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보다 먼저 움직이는 창작과 기획의 방식.
요즘 예술에서는 미완의 미학이 대세인 것 아시나요? 완벽한 완성 상태에 몰두하기보다 스몰 프로젝트, 마이크로 창작처럼 작은 단위로 빠르게 시작해 작품을 선보이거나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 그 자체를 예술로 드러내며 함께 완성해가는 젊은 창작자들이 늘어난 것인데요. 이런 흐름은 개인 단위의 프로젝트도 있지만 이를 선보이는 공간이나 시스템을 통해 더욱 견고해지는데요. 결과보다 ‘작동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동시대 예술의 흐름을 모아봅니다.
최근 대전의 미술관 헤레디움에서는 3월 15일부터 시작한《미완의 지도》전시가 설치되는 과정의 일부를 공개하며 이렇게 전했습니다. “작품이 놓이기 전의 전시장에는 잠시 비워진 공간만이 남아 있습니다. 작품이 들어오고, 위치를 조정하고, 공간의 흐름을 하나씩 맞춰가며 전시는 천천히 형태를 갖춰갑니다. 작품과 공간이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이 순간 역시 전시의 일부입니다.”
이렇게 말한 데는 이번 전시가 컬렉터 그룹 아르케 II (ARCHE II)의 수집품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인데요. 아르케 II 멤버들은 2017년 프리즈를 시작으로 예술을 매개로 함께 모여 공부하고 향유하며 9년 동안 작품을 수집했습니다. 매년 일정한 예산을 모아 작품을 구매하고 나눠 보관하며 공동체의 장기 프로젝트로 컬렉션을 이어가는 방식이죠. 여러 해에 걸쳐 각자의 시선과 선택으로 모인 작품들. 이를 하나의 완성된 결과가 아닌 계속해서 확장되는 하나의 ‘지도’로 바라보고 기획된 전시라고 합니다.
올해로 3회차를 맞이하는 아트 페어 아트오앤오는 미술 신에서 단연 화제입니다. 90년대생 컬렉터 노재명 대표가 세계 유수의 페어를 다녀보며 소비자 입장에서 경험한 좋았던 부분과 부족하다 느낀 부분을 보완해 직접 페어를 꾸린 신선한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페어는 유럽의 중견 갤러리부터 국내 젊은 갤러리까지 세계 미술 시장에서 이제 막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을 집중 조명하는데요. 기존의 대형 아트 페어에서 잘 보지 못했던 해외 갤러리들이 많이 참여해 다양성을 추구했다는 점이 긍정적인 평을 얻었습니다. ‘Young and Fresh, but Classy’라는 슬로건으로 작품과 기획의 능력으로 미술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 올해는 특히 전남도립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중국 X Museum 등 비영리 미술기관의 참여도 다수 있어 흥미로운 담론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4월 3일부터 5일까지 서울무역전시장 (SETEC).

서울 평창동과 제주 중선농원에서 신작과 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아우르는 갤러리2. 사진은 전현선 작가의 《우리의 눈꺼풀은 한 겹이 아니다》 전시 전경.
도쿄의 미사코 앤 로젠 갤러리는 이번 페어에서 윌 로건 Will Rogan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 Will Rogan ‘A kestrel flew past the window’
문학계에서는 독립출판에서 소량 제작으로 시작해 독자 반응을 확인한 뒤 개정판이나 확장된 작업으로 이어지는 형태가 기본이었죠. 이런 흐름은 초판본을 많이 찍지 않고 계속에서 리커버 에디션 등으로 계속해서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방식으로 이어져 이제 출판계 전체적인 흐름이 됐습니다. 완결된 결과물 보다는 여러 번의 수정과 보완을 거치며 성장하는 텍스트를 지향하는 셈이죠. 작가들 역시 꽁꽁 숨어서 쓰지만은 않습니다. 어떤 작품은 SNS를 통해 힌트를 주거나 뉴스레터를 통해 작업 노트와 리서치 과정을 공개하고, 이를 다시 출판으로 연결하기도 하죠.
미술 작가들도 보다 자유롭게 개인 소셜미디어를 통해 현재 작업을 위해 탐구하는 내용과 영감의 노트를 공유하고 이런 과정을 기록한 내용을 북펀딩을 통해 아티스트 리서치북으로 만듭니다. 지난해 요이(Yo-E) 작가는 알라딘 북펀딩을 통해 <요이: 내가 헤엄치는 이유> 라는 아티스트 리서치북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은 작품이 완성된 순간 그 자체로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 작품이 전시장에 놓이기까지 걸어온 숱한 시간과 서사를 긴밀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들과 작품 사이의 간극을 좁힙니다. 이런 친밀함이 팬덤으로 이어지는 것은 덤이고요.

요이 작가의 도서 <요이:내가 헤엄치는 이유>
어쩌면 지금의 예술은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통해 더 또렷하게 드러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 어딘 가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수많은 시작들이 우리 곁에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