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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도도새와 함께,

더 넓은 세계로

저자
글_에이스퀘어 (편집부)
발행일
2026-06-25

김선우 작가가 꿈꾸는 예술로 세상과 관계 맺기

‘제게 그림을 그리는 일이란 인간을 사랑하는 연습을 하는 일입니다.’ 김선우 작가는 2024년 출간한 저서 <랑데부>에서 이른 아침 마주한 작업실에서의 그림들을 볼 때 종종 그 그림을 그린 자신이 미워 도무지 견디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 무수한 날들 속에서 어느 땐가 사랑의 형상을 발견할 때를 위해 연습하는 것이라고요. 그래서일까요? 김선우 작가의 그림에서는 막막함을 뚫고 만난 행복, 두려움을 지나 찾은 평온함 같은 감정이 느껴집니다. 그런 그림이 주는 에너지 덕분인지 국내외 많은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으며 협업을 하기도 했죠. 

김선우 작가는 11년째 도도새를 그립니다. 이미 1600년대 멸종한 새 도도는 평화로운 환경에서 스스로 날기를 포기해 나는 법을 잊고, 결국 세상에서 사라진 존재. 작가는 도도새가 어디엔 가 살아 있다면? 이라는 상상으로 모리셔스에 가 도도새의 흔적을 좇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도도새와의 여정은 작가의 화면 안에서 걷고, 달리고, 여행하고, 꿈꾸며 다시 살아났죠. 캔버스에서, 패션과 상품, 굿즈 등 수천, 수만 마리 도도새가 작가와 함께 세계를 누볐습니다. 도도새와의 여정은 이제 시작인 것 같다고 하는데요. 다가오는 7월 싱가포르, 11월 교토에서의 개인전을 앞둔 김선우 작가를 이화동 작업실에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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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작가님의 하루 루틴도 궁금합니다.
보통 새벽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작업실에 머물러요. 거의 매일 그렇게 지내는 편이에요. 작업이 끝나면 러닝을 하고, 저녁을 해 먹고 하루를 마무리하죠. 곧 있을 7월 싱가포르 개인전 준비를 마쳤고, 11월에 교토에서 있을 개인전 준비를 하고 있어요. 해외에서는 조금씩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 같아요. 교토에서는 츠타야 서점 안에 있는 갤러리 공간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에요. 지난해 도쿄에서 반응이 좋아서 이번에는 교토에서 다시 제안을 받았습니다. 싱가포르는 개인전으로는 처음이지만, 아트페어를 통해 두 번 정도 방문한 적이 있어서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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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새로운 전시를 준비할 때 영감은 어디서 나오나요?
보통 전시가 잡히면 그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지난해 제주에서 전시를 했을 때는 제주가 저에게 어떤 공간인지 오래 생각했어요. 제주는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중간 지점에 있는 안온한 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수관기피’라는 단어를 알게 됐어요. 나무가 서로의 가지를 침범하지 않고 자라면서 빛이 아래까지 내려가고, 땅에 있는 식물들도 함께 살아가는 현상이라고 하더라고요. 과도하게 연결된 시대에 조금 숨 쉴 틈을 만들어주는 공간, 각자의 무언가를 지켜가자는 것이 도도새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서 전시의 주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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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올해 있을 전시에서는 어떤 테마를 발견하셨을 지 궁금해요.

교토가 도자기로도 유명한 곳이라는 걸 알게 됐고, 지난 한 달 동안 교토에 머물며 도자기 작업을 배웠어요. 도자기가 생각보다 정적인 작업이 아니더라고요. 굉장히 전투적이고,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죠. 그림은 물감을 바르면 어느 정도 예상되는 색과 결과가 나오지만, 도자기는 굽는 과정에서 크기가 줄어들거나 색도 예상과 다르게 나올 수 있어요. 매번 깨질 위험도 있고요.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연습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Q. 흙을 직접 만지는 감각도 회화와는 달랐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그림을 그릴 땐 붓이라는 매개를 통해 작업하지만, 도자기는 손으로 흙을 직접 감각하잖아요. 그 원초적인 감각이 좋았어요. 또 흙의 시간에 제가 맞춰야 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고요. 흙이 적절한 강도로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때 깎고 그리고 다시 구워야 하거든요. 흙의 스케줄에 맞춘다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돌아보니 인간이 자연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던 감각을 다시 깨우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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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꾸준히 글도 쓰시고 책도 많이 읽으시는 것 같은데 독서가 작업에 영향을 주나요?
작업할 때 책을 들으면서 하는 편이에요. 오디오 북을 틀어놓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1년에 200권 이상 듣게 되더라고요. 역사, 인문학, 소설을 많이 듣습니다. 도도새를 통해 결국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책 역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니까요. 최근에는 황석영 소설가의 책을 많이 들었습니다. 르포르타주처럼 현실 속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좋아해요.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살아남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해주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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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셨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협업이 있을까요?
가장 최근에 한 것 중 키움증권과 함께한 ‘키움런’ 행사가 있는데요. 제가 워낙 달리기를 좋아해서 일주일에 서너 번은 5~10km를 뛰거든요. 언젠가 마라톤 대회와 꼭 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제안을 받았어요. 더 의미 있었던 건 그 대회가 국내 유일의 베리어프리 마라톤이었다는 점이에요.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를 탄 분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10km 코스의 턱을 다 없앴다고 들었어요. 날지 못했던 도도새가 제 작품 속에서 다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것처럼, 이 대회의 취지가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바와 거의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고 느껴져서 스스로도 굉장히 뿌듯했던 협업이었습니다.


Q.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할 때 작가님의 기준이 있나요?
신중하게 선택하는 편인 것 같아요. 저의 작업과 결이 맞지 않거나, 이미지적으로만 소비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고사합니다. 담배 회사 같은 곳에서 제안이 온 적도 있었지만, 저는 비흡연자이기도 하고 환경에도 관심이 많아서 당연히 거절했고요. 협업 과정에서는 제 메시지가 최대한 녹아들 수 있도록 노력해요. 단순히 이미지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제가 도도새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바가 함께 전달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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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협업은 전시장에 오지 않는 사람들과 만나는 통로가 되기도 하는데요. 그런 대중적 접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직도 갤러리나 미술관에 가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협업은 그 거리를 확 좁혀줄 수 있어요. 제 작품보다 먼저 협업 제품이나 콘텐츠를 통해 도도새를 알게 되는 분들도 많고요. 저는 좋은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제 작품의 스타일이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생각했을 때, 협업은 실보다 득이 많다고 생각해요. 작품의 수는 한정되어 있지만, 협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도도새의 세계를 소유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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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 해보고 싶은 협업의 방향도 있을까요?
상업적인 컬래버레이션도 좋지만, 궁극적으로는 큰 비영리 단체와 국제적인 캠페인을 해보고 싶어요. 도도새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니까요. 지금 환경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고,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프랑스의 한 비영리 단체가 연락을 주셔서 작업 중인데요. 몽골에 아이들을 위한 스케이트보드 파크를 짓는 프로젝트인데, 제가 스케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려 보내면 자선 경매를 통해 기금을 마련하는 방식이라고 해요. 이런 일들을 함께 하며 예술이 세상에서 하나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그런 효능감이 저를 더 움직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Q. 작가님에게 좋은 예술 협업이란 무엇일까요?
좋은 협업은 서로의 메시지가 잘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세계가 단순히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태도가 함께 전달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기업이나 브랜드가 가진 지향점과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질 때 협업은 더 큰 힘을 가지게 되니까요. 결국 예술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감각, 그 감각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 좋은 협업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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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예술후원인의밤 기부 작품 전경


Q.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인의 밤에 작품을 기부해주신 인연도 있습니다.

저도 11년째 작업을 해오고 있지만, 이 과정이 제 혼자 힘으로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초반의 제 작품을 좋아해주셨던 분들을 떠올리면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도 들어요. 지금 보면 부끄러운 초기작의 허술함에서 무언가를 봐주신 거잖아요. 그분들이 있었기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 역시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힘을 보태려고 합니다. 후원인의 밤은 예술 꿈나무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이기에 제가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Q. 소셜미디어나 뉴스레터, 책 등 팬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십니다.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직접 이야기하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의 예술가에게는 필수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PR의 시대이기도 하고, 플랫폼도 잘 마련되어 있죠. 무엇보다 내 이야기는 내가 해야 가장 정확하게 전달된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말을 빌리는 것보다, 내 작업에 대한 이야기와 내 생각을 직접 표현하는 것도 예술가가 가져야 할 능력 중 하나라고 봅니다. 도도새의 이야기 역시 제가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제가 도도새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지 직접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하고 있어요.


Q. 10년 넘게 하나의 존재를 계속 그려왔는데요, 새로운 주제에 관심이 가거나 반복이 지루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나요?
아직까지 지루하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오히려 반복하는 일이 더 어렵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것을 하는 것보다, 하나의 대상에 계속 집중하면서 그 안에서 무수한 변주를 만들어내는 일이 훨씬 어려운 것 같습니다. 쿠사마 야요이나 김창열 선생님처럼 한 가지에 오랫동안 집중해온 작가들을 생각하면 저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도새와 함께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계속 탐색해야 하는 존재인 것 같아요.


Q. 초기에 도도새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지금의 메시지가 달라졌나요?
초반에는 사회적인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우리의 개성을 억압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안에서 각자가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하는지에 가까웠습니다. 조금 전투적인 이야기였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모르게 메시지가 부드러워졌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각자 가능성을 품은 존재라는 것, 그 가능성을 깨닫고 싹을 틔워 나가자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됩니다. 제가 작가로 살아남아 가면서 메시지도 자연스럽게 변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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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 도도새는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도도새는 여행의 동반자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예전에는 강력한 영감의 원천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1년 정도 도도새를 그려오다 보니 이 친구가 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제가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준 동반자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언자이자 친구이자 가이드이기도 합니다. 도도새와 정말 많은 여행을 했고, 전시 역시 떠나고 돌아오는 여행처럼 느껴집니다.


Q. 마지막으로, 도도새와 함께할 다음 여정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도도새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전히 많습니다. 다만 요즘은 표현 방식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같은 도도새를 계속 그리더라도, 그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법에서 더 다양한 변주를 찾아야 오래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의 형식을 더 고도화하는 동시에, 또 다른 결의 표현 방식을 찾아야 하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교토 전시에서 볼 수 있을 도자기 작업이나 책등에서 영감을 받은 세로형 작업도 그런 고민에서 나온 시도입니다. 온건한 시도와 공격적인 시도를 함께 해봐야 하는 시기라고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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