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과 미술관, 접근성은 어떻게 설계될까요?
공연장이나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배리어 프리’ 혹은 ‘접근성’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사회적 약자의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낮춰 누구나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개념인데요. 최근에는 공연장과 미술관 모두에서 접근성을 기획과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민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관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해외 공연장의 사례부터 아르코 극장과 미술관의 사례를 통해 접근성이 어떻게 문화공간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는지 만나보세요.

접근성 공연을 관람하는 어린이 관객. (좌측) / 영국 내셔널 시어터에서 제공하는 ‘스마트 캡션 글라스’. (우측)
먼저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영국을 대표하는 극장인 내셔널 시어터는 공연장 전반에 걸쳐 휠체어 접근 공간, 리프트, 장애 관객을 위한 보조 기술 및 청각 지원 안내 등을 공식적으로 제공하며, 관객이 공연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의 링컨 센터도 “접근성은 공연장 설계의 일부”라는 철학을 공식적으로 밝히며, 휠체어 접근 좌석과 출입구, 화장실 등의 물리적 접근성 정보를 제공하고, 청각 보조 기기나 감각 지원 공간 등 부가 서비스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시설을 확장하고 있어요. 또 이들과 같은 영미권 공연장에서는 이런 환경적 변화 외에도 공연 제작의 측면에서도 ‘릴랙스드 퍼포먼스(Relaxed Performance)’라는 형태의 공연을 만들어 관람 범위를 넓히고자 하는데요. 릴랙스드 퍼포먼스는 관객이 공연장을 이용하는 방식에 여유를 허용함으로써, 감각 자극에 민감한 관객이나 공연 관람이 낯선 관객, 영유아 등도 끝까지 공연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접근성 방식입니다.
링컨 센터는 공연 예술 공간 설계 단계와 창작 과정에서부터 정체성과 접근성을 포용하겠다는 정책을 펼친다.
이 사례들이 말해주는 공통점은 접근성 공연을 고민하는 것이 예술에 더 큰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며, 제작 단계에서부터 필수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국내 주요 공연장에서도 접근성을 공연 제작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요. 2018년, 휠체어 관객을 위해 객석 몇 줄을 들어내 만들었던 일에서 출발한 아르코의 접근성은 이제 공연을 만드는 방식 자체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공연장에서 뿐만 아니라 전시 공간에서도 접근성은 하나의 운영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르코미술관은 휠체어 이용자를 포함한 모든 관람객이 전시장 전 층에 접근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상시 운영하고, 자동문 설치와 충분한 관람 동선 확보를 기본으로 삼고 있죠. 작품 설명판의 높이를 조정하고, 수어가 포함된 감각 지도 영상을 제공하는 등 전시 공간을 보다 직관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전시 경험 역시 시각 중심에 머물지 않는데요. 향기,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활용한 작품을 통해 관람 방식의 폭을 넓혀왔죠. 예를 들어 2024–202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귀국전 《구정아–오도라마 시티》에서는 전시장 한 층 전체를 17가지 향으로 구성한 작품을 선보여, 향기와 기억이 결합된 공간적 사유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2024년 지역문화재단과 협력하여 장애 예술에 주목하고 미술관의 접근성 제고를 실천적으로 모색한 전시 《여기 닿은 노래》에서는 관람객이 작품을 직접 만질 수 있는 <끌어안는 조각>을 소개하였으며, 온도와 재질이 지닌 촉감을 통해 감각의 확장을 가능하게 했죠. 이처럼 접근성은 더 많은 관객을 상상하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공연 제작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변화를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의 접근성 프로듀서 이유진 차장에게 들어봤습니다.

예술극장은 휠체어 이용 관객의 관람 위치 선택권 확대를 위해 지난 2024년 3월,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1열 객석을 모두 없애고 가변형 객석으로 교체했다.
휠체어석 확대 운영을 위해 출입문 확장, 출입구 경사로 설치와 2층 로비 장애인 화장실 추가 설치 공사가 함께 진행됐다.
Q. 아르코에서 제작하는 ‘접근성 공연’은 어떤 개념인가요?
접근성 공연은 특정 관객만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이라기보다, 누구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제작 태도에 가깝습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관객이라면 누구나 공연을 보고 싶어 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죠. 그래서 저희는 “이 작품은 어떤 관객을 만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고, 그 답에 맞춰 접근성 장치를 함께 고민하려고 합니다.
Q. 아르코의 접근성 공연은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2018년을 출발점으로 보는데요. 예술극장은 영국의 장애 무용단체 칸두코 댄스 컴퍼니와의 협업 공연을 계기로, 다양한 감각과 몸을 가진 관객 그리고 예술가들이 극장에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어요. 그때는 물리적 접근성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고, 기존 객석을 임시로 철거해 휠체어석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이후 2019년부터는 공연장 접근성 개선 공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했고, 2020년부터 음성해설, 자막해설, 수어 통역 같은 공연 접근성 장치를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Q. 접근성 공연 분야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나요?
현재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는 접근성 공연 제작으로, 극장이 제작 초기부터 참여해 창작자와 함께 접근성 장치를 설계하는 거죠. 둘째는 접근성 운영 협력으로, 대관 공연을 대상으로 장비 대여나 인력, 자문 등을 지원하는 부분입니다. 셋째는 접근성 워크숍인데요. 접근성 공연 제작을 처음 시도하는 창작자나 실무자를 위해 실습 중심의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어요.
Q. 현장에서 느끼기에 창작자,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2021년까지만 해도 자막이 연극의 몰입을 방해한다거나, 스포일러가 된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하지만 팬데믹 이후 OTT 환경에서 자막과 함께 콘텐츠를 보는 경험이 자연스러워져서인지, 보시는 분들도 크게 거부감이 없고, 자막을 연출의 일부로 생각하고 적극 활용하려는 창작자도 많아졌습니다. 자막의 폰트나 색감, 배치 방식까지 고민하면서 오히려 연극적 효과를 확장하는 도구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늘었고요.
Q. 접근성 장치를 마련하는 부분은 어떻게 결정하나요? 매뉴얼이 있나요?
일부러 매뉴얼을 만들지 않고 있습니다. 접근성을 규격화하면 “여기까지 하면 됐다”라는 선에서 멈출 수 있기 때문이에요. 대신 작품마다 타깃 관객을 먼저 설정하고, 그에 맞는 접근성 장치를 선택합니다. 자막, 음성해설, 수어 통역뿐 아니라 진동 조끼, 터치투어, 사전 음성 소개처럼 작품에 어울리는 방식을 함께 적용해보며 실험하고 있어요. 그 과정은 예술극장 홈페이지에 과정기록집으로 남겨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습니다.

예술극장 접근성 제작공연 <빨래방:쌉소리>(안무 이가영) 공연 전, 무대에서 무용수들과 함께 터치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이 작품은 공연 관람 전 촉각전시와 터치투어를 참여할 수 있다. 공연은 음성해설, 촉각카드를 함께 감각하며 관람할 수 있다.
Q. 접근성 공연은 장애 관객만을 위한 건가요?
아닙니다. 접근성은 고령자, 어린이, 외국인, 감각에 민감한 관객까지 자연스럽게 포괄한다고 보시면 돼요.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처음 생겼을 당시에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유모차나 캐리어를 끄는 사람, 노약자에게도 유용해진 것과 같은 거죠. 공연장에서의 접근성 장치도 결국 모든 관객의 선택지를 넓히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Q.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접근성은 한 가지를 해결하면 또 다른 과제가 따라오는 것 같아요. 인력도 필요하고,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들어갑니다. 오래된 극장이다 보니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는 공간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가능하다고 포기하기보다는, 가능한 범위 안에서 계속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아르코 접근성 공연은 어떻게 확장될까요?
매년 최소 10~15편 정도의 접근성 공연을 제작하거나 운영 협력 형태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역시 대관 공연을 중심으로 접근성 수요 조사를 진행하고 있고, 4월에는 자막해설 제작 워크숍, 6월에는 관객을 대상으로 한 접근성 워크숍도 준비 중입니다. 접근성 공연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공연을 만드는 기본값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 회차 자막해설을 제공하는 연극 <몸 기울여> 포스터.
Q.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접근성 공연이 있다면요?
현재 극장에서 진행 중인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중 연극 <몸 기울여>가 전 회차 자막해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극장 홈페이지에서 ‘접근성’ 태그를 통해 어떤 작품이 접근성 공연인지 확인하실 수 있어요. 앞으로도 다양한 작품에서 접근성 공연을 만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