로를 보조로만 호명하는 외주식 협업, 도구의 편향, 그리고 끝내 수치로 환원되지 않는 것이다. 핵심은 도구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평균율에 기초한 MIDI가 국악의 음계와 시김새를 담지 못하듯, 모든 도구의 설계 원리에는 주류 문화의 작동 방식이 이미 새겨져 있다. 다이애나 테일러의 구분을 빌리면, 아트앤테크는 몸 바깥에 남아 다시 불러올 수 있는 '아카이브'만이 아니라 몸으로 전승되어 그 순간의 사건으로만 존재하는 '레퍼토리'까지 코드로 옮겨야 한다.
말로 그치지 않았다. 남도 시나위의 '틀 안의 자유'를 순환신경망(RNN)으로 학습시켜 연주자와 즉흥을 주고받는 AI 합주 동료를 만든 〈AI Sinawi〉, 국립국악원 정악단과 협업해 더는 연주되지 않는 세종 대의 두 곡이 끊기지 않았다면 어땠을지를 물은 〈육룡이 나르샤〉. 후자를 위해 그는 정간보를 읽는 광학악보인식 도구를 직접 만들어 학습 데이터를 현존하는 거의 모든 정악 85곡까지 넓혔고, 정간보의 시간 표기 원리를 그대로 옮긴 인코딩을 새로 설계했으며, 기존 연구가 버려 온 시김새까지 그 안에 담았다. 여섯 악기가 서로의 소리를 참조하는 헤테로포니 생성 순서도까지 구현했다. 결과물은 2024년 5월 경복궁에서 초연됐다. 방법론 논문은 그해 국제음악정보검색학회(ISMIR)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고, 프로젝트 전체는 TISMIR 저널 디지털 음악학 특별호에 실렸다.
여기에 뜻밖의 결합이 있다. 생성모델은 무에서 유를 발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분포를 익혀 그럴듯한 것을 샘플링하는 도구다. 그래서 정해진 규칙 안에서 변주를 거듭해 온 닫힌 분포로서의 전통음악과 오히려 잘 맞는다. 국악을 코드로 옮기며 무엇이 옮겨지고 무엇이 끝내 안 옮겨지는지 묻는 일 자체가 그 전통을 가장 깊이 들여다보는 방법이다. 발표는 세 가지 제언으로 닫혔다. 채보한 악보와 용어, 코드 같은 부산물부터 공개할 것. 결과물만이 아니라 과정과 데이터와 도구도 성과로 인정하고 긴 호흡의 리서치 트랙을 만들 것. 내 삶에 자각 없이 깃든 전통을 창작의 자산으로 돌아볼 것. 문화적 정체성은 완성된 과거가 아니라 매 시대 다시 쓰이는 진행형이라는 스튜어트 홀의 말을 빌려, 다음 장을 쓸 사람들에게 건네는 초대로 끝맺었다.

한단비내린은 해금 연주자이자 음악-AI 연구자다.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나와 서강대학교 아트앤테크놀로지학과에서 석사를 마쳤고, 현재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뮤직앤오디오컴퓨팅랩 박사과정에 있다.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국악분야 위원이며 에이프캠프 1기 캠퍼다. 〈육룡이 나르샤〉의 방법론 연구로 ISMIR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연주자의 몸에 남은 앎과 기계가 읽을 수 있는 데이터 사이를 오가며, 국악이 코드로 번역될 때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는지를 계속 묻는다.

격차의 시대, 인프라를 직접 짓다: 배준형, 「날먹 꿀팁 플러그인」
거저 이긴다는 게임 속어를 제목에 걸었지만, 내용은 정반대로 가장 품이 많이 든 인프라론이었다. 배준형은 예술가의 세대를 '각자가 처음 만난 시대의 충격'으로 읽는다. 80년대생이 만난 충격은 결핍이고, 90년대생인 자신이 만난 충격은 격차다. 2008년 금융위기 전후, 받쳐주는 손 하나 없이 사회에 나온 80년대생 예술가들은 2015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자생 아트페어 '굿-즈'처럼 스스로 시장과 공간을 닦았고, 그 목소리가 오늘의 신진 지원사업으로 이어졌다. 덕분에 90년대생은 안전장치 위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강력한 AI가 다음 병목을 만들었다. 'AI를 잘 쓰는 법'의 격차다. 만하임의 세대론, 하지타이와 반 다이크의 '2차 디지털 격차', 가진 쪽이 더 갖는 머튼의 '마태 효과'가 논거로 깔린다. AI는 모두의 수준을 고르게 올려주지 않는다. 격차를 벌린다. 그 요령은 교본에 없는 암묵지라서 흩어진 채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니 암묵지를 모아 필드에 나눠야 한다.
이 세대론은 갈등의 서사가 아니다. 발표는 90년대생의 출발선이 윗세대가 닦아 놓은 기반 위에 있음을 거듭 짚었고, 감사의 결을 잃지 않았다. 겨냥하는 과녁은 세대가 아니라 구조다. 시장 논리가 범용 업무 도구만 빚어내는 동안, 이 작은 필드는 제 몸에 맞는 도구를 가질 기회가 없었다는 것.
그는 격차를 메우려 직접 쌓아 온 것들을 네 층으로 나눠 무대 위에서 차례로 꺼냈다. 모든 프로젝트를 논문으로 남기는 1층 '기록'. 재료·기법 지식 베이스 ARDA, 서울 문화공간을 장르 교차로 검색하는 도슨트 BYLUX, 예술인 커리어 상담봇 CYMBA가 놓인 2층 '도구'.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치메이커 apecamp.link의 3층 '커뮤니티'. 아트앤테크 기관 78곳을 자연어 처리로 묶은 필드의 지도 ARTLAS와 한국 예술가 3만 명 페르소나 데이터셋이 놓인 4층 '필드 자원'. 소개된 연구와 도구는 현재 모두 저널 심사 중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실천은 배포에 있었다. 아이데이션을 돕는 '아트 프로젝트'와 논문 작성을 돕는 '아트 페이퍼', 무료 클로드(Claude) 플러그인 두 개를 발표장에서 그대로 공유했다. 주소(youthforum.xyz) 한 줄, 설치 30초. 발표를 듣던 사람이 그 자리에서 받아 갈 수 있었다.
도구에 새겨 넣은 윤리도 눈에 남는다. AI가 핵심 작품과 실질적 결정, 안목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코드에 규칙으로 박아 강제했다. AI가 작가의 자리를 침범할 위험은 '여섯 가지 해악'으로 적어 도구와 함께 공개했다. AI가 일을 대신하되 판단과 책임은 작가가 진다는 '바이브 아티스틱 리서치'의 제안이다.
그는 발표의 방점을 답이 아니라 질문에 찍는다. 무엇을 가장 먼저 필드의 공유 지식 인프라로 만들 것인가. 그 결정 권한은 누가 어떻게 갖는가. 지속가능한 인프라는 어떻게 구축되는가. 세 개의 미해결 질문을 객석에 던진 뒤, 함께 만들어 갈 공공기관을 찾는다는 공개 제안으로 발표를 맺었다. 그가 스스로 붙인 이름대로 이것은 LLM을 손에 쥔 한국 아트앤테크계의 '유쾌한 반란'이고, 무게는 '반란'이 아니라 '유쾌한'에 실려 있다. 발표 자료 전문은 제노도(Zenodo)에 공개되어 있다.

배준형은 고려대학교에서 미술(디자인조형학)을 전공하고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 공학 석사를 마쳤으며 오는 8월 박사 졸업을 앞두고 있다. 미술에서 공학으로 옮겨 왔지만 두 길을 함께 가고 있다. 음악 기반 동작 생성 AI와 문화기술 지식 시스템을 연구하는 한편, AI 시대의 편향과 오독을 유쾌한 체험으로 풀어내는 작가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대전시립미술관·Unfold X 등에서 작업을 발표해 왔다. 아트앤테크 네트워크 'APE Talk'의 PD를 맡고 있고, 에이프캠프 2기 캠퍼다.

곡수인이 위계 없이 말하고 침묵할 수 있는 자리로 시작을 열었다면, 한단비내린은 그 자리에서 무엇을 다시 읽을지 시선을 날카롭게 조율했고, 배준형은 그 시선이 오래 버티도록 도구와 데이터를 쌓았다. 어느 발표도 완결을 자처하지 않았다. 셋 모두 답이 아니라 질문을 객석에 넘기며 끝냈다. 그렇기에 그 질문은 이 포럼의 거버넌스를 타고 다음 해의 사업과 정책으로 되돌아온다.
기관이 마련한 무대에서 청년이 기관에게 협업을 역으로 제안하는 장면. 제1회 청년 포럼이 남긴 이미지 중 가장 낯설고, 가장 오래 남을 장면이다. 코가 자라지 않는 공방의 문은 이제 막 열렸다.
[글쓴이]
APECAMP 2023 참여자 · 2026 협력기획자 이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학사 ·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미디어아트전공 석사 졸업
문화예술 현장과 정책 사이의 접점에 관심을 두고 실천과 연구를 병행하는 창작 기반 연구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