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예술과 기술: 더불어 살아가기
최은총(2025년 제4회 에이프캠프 참여자, 독립기획자)
한국, 그리고 예술과 기술1)
한국에서 예술과 기술이 함께 호명되기 시작한 것은 인류가 맞이한 기술 전환의 시대에 발 빠르게 적응해 온 한국의 기술사와 사회적 흐름과 떼어놓을 수 없다. 한국은 새로운 기술 환경이 등장하는 기술 전환기마다 감각 구조를 빠르게 재편해 온 사회이다. 21세기로 접어들며, 한국은 기술 전환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스스로를 ‘정보화 사회’, ‘IT 강국’으로 정체화하고자 했고,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시작한 가운데 한국 사회는 전국적으로 초고속 인터넷망을 빠르게 구축하면서 실제로 한국은 정보통신의 강대국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2) 이 시기 예술계 또한 정보 기술과 네트워크 환경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재편의 움직임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드러내는 장이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서는 큐레이터 김홍희, IBM 미술관장을 지낸 신시아 굿맨(Cynthia Goodman), 작가 백남준이 공동으로 기획한 특별전 《정보예술전》이 개최되었는데, 이는 정보 기술 기반의 예술 작업들을 대규모로 소개하며 기술과 예술의 접점을 가시화한 대표적 사례였다. 당시 전시는 본전시의 92명의 작가와 88점의 작품을 상회하는 94명의 작가와 90점의 작품을 선보인 대규모 전시로, 정보사회 속 예술의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는 장으로 소개되었으며, 네트워크 기반의 비물질성, 실시간 상호작용, 그리고 시공간을 넘는 연결 가능성을 예술 경험 안으로 끌어들였다.3) 이는 1990년대 월드와이드웹(WWW)의 확산 이후, 웹 브라우저와 하이퍼링크, 인터넷 환경 자체를 예술의 매체로 활용하기 시작했던 국제적 흐름과도 시차 없이 맞물린 것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2000년 출범한 제1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미디어_시티 서울, 즉 오늘날의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로 이어진다. 당시 서울시는 디지털 정보사회와 첨단 미디어 도시라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구축하고 있었고, 비엔날레 역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출발했다. 전시 도록에는 “첨단 미디어 도시를 상징하는 대표적 비엔날레”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비전이 담겨 있었으며, 컴퓨터와 인터넷 등 디지털 기술 환경 속에서 변화하는 예술의 형식을 조망하고자 했다.4) 위 두 비엔날레의 사례는 한국에서 기술 전환기마다 새로운 기술과 예술 형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했던 시도를 보여준다. 이와 더불어 기술과 사회, 그리고 예술은 서로를 반영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변화해 왔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새로운 감각과 예술 형식을 가능하게 하는 장 또한 지속적으로 형성되어 왔다.
그리고 지금, 또 한 번의 기술 전환기가 도래하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그 인프라를 지탱하는 반도체 산업과 데이터 산업 역시 전례 없는 규모로 확장되고 있다.5) 이미 생성형 AI는 이미지와 텍스트 생산, 번역, 검색, 플랫폼 시스템 등 한국 사회 일상 전반에 깊숙하게 침투하고 있으며, 또한 국가적 전략의 핵심 축으로 AI 산업이 부상하고 있다. 과거 인터넷의 도입이 당시에는 정보예술이라 불렸던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혔다면, 오늘날 인공지능의 출현을 위시한 기술적 전환 역시 예술의 형식과 제작 방식, 전시 환경을 다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의 첨단성이나 새로움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이 인간의 감각과 노동, 기억과 관계 맺는 방식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수성과 비판적 사유일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새로운 예술 형식을 호출해 왔지만, 동시에 예술은 기술을 단순히 수용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구조와 균열, 그리고 비가시적인 층위를 드러내는 역할 또한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예술과 기술, 어떻게 만날 것인가?
오늘날 기술은 더 이상 단순히 도구나 장치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기술은 우리의 감각과 행동 양식, 노동과 관계 맺기 방식까지 깊숙이 조직하는 환경으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는 기술 산업의 발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왔기에, 기술이라는 단어는 이제 낯설기보단 일상 자체에 가까워졌다. 이미 한국 사회에는 AI 기반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차량이 거리를 오가고 있으며, 기사 이미지나 텍스트 생산에도 생성형 AI가 빠르게 활용되고 있다.
최근 국가 차원에서도 인공지능을 핵심 산업이자 전략 자원으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기술은 더 이상 특정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구조와 감각을 재편하는 요소가 되었다. 특히 2025년 11월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는 인공지능에 대해 “경제와 안보, 사회 전반에 전방위적 영향을 미치는 국가의 핵심 자원”이라고 말할 만큼, 첨단 기술을 얼마나 주도하고 활용하느냐의 문제는 이제 일상을 넘어 국가적·인류적 차원의 과제가 되었다.6) 특히 한국은 2025년 9월 8일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를 출범하면서, AI를 국가 정책의 핵심 의제로 삼기 시작했다. 초기 안건에 “AI 기반 문화강국”이라는 키워드가 있을 만큼, 최신 기술과 문화예술이 만나는 영역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확대되면서, 관련 지원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7)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술과 기술은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김윤경, 김혜인의 「예술-기술 융합 지원정책 개선방안 연구」(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4)에서도 기술은 단순한 표현 확장의 도구를 넘어, 연결과 매개의 토대로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보고서에서 연구자는 국내 예술-기술 융합 지원정책의 상황을 보면 기술이 융합된 창작을 수용할 수 있도록 기존 예술 지원체계를 유연화하고 확장하여 기술이 표현 확장의 도구로써 자리매김하는 것을 적절하게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는데, 그 이유를 기술 자체를 ‘첨단성’, ‘신기성’, ‘미래성’이 강조된 측면으로 편협하게 이해하는 문제를 지적했다.8) 기술이 사회 전환의 핵심 축으로 기능하고 있는 가운데, 동시대의 삶과 사회 구조에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려보다는,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우리 삶은 기술과 촘촘하고 강력한 연결망 속에 깊이 착근되어 있기에, 기술 자체를 비물질적이고 심지어 중립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가 손쉽게 사용하는 ChatGPT 역시 편의와 효율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여겨지지만, 사실은 사용자의 질문과 응답 데이터를 다시 인공지능 학습에 활용하며 거대한 데이터 구조를 형성한다. 이는 인간의 언어 활동과 인지 노동이 플랫폼 내부로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인공지능의 신경망을 학습하기 위해 들여왔던 노동을 사용자에게 외주화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에 관해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는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라고 명명한 경제 논리는 기업과 정부가 주도하여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방대한 인간 경험을 무상의 원자재로 추출하고 있음을 주장하기도 했다.9) 여기에 더해 AI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전력 소비와 데이터 인프라, 보이지 않는 노동의 문제까지 함께 고려한다면, 기술은 단순한 편리함 이상의 사회적·생태적·물질적 조건 위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10)
이처럼 기술은 우리 삶에 강력한 편의와 연결 가능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새로운 소외와 비가시적 비용 또한 발생시킨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술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예술은 기술을 단지 수용하여 첨단성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예술은 기술 시대 속 인간의 감각과 신체, 기억을 다시 질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술에서 기술은 단순한 도구나 효율의 체계에 머물지 않고, 인간과 세계의 감각적 관계를 조직하는 매개로 작동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얼마나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도입하고 능숙하게 사용하는가가 아니라, 그 기술을 통해 무엇을 감각하게 하고 어떤 관계를 다시 상상하게 만드는가에 있다.11)
유미루와 도재인 작가의 작업으로 살펴보는 예술기술의 가능성
이번 하이브 아트페어에서 선보이는 두 명의 작가, 도재인, 유미루 작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업인 2024년 제3회 에이프 캠프 참여자로서 지속적으로 기술을 매개로 한 예술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작가들이다.12) 두 작가는 기술을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기술을 통해 지금껏 감지되지 못했던 존재와 기억, 감각의 층위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기술을 경유해 무엇을 감각하고 어떤 관계를 상상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질문과도 연결된다.
도재인: 〈숨 쉬어 주셔서 감사합니다〉(2024) & 〈심겨져 갈 때〉(2024)
도재인은 3D 실험 애니메이션,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 VR 등의 기술로 무형의 개념인 감정, 꿈, 호흡, 기억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무기력한 사회에 관심을 갖고 사람들에게 어두운 현실을 넘어 존재하는 더 넓은 차원의 대안적·현실적 세계로 이끌기 위한 매개로서 기술을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다.13) 이번에 선보이는 도재인 작가의 〈숨 쉬어 주셔서 감사합니다〉(2024)는 당연하기에 오히려 쉽게 감각되지 않는 ‘호흡’이라는 행위에 주목한다. 호흡은 살아 있는 존재에게 필수적인 조건이지만, 동시에 일상에서는 거의 의식되지 않는 감각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 하나의 세포조차 호흡 없이는 유지될 수 없듯, 작가는 바로 이 사소하면서도 근원적인 움직임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사유한다. 이를 시각화하는 방식 또한 흥미롭다. 작가는 기존 미디어아트에서 흔히 기대되는 거대한 스케일과 강렬한 시청각 효과 대신, “암흑 속 새어 나오는 미세한 빛”에 주목한다. 빛은 많아질수록 서로가 지닌 고유한 색채를 덮어버리면서 가산 혼합되고, 지나친 광량은 오히려 우리의 시야를 마비시킨다. 이러한 점에서 작가가 택한 어둠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각각의 빛이 지닌 미세한 차이와 고유한 결을 드러내기 위한 조건처럼 작동한다.
작가는 작은 크기의 디지털 세포 이미지를 3D 프린팅으로 출력한 촉각적 오브제를 제작한 뒤, 각각의 표면 위에 영상을 맵핑한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오브제들은 저마다 다른 색과 리듬을 발하며 마치 살아 숨 쉬는 세포처럼 움직인다. 이때 각각의 빛은 하나의 호흡을 지닌 개인처럼 겹쳐 보인다. 너무나 익숙해 쉽게 지나쳐왔던 호흡에 고유한 캐릭터와 서사가 부여되면서, 작품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다층적인 세계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작업에서 기술은 거대한 스펙터클을 생산하는 장치라기보다, 미세한 움직임과 감각을 증폭시키는 매개로 기능한다. 작가는 오히려 기술의 과잉된 시각성을 비껴가며, 작고 희미한 빛과 호흡의 리듬을 통해 개별 존재의 감각과 관계 맺기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결국 〈숨 쉬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기술을 통해 인간의 감각을 압도하기보다,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생의 미세한 진동과 서로의 존재를 다시 감각하게 만드는 작업으로 읽힌다.
〈심겨져 갈 때〉(2024)는 사회 발전의 단면으로 여겨지는 재개발을 다룬다. 그러나 작가는 도시 개발의 거시적 담론이나 시각적 변화보다, 그 과정 속에서 쉽게 지워지는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에 주목한다. 재개발은 기존의 공간을 허물고 새로운 구조를 세우는 과정을 반복하며 진행된다. 이 과정은 대개 효율과 속도의 논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도시의 배치 역시 이동과 자본의 흐름이 보다 유동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그렇게 도시의 풍경은 점차 균질화되고, 그 안에서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삶의 흔적은 밀려난다. 작가는 이러한 재개발의 논리와는 다른 시간성과 감각을 식물의 생장 방식에서 발견한다. 씨앗이 발아하고 뿌리를 내리는 과정은 인간이 임의로 통제할 수 없는 자연적 움직임에 가깝다. 특히 뿌리는 도시의 빌딩처럼 위로 솟아오르기보다, 오히려 아래로 향하며 보이지 않는 땅속을 더듬듯 확장된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식물의 생장 방식을 통해 재개발 지역이 품고 있는 땅의 기억과 잔존하는 흔적들을 시각화한다.
이때 땅속으로 뻗어가는 뿌리는 단순한 자연의 이미지가 아니라, 사라진 장소의 기억과 감정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다는 걸 암시하는 은유로 작동한다. 이는 효율과 개발의 논리가 포착하지 못하는 층위, 즉 공간 속에 축적된 시간과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갔던 존재들의 흔적을 다시 감각하게 만든다. 결국 〈심겨져 갈 때〉는 도시를 끊임없이 새롭게 갱신하려는 개발의 시간에 맞서, 사소해 보이지만 우리 안에 뿌리내리며 삶의 토대가 되는 것은 결국 기억과 그 안에 존재하는 행복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유미루: 〈기억 전달 포자〉(2025)
유미루는 기억과 역사가 특정 장소와 매체, 구술과 이미지 안에서 어떻게 축적되고 전이되며 다시 감각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리서치 기반 미디어 작업을 선보인다.14) 작가는 예술의 형식 안에서 재현의 윤리와 미학이 서로 맞물려 작동할 수 있는 틈을 모색하기 위한 방식으로 기술을 선택하고 사용한다. 이번 〈기억 전달 포자〉(2025)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어머니들의 기억에 다가가기 위한 방식으로서, 사진과 디지털 이미지, 녹음된 음성과 사운드스케이프, 메타버스, 컨트롤러와 알고리즘 등을 다양한 매체와 재료를 혼합하여 사용했다. 우선 작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기억과 관객이 서로 ‘접촉’할 수 있는 알고리즘적 구조를 구상하며, 그 조우의 모티브로 ‘포자’를 선택한다. 광주 무등산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인 왕다람쥐꼬리의 포자를 본 작가는, 그것을 바람에 몸을 실은 채 공기 중을 떠돌며 언제 어디서든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는 존재로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이 포자를 잠들어 있는 기억의 형상으로 본다면, 누군가 그것과 접촉하는 순간 잊혀가던 기억 역시 다시 깨어나 현재 안에서 활성화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바로 이러한 가능성을 작품 안에 끌어들인다. 포자는 단순한 자연 이미지가 아니라, 침잠해 있던 기억을 다시 현재화하고 감각하게 만드는 매개의 은유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작품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증언하는 실제 음성을 들려주되, 그 흐름을 정확히 따라갈 수 없도록 매번 다른 순서로 재생되는 알고리즘을 부여한다. 발화와 장소의 현재 풍경, 그리고 왕다람쥐꼬리의 포자 이미지는 무작위적으로 교차하며 하나의 고정된 서사로 수렴되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는 기억을 명확하게 설명하거나 재현하기보다, 파편적이고 비선형적인 감각의 상태로 경험하게 만든다. 여기서 알고리즘은 단순한 기술적 장치가 아니라 기억의 작동 방식을 드러내는 구조로 기능한다. 기억은 언제나 선형적으로 복원되지 않으며, 어떤 발화는 지워지고 어떤 목소리는 침묵 속에 남겨진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기억의 유동성과 불완전성을 알고리즘적 배열을 통해 드러낸다. 따라서 이 작업은 사건을 재현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미처 감지되지 못했던 감각과 존재의 층위를 현재 안으로 다시 호출하는 데 가까운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발화에 등장하는 역사적 장소를 직접 찾아가 현재의 풍경과 사운드를 채집해 그 흔적을 더듬는다. 그러나 이때 화면에 등장하는 것은 사건의 재현 이미지가 아니라, 평온하고 일상적인 현재의 모습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풍경은 낯설고 생경하게 체감된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한 현재의 표면 아래, 여전히 침잠해 있는 기억과 부재가 역설적으로 감지되기 때문이다. 작업 중간중간 등장하는 포자 이미지는 이러한 감각을 더욱 강화한다. 포자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천천히 퍼져나가며 잠복하고 증식하는 존재다. 작가는 이를 통해 당장은 감지되지 않더라도 어떤 층위에서는 분명한 움직임과 변화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음을 시각화한다. 이는 오랫동안 수용되지 못하고 침묵을 요구받던 상태로 남아 있던 어머니들의 목소리를 다시 발화의 장 위로 불러내는 작업의 태도와도 연결된다. 잠들어 있던 포자가 깨어나듯, 억압되고 유예되었던 기억 역시 현재의 감각 안에서 다시 활성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기억 전달 포자〉는 언어적이거나 설명적인 방식, 혹은 시각적 재현의 방식으로 기억을 전달하지 않는다. 대신 영상과 사운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교차하는 구조 안에서 관객은 기억을 하나의 정보로 이해하기보다 감각적인 진동처럼 경험하게 된다. 이때 기술은 단순한 매체나 장치가 아니라 기억을 전달하고 재편하는 하나의 인프라로 작동하며, 작품은 재현 없이 기억하게 하고 설명 없이 감지하게 만드는 예술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나가며
두 작가의 작업은 기술을 통해 현실 이면의 구조와 감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서로 맞닿아 있다. 도재인은 빛과 광학적 관계를 경유하여 사회와 개인이 서로 얽히며 만들어내는 감각의 형상을 현상해 낸다. 작가가 미디어 파사드를 주요 지지체로 삼아 작업을 선보여온 것 또한, 그가 다루는 픽셀로서의 빛 자체가 곧 기술이자 예술의 재료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미루는 기억과 역사, 그리고 그것이 현재 안에서 어떻게 다시 감각되고 전이될 수 있는지를 탐색하기 위한 방식으로 기술을 사용한다. 그의 작업에서는 기술 그 자체보다, 기억과 감각이 관객과 어떻게 조우하고 접촉할 수 있는지를 설계하는 방식이 더욱 두드러진다. 어쩌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들이 감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감각일지도 모른다. 기술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기술과 예술, 사회가 서로를 반영하며 함께 변화해 간다고 했을 때, 결국 우리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기술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다시 감각하게 되었는가를.
[저자 소개]
최은총은 동시대 기술 매체와 몸의 관계 맺는 가운데 발생하는 감정과 정동에 관심을 두며 전시 기획과 비평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드와 프레임>(CHAMBER, 서울, 2024), <매끄러운 세계와 골칫거리들>(트라이보울, 인천, 2024), 제 11회 아마도 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 선정 <부르르>(아마도예술공간, 서울, 2024), <도전! 실버벨: 홍연길 프로젝트>(온라인, 2023), <분=위기>(스페이스 미라주, 서울, 2023), <레테>(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 2023) 등 기획을 선보였다. 2025년 제4회 에이프캠프 참여자로, 2024 ACC 아카이브 연구모임의 연구자로 참여한 바 있다. 현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학예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SNS : http://www.instagram.com/chldmschd/
[각주]
1) 아트앤테크, 뉴미디어, 미디어 아트 등 본격적으로 예술의 분야 안에 기술이 도입되면서 두 영역의 만남을 칭하는 용어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용어에 대한 분류 기준은 없지만, 통상 아트앤테크는 산업 기술과 예술의 만남을 지칭하는 데 많이 쓰이며, 올드 미디어와의 구분되는 매체로서 사용될 때는 뉴미디어를, 기술 매체 자체를 예술의 주제이자 재료로 삼는 예술을 미디어 아트로서 호명하곤 한다. 본고에서는 위 용어에 대한 배경 서술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예술과 기술’로 표기할 예정임을 밝힌다.
2) 주헌식, 「국내 인터넷 도입 30주년과 미래 인터넷 동향」, 『인터넷정보학회지』 13권 2호(2012), 39-41.; 사회’란 텍스트, 동영상, 이미지 등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빠른 피드백으로 주고받을 수 있게 된 시대적 조건을 의미했다. 정보 사회의 도래는 1990년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었다. 미국에서 상용 인터넷협회가 설립되어 기업과 개인이 인터넷을 이용하기 시작한 시점이 1991년이었으며, ‘WWW’(World Wide Web) 서비스가 시작된 시점이 1992년이었다. 한국에서는 1994년부터 인터넷 상용망 서비스가 시작되어, 1999년경에는 인구 대비 인터넷 이용자 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될 정도로 해마다 폭발적인 가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때 정보 사회를 가능케 한 것은 무엇보다 인터넷 통신망, 가상 현실 등 첨단 ‘정보 기술’이었다.
3) 광주비엔날레, 「제1회 광주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홈페이지, https://gwangjubiennale.org/gb/exhibition/past/1.do (검색일: 2026년 5월 10일).
4) 서울시립미술관, 『도시: 0과 1 사이』, (서울: 미디어_시티 서울 2000 조직위원회, 2000), 7.
5) 이미영, 「'8천' 코스피 달성한 한국...외국인들 미친 듯이 몰려든다」, 『YTN 뉴스』, 2026년 5월 15일, https://
6) 국가안보전략연구원, 「 한국형 소버린 AI 국가전략의 모색 」, 2025년 11월 21일, https://nsp.nanet.go.kr/plan/subject/detail.do?nationalPlanControlNo=PLAN0000057867.
7)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출범식 및 제1차 전체회의 개최 」, 2025년 9월 8일, https://
8) 김윤경·김혜인, 「예술-기술 융합 지원정책 개선방안 연구」(2024), 67-68.
9) 쇼샤나 주보프, 『감시 자본주의 시대』, 김보영 옮김(파주: 문학사상, 2021) 참조.
10) 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 “AI has an environmental problem. Here’s what the world can do about it.” 2024, https://www.unep.org/news-and-stories/story/ai-has-environmental-problem-heres-what-world-can-do-about-it.; 인공지능 기술은 비물질적 시스템처럼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막대한 물질적 인프라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AI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컴퓨터 장비와 반도체, 희토류 자원이 소비된다. 또한 데이터센터 운영에는 서버 냉각을 위한 대량의 냉각수와 막대한 전력이 지속적으로 요구되며, 현재 상당수의 전력은 여전히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AI 산업의 급속한 성장과 함께 전 세계 데이터센터 인프라는 빠르게 확장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전력 소비와 탄소 배출, 수자원 사용 등 환경적 부담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AI 기술이 결코 비물질적인 체계가 아니라, 거대한 자원 채굴과 에너지 소비 구조 위에서 유지되는 산업 시스템임을 보여준다.
11) 김윤경·김혜인이 발표한 「예술-기술 융합 지원정책 개선방안 연구」(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4)에서는 국내 예술-기술 융합 지원사업에서 기술이 어떠한 의미로 이해되고 있는지를 고찰하며, 문화예술 지원사업에서의 기술을 세 가지 관점으로 구분한다. 즉, “① 기술을 예술 표현 확장의 도구로 볼 것인지”, “② 기술(미디어) 자체를 주제이자 메시지로 삼을 것인지”, “③ 기술을 연결과 매개의 토대로서 이해하며, 기술을 경유해 무엇과 만날 것인지 질문할 것인지”의 측면이다. 본고는 이 가운데 세 번째 관점에 주목하며, 기술을 매개로 형성되는 새로운 관계와 접속의 가능성을 논의하고자 한다.
12) ARKO 에이프 캠프 소개, https://thearts.arko.or.kr/apecamp/about.;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역량 있는 청년예술가(Artist X Producer)와 청년 기술전문가(Engineer) 100인이 향후의 창·제작 활동을 위한 협업 네트워크를 새로이 구축하여 지속가능한 창작 기반을 확립”하기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출범했다. 오픈콜을 통해 만 39세 이하의 청년 예술가와 기술기업 및 기술전문가 개인을 초청하고, 이들이 서로 협업의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2박 3일간의 캠프 활동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5회차를 맞은 에이프 캠프는 현재까지 약 500명의 참여자를 배출한 가운데, 이들의 지속적인 협력 구조를 이어가기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
13) 도재인 작가 홈페이지, https://www.jartist.org/about.
14) 유미루 작가 홈페이지, https://miruyoo.com/ab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