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커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가 말하는 한국 장르문학의 힘.
요즘 한국 장르문학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 정보라. <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2023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2025년 <너의 유토피아>로 필립 K. 딕상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 독자들과 꾸준히 교감해온 작가죠. 최근에는 <붉은 칼>과 <한밤의 시간표>로 로커스 상 번역 소설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다시 한번 주목받았습니다. 그의 소설은 현실과 비현실, 익숙함과 기묘함이 뒤섞인 세계를 배경으로 합니다. 날 선 현실과 과학적 팩트로부터 뻗어 나가는 경계 없는 상상력. 현재 포항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정보라 작가를 만나 과학기술 시대, 지금 이 순간 작가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에 대해 물었습니다.
포항 영일대 해상누각에서 만난 정보라 작가.
Q. 최근 <붉은 칼>, 소설집 <한밤의 시간표>로 로커스 상 번역 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습니다. 작가님 소설의 어떤 지점이 세계 각지의 독자들에게 공감을 형성했다고 보시나요?
번역의 힘과 장르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장르문학을 즐기고 좋아하는 번역자님을 만나 운이 좋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장르문학, 그 중에서도 SF나 호러 등 환상성이 강한 장르는 사회적이거나 문화적인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여러 나라 독자님들이 좀더 쉽게 접근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특히 SF는 지금 현재 모든 사람의 일상 속에 과학기술이 폭 넓게 자리잡았기 때문에 이전보다 훨씬 더 친숙한 장르가 되어가고 있어요. 그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국내 출간된 <붉은 칼> 표지와 영문판 표지.
Q. 특히 이번에 번역 소설 부문이 처음 신설됐는데, 여러 한국 작가분들이 리스트에 올랐어요. 개인적 의미를 넘어 한국 장르문학이 번역되고 주목받는 것에 대한 소감도 궁금합니다.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한국 안에서는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구분이 뚜렷한 편이지만 외국에 소개되면 해외 독자님들은 모두 ‘한국문학’으로 인식해요. 그래서 누구든 한국 작가가 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상을 받으면 한국문학의 위상 전체가 올라가는 거죠. (그러면 저도 묻어갈 수 있겠지요!) 사실 또 한국문학도 크게 보면 ‘한국문화’의 분류 안에서 K팝, K-드라마, K-영화의 성공에 힘을 얻고 관심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저도 다른 한국 작가분들께 얹혀가고 있는 셈이죠. 한국 문화를 이끌어가는 모든 창작자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Q. 해외 독자들의 반응이 한국 독자와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작품이 새롭게 읽히거나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결이 또다른 해석으로 이어지는 등의 경험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붉은 칼> 영문판을 읽으신 외국 독자님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북한군이 동원된 이야기를 SF로 해석한 이야기인지 물으신 적이 있는데요. 저는 17세기 나선정벌만 생각했는데 이 질문은 너무나 정곡을 찔러서 충격이었어요. 단편집 <너의 유토피아>의 경우 각 단편마다 해외 독자님들이 자신의 사회나 현실에 가까운 요소들을 발견하고 말씀해 주셔서 SF라는 장르가 확장성이 대단히 넓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하죠.

정보라 소설집 <너의 유토피아> 표지.
Q. 작가님의 소설은 흔히 SF, 환상문학, 호러 등으로 읽힙니다. 그러나 기존에 규정 장르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다름이 있다고 느껴지는데요. 작가님께서는 자신의 소설을 어떤 형태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호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귀신이 좋거든요! 모든 이야기에 귀신을 넣으려고 매우 치열하게 노력합니다! SF는 제가 과학을 잘 모르기 때문에 사실 로봇이나 외계인을 슬쩍 집어넣고 SF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바라는 정도죠.
Q. 현대인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경이롭게 환호하면서 동시에 불안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많은 것을 대체하는 시대에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문학의 근본은 의사소통이고 이야기예요.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죠. 스마트폰의 메신저로 이야기하든, 손으로 글씨를 써서 의사소통을 하든, 방식만 다를 뿐이지 사람이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고 싶어하며 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아마 인간이 존재하는 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인 나 자신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고, 의사소통을 더 잘 하는 것은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기술이고 지식인 거죠. 문학은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 사이의 일들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장르이며 그래서 의사소통과 인간 이해의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표현의 방식은 기술의 발달에 따라 변할지 몰라도 인간의 근본을 문학이 담고 있다는 사실은 아마 변하지 않을 거예요.
Q. 얼마 전 개봉한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경우 원작 소설을 영화화해서 다시금 소설이 주목받았는데요. 작가님의 소설 중 영화화 혹은 드라마나 다른 장르 콘텐츠로 확장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밤의 시간표>가 영화화된다면 어떤 작품이 될지 조금 궁금해요. <한밤의 시간표> 영국판과 프랑스판 표지 디자인에서는 양이 중심이 되었는데 폴란드판 <한밤의 시간표> 표지에 커다란 푸른 새가 아주 화려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화된다면 이런 동물들이 어떤 모습일지 보고 싶어요.

(왼쪽부터) <한밤의 시간표> 국내 양장 리커버, 미국판, 영국판 표지와 폴란드에서 출간된 표지.
Q. 한국의 과학 소설만이 지닌 특별한 점이 있다면 어떤 지점일까요?
배명훈 작가님과 김보영 작가님이 여러 강의에서 하셨던 말씀을 요약해서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국은 역사적으로 남의 나라를 식민지배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한국 작가들은 침략이나 식민지배를 미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한국 과학소설이 ‘규모가 작다’, ‘소소한 일상에 집중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죠. 그러나 지금은 한국 과학소설 중에 외계 행성 침략을 ‘진출’로 미화하고 본래 그 행성에서 살아가던 생물들을 ‘괴물’이라며 학살하는 폭력적인 이야기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장점이 되었습니다.
Q. 이야기를 만드는 우리만의 DNA라는 것이 있는 거군요.
또, 한국 과학소설이 일상생활과 과학기술이 만나는 지점을 정밀하게 묘사하고, 이런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앞으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언제나 비판적으로 성찰한다는 특징도 장점으로 작동해요. 순문학으로 등단하신 여러 작가분들도 “사회비판적 관점과 자아성찰”이 한국문학 전체의 특징이라는 점에 동의하셨죠. <홍길동전>의 예를 보듯, 한국 독자들은 문학이 사회를 비판하고 인간을 성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점이 기술과학이 세상을 지배하고 여러 위기가 닥쳐오는 현재에 보편적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요즘 관심을 갖고 계신 과학적 현상이나 발견이 있을까요? 또는 최근 작가님께서 일상에서 경험하신 과학기술을 통해 발견한 인간의 새로운 면모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사는 포항에서 2차전지 기술 사업이 한창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마그네슘 배터리의 취약성을 해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보았습니다. 마그네슘은 리튬보다 안정적이고 불이 붙거나 폭발할 위험도 없는데, 수분에 아주 약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수분이 마그네슘에 도달하지 않게 막아주는 보호층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불이 날 위험이 없는 안전하고 값싼 배터리가 세상을 좀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줄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포항의 스페이스워크 모습.
Q. 포항이 SF의 도시로 거듭났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요즘 포항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영감은 어떤 것인가요? 또 다음 작품의 소재가 되는 것이 있다면 귀띔해주실 수 있을까요?
환호공원에 있는 스페이스워크는 멀리서 보면 외계인이 빛의 고리를 산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높아요… 무서워요… 그러나 올라가 보았습니다. 무서웠어요… 위에서 보면 산과 바다와 포스코와 영일대 해상누각이 한눈에 보입니다. 공간과 시간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데요, 포항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사람이 이런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일상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들여다보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습니다.
Q. 요즘 작가님을 웃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잔혹한 장면 사이,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봄이 오니까 동네 강아지들이 모두 반려인간을 데리고 나와서 산책을 시킵니다. 얼마 전에도 해변에서 강아지 둘이 반려인간을 하나씩 데리고 나와 바닷가를 달리는 모습을 보았어요. 강아지들이 기운차게 뛰어다니고 반려인간들이 쫓아가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즐거워요. 사람이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게 아니라 강아지들이 반려인간을 운동시키는 게 맞습니다. 저는 이런 풍경을 사랑합니다.

포항 영일대 해상누각에서 만난 정보라 작가.
Q. 마지막으로 정보라 작가님이 믿는 문학의 고유한 힘은 무엇일까요?
사람은 이야기를 통해 삶과 세상을 이해합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면서 상황을 돌아보며 웃고 울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타인의 내면과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공감하고 나아가 다른 삶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얻어요. 이런 의사소통의 본능을 글로 표현하는 분야가 문학이죠. 글은 시각예술이 전달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정교한 정보를 시각예술보다 좀더 간접적으로 전달합니다. 사람은 살아가는 한 언제나 뭔가를 표현하려 할 것이고, 그러므로 문학은 어떤 식으로든 존재할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믿는 문학의 힘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