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미래는 연습이 필요하다: 어린이의 목소리, 백남준의 어휘
2026 APECAMP 2nd Mission
용감한 미래는 연습이 필요하다: 어린이의 목소리, 백남준의 어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예측의 어휘를 꺼낸다. 그러나 올해 에이프캠프의 두 번째 미션이 요구한 것은 예측이 아니라 용기였다. 첫 번째 미션이 싱가포르예술위원회와의 합작으로 지금 여기의 분절을 겨눴다면, 두 번째 미션은 아시테지(ASSITEJ,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와 연계되어 지금 이후의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전 세계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공연예술의 발전을 도모하며 87개국이 참여하는 이 국제기구의 제22회 세계총회가 2027년 7월 22일부터 8월 1일까지 수원과 서울에서 열리는데, 총회의 주제가 바로 '용감한 미래(Brave Futures)'이다. 기존의 관습에 도전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가능성을 상상하라는 제안이다.
미션은 이 정신을 이어받되 하나의 질문을 두 개의 관점으로 나누었다. 트랙 A 아시테지 비전은 어린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 곧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일임을 일깨우며 '누구를 위한 미래인가'를 묻는다. 열쇳말은 미래 시민, 성장, 주체성, 다양성, 공동체, 세대 간 연결이었다. 트랙 B 백남준 세계관은 백남준 20주기를 맞아,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했던 그의 세계관을 출발점 삼아 '어떻게 미래를 상상할 것인가'를 묻는다. 열쇳말은 해체, 연결, 우연성, 오류, 비선형, 상상력. 관념의 유희를 막아 세운 것은 조건의 구체성이었다. 트랙 A에는 경기상상캠퍼스가, 트랙 B에는 백남준아트센터가 실재하는 장소로 지정되었고, 1천만 원 규모의 제작 예산이 기획의 전제로 명시되었다.
최종 피칭과 심사를 거쳐 스무 개 프로젝트 가운데 여덟 팀, 트랙 A 3팀과 트랙 B 5팀이 실험활동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피칭에는 반드시 네 가지 항목을 담아야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미션의 정의), '어린이' 또는 '백남준'이 있어야 성립하는 프로젝트인가(접근), 대상과 경험 방식과 결과물이 손에 잡히는 시나리오(제안), 그 변화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임팩트). 특히 두 번째 항목은 심사의 실질적인 문턱이었다고 할 만하다. 어린이를 소재로 동원하는 것과 어린이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 백남준을 인용하는 것과 그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트랙 A. 어린이의 목소리, 가능한 세계들
흙의 편에서 — 팀 5, Indiana Germs
도시적 삶은 우리를 자연 그리고 공생하는 미생물들로부터 떼어 놓았다. 팀 5는 세균이 곧 유해하다는 통념을 어린이와 양육자가 함께 통과하는 설치로 뒤집는다. 거대한 변기 입구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은 과잉 위생의 규범을 흘려보내는 의례. 지하의 모래 방에서 아이들의 실루엣은 프로젝션 속 미생물로 변신하고, UV 랜턴은 모래에 묻힌 유기물의 본모습을 비춘다. 고치 같은 터널을 기어 나가면 야외 놀이터가 열리고, 방문자들이 반죽을 덧붙여 함께 키우는 조형물이 자란다. 어른들이 불안 때문에 피해 온 흙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용감하게 끌어안는다. 접촉과 실험, 더러워지는 두려움을 넘어서는 데서 성장이 시작된다는 것이 이 팀이 정의한 용감한 미래다.
정답 대신 선택을 — 팀 2, 소리 놀이터
'5세 고시'의 한국과 조용한 놀이 공간의 싱가포르. 팀 2는 두 풍경에서 같은 문제를 읽는다. 아이들은 보호받지만 과잉 관리되고, 그 사이에서 증발하는 것은 선택의 경험이며, 선택의 결핍은 곧 주체성의 결핍이 된다는 것. 〈소리 놀이터〉는 듣기에서 선택하기, 만들기로 이어지는 참여형 사운드 설치다.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저마다의 소리를 채집하고, 바닥 센서 위에서 움직임을 소리와 색으로 바꾸고, 마지막 공간에서 노브와 페이더를 조작해 수집한 소리를 하나의 사운드스케이프이자 시각 조형으로 함께 빚는다. '내 소리가 공간을 바꿨다'는 실감이 '우리의 선택이 미래를 만든다'는 감각으로 자라나는 구조를 지닌다. 이 작품은 아이들의 선택과 놀이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션의 필연성 시험에 정면으로 응답한다.
용기의 통과의례 — 팀 17, 미래 돌잡이
팀 17은 돌잡이라는 오랜 통과의례를 미래형으로 고쳐 쓴다. 실과 돈과 연필 대신 놓이는 것은 부서진 워키토키, 끊어진 전선, 부서진 드론. 폐허의 도시를 배경으로 차려진 잔칫상에서 오브제를 집어 든 아이는 네 개의 테마 공간에서 용기의 미션을 수행한다. 고립을 뚫고 친구를 찾아 나서는 용기, 낯선 곳을 탐험하는 용기, 목표를 세우는 용기, 짝과 함께 균형을 잡고 나아가는 용기. 모두가 모여 오브제를 합치면 아이들이 상상한 미래의 풍경이 펼쳐지고, 여정은 'Brave Futures Passport' 발급으로 마무리된다. 축복의 의례가 폐허를 재건하는 집단적 리허설로 확장되는 것이다. 무엇을 잡는가만큼, 잡는 손을 지켜보며 축복하는 공동체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함을 새삼 일깨우는 작품이다.
트랙 B. 백남준이라는 출발점
사라질 줄 아는 악기 — 팀 20, 오래 살지 않는 집
백남준아트센터의 건물이 그랜드 피아노를 연상시키는 형상이라는 점, 그리고 피아노를 파괴하는 퍼포먼스였던 〈존 케이지에게 바침〉. 팀 20은 이 두 겹의 역사와 대화하며 부서지는 피아노를 분해되어 자연의 순환으로 돌아가는 피아노로 제시한다. 균사체(菌絲體)와 바이오 소재로 빚어진 악기는 시간이 흐르며 흙으로 회귀한다. 관객이 물을 분무하면 미분음(微分音) 인터랙션이 소리를 만들고, 만지는 손길은 피부 세포 같은 흔적을 남긴다. 부패하는 동안 냄새와 소음, 형상이 달라지니 언제 찾아왔는가에 따라 저마다 다른 작품을 만나고, 변화의 전 과정은 주기적으로 아카이빙된다. 더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사라질 줄 아는 것을 만드는 미래. 제 죽음을 받아들이는 기술 위에서 음악은 무상(無常)에 대한 명상이 된다.
불을 연행하다 — 팀 4, Performing Fire
기술 낙관론도 비관론도 인간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기는 마찬가지라는 진단에서 팀 4는 '우리에게는 그 미래를 맞이할 용감함이 있는가'를 되묻는다. 이들이 소환하는 것은 불이다.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처럼 액운을 사르고 복을 비는 불의 의례, 많은 사람이 장작을 주우면 불꽃이 더 높이 타오른다는 오랜 속담을 떠올리게 하는 〈Performing Fire〉는 프로젝션이 입혀진 패브릭 토템으로, 불기둥이 되었다가 원형의 의례 공간이 되기도 한다. 관객이 목소리와 글, 그림과 몸짓, 심박으로 미래의 조각을 보태면 AI가 패턴을 엮고, 패턴에 들어맞지 않는 글리치와 오역, 침묵과 인간적 오류는 토템 안의 샤먼-퍼포머에게 건네져 빛과 소리, 상징적 불꽃으로 변환된다. 숲을 태우는 대신 불을 연행(perform)하는 것. AI가 미래를 예측하는 신전을 상징적으로 불사르려는 열망은, 예측이 소화하지 못한 것들을 축복하는 의례로 완성된다.
70%의 지혜 — 팀 19, Margin of Error
1963년 백남준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 포스터에 작가는 이런 부제를 달았다. '어떻게 70%에 만족할 것인가.' 100%의 완벽은 부자연스러우며, 오류의 여지를 남겨 두어야 작품은 매번 다른 결과에 이른다는 것이다. 팀 19는 이 통제된 비결정성을 오늘의 AI에게 되돌려준다. 관객은 야외 벽면에 매립된 청음 장치에 소망과 미래에 대한 질문을 남기고, 실내에서는 디지털 신이 관객이 직접 고른 오차 범위에 따라 소원에 응답한다. 오류를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으로 경험하게 한다. 동시에 AI를 정답 생산 도구가 아닌 창조적 불확실성의 매체로 전용한다. 기도와 굿의 현대적 재해석이자 인간과 AI가 함께 미래를 상상하는 새로운 의례의 제안이다. 얼마만큼의 오차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미래에게 던지기에 이토록 겸손하고 실용적인 질문도 드물지 않을까?
세 개의 목소리 — 팀 3, AI 도깨비
팀 3은 기술을 단수(單數)로 사유하는 습관에 반기를 든다. 전능한 하나의 테크라는 이미지는 낙관이든 공포든 단순화를 부추긴다. 반면 한국의 도깨비는 처음부터 복수(複數)다. 저마다 성격이 있고, 실수투성이이며, 복잡한 존재로 그려진다. 작품 속 부엌에서는 스토브와 냉장고, 테이블이 저마다 욕심 많거나 수줍거나 다정한 AI 도깨비가 되어 관객의 움직임과 존재에 반응한다. 셋은 서로를 의식하며 대화하고, 관객이 구역 사이를 오갈 때마다 세 목소리는 미묘하게 변화한다. 기술은 말대꾸하고, 저항하고, 이따금 우리를 놀라게 한다. 가장 일상적인 부엌이 기술과의 장난스러운 공생을 연습하는 무대가 되는 셈이다. 하나의 전능한 기계 대신 여럿의 별난 이웃들과 관계 맺는 미래. 이 작품이 상상하는 용감함이다.
가라앉는 오리의 용기 — 팀 11, How to make a rubber duck sink?
미래는 늘 더 빠르고, 더 똑똑하고, 더 유용한 것으로 상상되지만, 팀 11은 정반대에서 시작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야말로 용감한 행위라면? 이들이 지키려는 것은 쓸모없음, 곧 휴식과 거절, 오류와 침묵이 살아남는 미래다. 욕조에 러버덕 한 마리가 떠 있다. 오리의 유일한 기능은 뜨는 것. 그런데 관객이 다가서면 가라앉고, 물러서면 천천히 다시 떠오른다. 유용하게 응답하겠다는 인터랙티브 기술의 약속을 배반하는 장치이자 실패가 곧 '성공적' 상호작용인 작품인 것이다. 낚싯줄과 숨은 모터면 족한 이 소박한 기술은, 기술을 오용하고 해체하고 낯설게 만들었던 백남준의 반예술과 유머를 계승한다. 가라앉는 오리 위로 팀은 생산의 궤도에서 잠시 내려섰다는 이유로 실패자로 불리는 한국의 청년들을 겹쳐 읽는다. 필요한 미래는 또 하나의 유용한 기계가 아니라, 쓸모없음이 생존할 수 있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여덟 개의 프로젝트를 나란히 놓으면 두 렌즈는 결국 서로를 비춘다. 흙과 소리와 의례를 경유해 미래의 주체를 묻던 트랙 A의 대답들은, 소멸과 불과 오류와 도깨비와 무용(無用)함으로 상상의 방법을 실험한 트랙 B의 대답들과 하나의 확신을 공유한다. 미래는 예측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연습해 보는 무엇이라는 확신이다. 선정된 프로젝트들은 에이프랩의 실험활동 지원을 거치며 구체화되고, 오는 12월의 프로젝트 공유회와 2027년 1월의 전시·쇼케이스에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그리고 2027년 여름, '용감한 미래'를 내건 아시테지 세계총회가 트랙 A의 무대인 경기상상캠퍼스의 도시 수원에서 열린다. 종이 위의 시나리오가 장소와 신체를 만나는 순간, 미션의 진짜 시험이 시작될 것이다.
[글쓴이]
APECAMP 2023 참여자 · 2026 협력기획자 이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학사 ·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미디어아트전공 석사 졸업
문화예술 현장과 정책 사이의 접점에 관심을 두고 실천과 연구를 병행하는 창작 기반 연구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