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발자취가 기록된
나의 베이스캠프
나는 회화 중심의 작업을 30여 년간 이어왔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보급형 PC를 접하면서 인터넷과 이미지 관련 소프트웨어와 친숙해졌다. 동료 작가들보다 일찍 웹 세계에 눈을 뜬(?) 나는 개인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이 늘어나던 2000년경 내 작품을 소개하고 알리는 웹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웹사이트는 지금의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던 플랫폼이었다. 방문자와 소통하는 게시판, 작업 과정을 기록하는 에세이, 전시 소식 등으로 카테고리화 해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 구축할 당시 데이터를 준비하는 데 상당한 시간 소요됐지만, 글 쓰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던 덕분에 작업 일지를 기록하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았다. (사실 지금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기록할 당시의 생생한 느낌과 소중함을 알기에 한 번씩 업데이트하려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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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기간이 이어지면서 프로필, 전시 이력, 갤러리(연도별, 장르별로 작품 배치), 리뷰∙평론∙기사 등 게시판에 채워질 이야기도 늘어갔다. 전시를 앞둔 바쁜 시점에도 틈나는 대로 내용을 추가해 나갔는데 이때 가장 고민한 부분은 갤러리다. 웹사이트를 만들기 전 나는 내 컴퓨터 바탕화면 여기저기 폴더에 복사돼 숨어 있던 작품 이미지와 전시 기록을 하나로 모으고 체계적으로 분류할 필요성을 느꼈다. 일종의 웹에 띄운 포트폴리오라고 생각했는데 덕분에 7년간 해온 작품의 상당수를 재촬영해야 했다.
나를 알리고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 많은 지금, 웹사이트에 작업물을 기록하는 것은 시대에 다소 뒤떨어지고 고전적인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작가와 작품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웹사이트는 다른 채널에 없는 절대적인 장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품을 눈여겨봤을 때 그 작품과 작가, 나아가 작가의 작품 세계까지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가 되는 것이다. 물론 정기적으로 도메인과 서버의 사용 비용이 드는 귀찮음을 감수해야 하며, 원치 않는 손님의 방문도 있을 수 있다. 수년 전 광고성 게시물이 반복적으로 게재돼 골치가 아팠던 나는 현재 웹사이트 내 게시판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지 않다. 운영 당시에도 반응이 많지 않았고, 있다고 해도 ‘작품이 인상적이다’라는 어딘가 형식적인 글 혹은 후배 작가들의 고민 글 정도 올라왔다.
작품활동을 기록한 웹 갤러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사이트는 작품 활동 내내 많은 도움이 됐다. 작가, 비평가, 전시기획자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오프라인 만남을 가질 때 자연스럽게 포트폴리오를 교환할 때가 많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나는 이러한 교류가 쉽지 않았고 내 작업을 노출할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때 웹사이트에 게재된 내 작품은 그동안의 여정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웹사이트를 통해 나를 알게 된 사람들과 편하게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교환했다.
웹사이트에 내 발자취를 차곡차곡 쌓아온 지 어느새 27년이 됐다. 가끔 작업이 힘들 때, 마음처럼 일이 이뤄지지 않을 때 나는 웹사이트에 올라온 내 작업물을 보는데 그러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고,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되기도 한다. 앞으로도 나의 여정을 소중한 이 베이스캠프에 기록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