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잘 추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계속 몸을 움직이고, 새로운 상황에 자신을 던지며 작품을 만드는 기무간의 지금.

속수무책으로 빠져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벌꿀오소리처럼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몸으로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는 좀 더 깊은 심연이 있을 것 같아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는 사람. 무용가 기무간은 그런 사람입니다. 스스로의 춤을 설명해달라는 질문에는 “없어요. 그런 건”이라고 잘라 말하고,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몸을 가만둘 수가 없다”고 말하죠. 자신에게는 좀처럼 후한 점수를 주지 않으면서도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숨기지 않습니다. 몸이 허락하는 동안 더 시도하고 싶고, 계속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고, 사람은 어렵다면서도 결국 또 사람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기무간을 보고 있으면 궁금해져요. 아르코 댄스 UP:RISE를 통해 신작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다》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 그의 춤과 사람, 그리고 요즘 기무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들에 대해 물었습니다.
Q. 올해는 무용수로 다른 무대에 서는 것보다 ‘내 작업’을 하는 시간이 많아 보여요. 일부러 그렇게 의도한 건가요?
맞아요. 새 작품이 하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내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자고 정했어요. 작년에 좀 번아웃처럼 왔어요. 3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스케줄이 비어 있는 날이 딱 이틀이었거든요. 남의 작품 하면서 힘들면 생기는 부정적인 기운을 없애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내 걸 하면서 힘들면 내가 그냥 버티면 되거든요. 물론 그렇게 정하고 나니 ‘그런데 내 일이 안 생기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있었는데, 다행히 좋은 기회들이 생겼고요. UP:RISE도 그렇고, 《낙원을 찾아서》도 일단 맨땅에 헤딩하듯 (아르코예술극장) 대관 신청을 넣었던 거예요. 내 걸 할 기회를 찾아보자는 마음으로요. 
Q. 새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뭔가 새로운 영감이 차올라서였나요?
그보다는 신작, 새로운 걸 만들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 입시 면접에서도 제 꿈은 좋은 작품을 만드는 거라고 했던 것 같아요.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당연히 다르잖아요. 작업하는 방식도 다르고 경험도 쌓였고, 하고 싶은 것도 달라졌고, 그때는 못했던 걸 지금은 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지금 만들면 당연히 다른 게 나오겠지, 그때보다 더 좋은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저는 계속 변화하고 있고 변화하려고 노력하니까요.
Q. 어떤 순간에 내가 달라졌고 성장했다는 걸 확인하시나요?
사실 달라진 걸 확인하는 곳은 무대가 아니라 연습실인 것 같아요. 무대는 연습실에서 하던 걸 가서 잘 해내는 곳이고,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건 연습할 때잖아요.
Q. 아르코예술극장과는 꽤 인연이 있어요. 2024년 《와인》부터 올해 《낙원을 찾아서》, 그리고 다시 아르코 댄스 UP:RISE까지. 기무간에게 아르코예술극장은 어떤 공간인가요?
저에게는 사실 제일 익숙한 극장이에요. 대학 3학년 때 외부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많이 섰고, 대극장 중에서는 아마 제일 많이 선 곳일 거예요. 동료들과 얘기할 때도 아르코대극장이 무용수로서 제일 편한 극장인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요. 공간이 객석에서 보면 굉장히 커 보이는데 막상 무대에 서면 조금 아늑한 느낌이 있어요. 보기에는 넓고, 서기에는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은 극장. 객석과의 거리나 전체적인 구성이 무용수 입장에서 편해요. 대기실이나 다른 동선도 편하고요. (웃음) 공연 활동을 많이 한 친구 중에도 아르코대극장을 한 번도 못 서봤다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저는 너무 익숙한 곳이라 그 말을 듣고 조금 놀랐어요. 앞으로도 거기에서 많은 작업을 했으면 좋겠고, 많은 무용수가 그 무대를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지역 공연 투어를 했던 프로젝트팀 랑만의 <낙원을 찾아서>공연이 올해 5월 아르코예술극장 무대에 올랐다. 사진: 황선하스냅 SunHa Hwang
Q. 이번 아르코 댄스 UP:RISE에서 선보일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다》는 어떤 작품인가요?
제목 앞에 사실 괄호로 생략된 문장이 있어요. ‘여기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그러니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긴 하지만 그저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뜻이에요. 말장난 같기도 하고 “무슨 소리지?” 싶기도 하죠. 말 그대로 많은 이야기를 담아놓고, 그것을 ‘이야기’로 표현하지 않으려는 작품이에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연대예요. 저마다의 이유로 고립돼 있던 인간들이 타인을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경직돼 있던 몸이 점점 유연해져요. 서로의 무게를 기대고 받아들이고, 흔들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으켜주면서 체온을 주고받는 거죠. 저는 이게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사람한테 제일 필요한 건 결국 사람인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서로를 만나서 체온을 나누고, 서로의 무게를 받아들이면서 고립에서 벗어나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온기를 객석에도 전달하고 싶어요.
Q. 아르코 댄스 UP:RISE는 공연 한 번을 지원하는 것보다 창작 과정을 꽤 길게 함께한다는 점이 특징이잖아요. 직접 참여해보니 어떤가요?
되게 좋아요. 체계적이기도 하고요. 제가 원래도 ‘몇 월 몇째 주까지 이 장면을 완성하고 다음 장면으로 가자’ 정도의 계획은 해봤지만, 여기서는 훨씬 더 세심하게 과정을 나눠서 작업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과정에 참여하는지도 보게 됐고요. 확실히 안무가나 작가로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며칠 전 중간 공유회를 했는데 거기서도 또 새롭게 배운 게 있었고. 저에게 직접 온 질문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에게 던진 질문을 들으면서 제가 또 생각하게 돼요.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원숭이 엉덩이’ 이야기였어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하다 보면 결국 기차까지 가고 길을 잃잖아요. 작업도 소품 하나를 만지작거리다가 어느새 그 소품이 메인이 되고 처음의 주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였어요.
Q. 한번에 이해가 되네요.
저는 원래도 주제 의식에는 굉장히 집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냥 우리가 잘하는 거, 멋있는 걸 보여준다고 작품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작품이라면 그 작품이 작품이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해요. 그래서 그 이야기가 되게 오래 남았어요. 늘 하던 고민이 한 문장으로 탁 정리되는 순간들이 이번 UP:RISE 과정 중에 많이 있었어요.
Q. 에이스퀘어 이번 호의 주제는 ‘서로를 경유하는 예술’인데요. 손정현·이세승·함초롬 등 동료 안무가와 새롭게 시간을 보내면서 기무간에게도 달라진 부분이 있었나요?
처음에는 이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똑똑한 사람들의 지식을 훔치는 느낌이 들었어요. (웃음)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진짜 남들한테 관심이 없었구나’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에 관심을 두고,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사는구나’라는 생각도 했고요. 그리고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원래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걸 조금 어려워했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기분 좋고, 그 생각을 같이 해보는 것도 재미있고, ‘이 시간이 되게 좋다, 즐겁다’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엄청 큰 변화예요. 2년 전의 저였으면 아예 못 섞였을 것 같아요. 요즘은 저한테 없는 긍정적인 기운을 가진 사람들과 더 많이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저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Q. 그런데 아르코 댄스 UP:RISE는 결국 다음 단계에 진출하는 두 팀을 가리는 구조이기도 해요. 동료인 동시에 경쟁자인 셈인데요.
저는 이제 더 이상 컴피티션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처음부터 분위기가 그랬던 것 같아요. 그저 ‘우리 여기 됐다, 우리 같이 됐다’ 하는 상태였어요. 아는 얼굴 만나면 반갑고, 다들 웃고 있고. 그래서 경쟁이라는 느낌이 별로 없어요. 사실 저는 원래 그런 경쟁에 관심이 없는 편이기도 해요. 떨어지거나 안 되거나 못 받는 데 익숙한 사람이어서요. 오히려 뭔가 됐을 때도 ‘내가 잘해서 된 걸까?’부터 생각해요. 그래서 잘 됐을 때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한 것 같아요.
Q.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기준이 높은 사람인데 계속 춤을 잘 추고 싶게 만드는 동력은 뭘까요?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제가 저를 잘한다고 할 수가 없어요. 가끔은 짜증나요. 약간 배알이 꼴린다고 해야 하나. (웃음) 잘하는 사람 보면 ‘잘하네.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싶어요. 너무 잘하는 사람이 많아서 몸을 가만둘 수가 없어요. 체력적으로 20만큼은 안될 수 있겠지만 저는 지금이 수행 능력이나 몸의 컨디션으로는 제일 좋다고 느끼거든요. 20대 때보다 지금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아요. 그래서 오히려 지금부터 더 많은 걸 해보고 싶어요. ‘저건 이제 내가 못 하겠지’라는 생각이 들기 전까지, 몸이 허락하는 동안은 계속 시도하고 싶어요. 적어도 40대 중반까지는 지금 하는 움직임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플레이어로서 무대에서 물러나는 시기를 하루라도 늦추고 싶어요. 제가 못 움직여서 정말 못하게 될 때까지는 제 작품에 제가 계속 무용수로 출연하고 싶어요.
Q. 많이 들었겠지만, ‘기무간의 춤’은 어떤 춤인가요?
그런 건 없어요. 정말 많은 인터뷰에서 “기무간의 춤은 뭔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항상 그렇게 대답해요. 제 것을 제가 판단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냥 평생 나에 대해서 정의를 못 내리다 죽을 것 같아요. 영원히 모르다 죽을 거예요. (웃음) 그냥 꾸밈없이 움직이는 게 좋아요. 이걸 안 하는 제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고, 그래서 계속하고 있는 거고,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것도 계속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잘하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이에요.
Q. ‘잘하고 싶어서 안달 난다’는 표현이 와닿네요. 그런데 잘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잘해지는 건 아니잖아요.
맞아요. 저도 친구들한테 항상 이야기해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잘하는 데 도움이 하나도 안 된다고. “살 빼고 싶어” 한다고 살이 빠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 바람을 향해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춤을 잘 추고 싶으면 춤만 추면 안 된다고도 얘기하죠. 진짜 잘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절대 그것만 하지 않아요. ‘나는 맨날 춤을 추고 있는데 왜 더 잘하고 싶다고만 하고 있지? 그럼 뭘 더 하면 나아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거죠. 예전에 같이 작업하던 친구한테 “내 춤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해?”라고 물었더니 “네 춤에는 장점이 없고, 네가 춤을 대하는 태도가 강점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그 말이 되게 좋았어요. 운동하기 싫어도 억지로 하고, 뭐라도 해야지 하면서 계속 해왔던 삶 전체를 칭찬받는 기분이었거든요.

Q. 춤 바깥에서는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나요?
제일 영향을 많이 받는 건 잘 쓰인 글이에요. 어떤 문장이 나한테 딱 와닿을 때, 지금 나한테 필요했던 이야기일 때 그 문장을 계속 되새겨요. 그러다 보면 하나의 서사가 되기도 하고요.
그냥 오고 가는 대화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아요.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도 좋아하고요. 예전에 만든 솔로 작품도 석촌호수를 걷다가 떠올랐어요. 그때 좀 심란해서 걷고 있었는데, 문득 주변을 보니까 저처럼 걷고 있는 사람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을까?’ 싶었죠. 저는 인간이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 단순한 행위가 걷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식이에요. 내가 최근에 하고 있던 생각과 주변의 어떤 장면이 만날 때, 혹은 머릿속에 복잡하게 늘어놓았던 생각을 어떤 한 문장이 딱 정리해줄 때 작품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올해 3월 화성아트홀에서 공연한 <비로소: 걷는 사람>의 장면. 사진: 한필름 Hanfilm
Q. 팬들과도 솔직하게 소통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들이 해준 말 중에서 유독 오래 기억에 남은 표현이 있나요?
팬이라고 해서 제가 하는 걸 다 좋아하시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되게 뾰족할 때도 있고, 공연을 엄청 ‘똑바로’ 보세요. 어떤 공연은 첫날 보고 다음 공연은 안 보기도 하고, “이건 별로였어요”라고 솔직하게 얘기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제가 꾸준히 하던 개인 워크숍이 있었는데, 거기에 세 번째부터 일곱 번째까지 계속 참여했던 친구가 있어요. 제 공연도 거의 다 보는 친구였는데, 어느 날 공연을 보고 스토리에 저를 두고 “호기심이 앞장서고 기대감이 뒤따르게 하는 사람”이라고 썼더라고요. 정확한 문장은 조금 달랐던 것 같지만 그런 의미였어요. 저는 그 말이 되게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