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결된다, 고로 존재한다’
2023년 컬렉터를 말하다
미술 시장은 상징 지표를 거래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철학적 스토리가 어떻게 개인, 시대, 국경, 역사를 관통하며 어떤 흥미로운 상징을 만들어 내는가의 경쟁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 이유로 작가를 둘러싼 큐레이터, 평론가, 저널리스트, 미술사가 등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전문가들의 역학 관계를 이해하고 협업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우리는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인스타그램에 올린 작품이 팔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온라인을 통한 리서치와 검증, 그리고 실제 구매까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컬렉터의 등장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소수의 컬렉터가 큐레이터, 옥션하우스, 갤러리 등 미술계 인사들과의 친분과 교류 속에서 고급 정보를 얻는 정보 비대칭의 독점적 수혜자였다. 그러나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가져온 정보의 투명성과 속도, 그리고 네트워크의 속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MZ세대의 활약은 전통적인 미술 시장에 파괴적인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
‘프리즈 서울 2022’를 찾은 방문객들
ⓒFRIEZE 공식 홈페이지
이들은 메타버스, SNS, 유튜브, 미닝아웃, 당근마켓 등 새로운 연결 방식에 기반한 소비 문화를 대변한다. 실시간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네트워크로 연결한 집단 지성을 끌어내고, 동시에 소비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데 의미를 둔다. 이들의 방대한 학습 능력은 경제학과 미술사, 주관적인 취향과 객관적인 데이터 모두를 섭력하며, 이자율, 기회비용, 해지 펀드, 블록체인, AI, 인류세 등 경제, 금융, 테크놀로지, 환경, 철학적 용어까지 소비한다. 자신의 주관적인 취향과 외부의 객관적인 정보 사이의 밸런스를 분석할 줄 알고, 과거의 정보를 통해 패턴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길 좋아한다. 그 결과 거시 경제 정책과 미시 경제 전략이 어떻게 이자율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미술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미술과 금융 생태계 전체의 상호작용으로 확장해 큰 그림을 보길 원한다. 그리고 첨단 AI 기반 예측 테크놀로지가 미술 시장의 새로운 대안이라고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자본과 기술, 금융 지식과 미술사로 무장한 이들이 더 많은 변화를 주도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이들의 존재는 ‘나는 연결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식의 새로운 차원의 해석을 요구한다. 여기서 이들이 연결되고 싶은 대상은 단순히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대 가치이다. 최근 지속가능한 미래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며, 컬렉터들 역시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행동에 동참하고 있다. GCC(Gallery Climate Coalition), Gallery Commit, Art+Climate Action, Ki Culture 등이 좋은 예이다. 이들 기관은 예술 작품의 창작, 운송, 유통, 소비 전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각 단계별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을지 연구하며, 이에 따른 실천을 독려하고 있다. 이들에게 작품을 구매하면서 항공 운송이 아닌 해상 운송을 요청하면 탄소 발자국을 95% 이상 감소시킬 수 있고, 조금 불편해도 일등석이 아닌 일반석에 앉아 여행하면 탄소 발자국을 5배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다.
환경보호와 탄소 발자국 감소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GCC(Gallery Climate Coalition) ⓒGCC 공식 홈페이지
소유경제는 컬렉션의 시대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경험 경제 시대에는 커미션(commission)이 어울린다. 커미션은 컬렉터(후원자)와 작가가 긴밀하게 소통하며 만들어 가는 결과물이다. 작가의 사상과 철학, 그의 시대 가치를 지지하고 그것이 타협하지 않고 온전하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내는 역할까지 해낼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 커미션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차원의 컬렉터는 미술 시장의 상징체계를 만들어 가는 스토리의 동반자, 주인공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