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문화체육관광 AI-디지털혁신포럼: 트랙 C 세션 1 현장 리뷰

11월 18일, 서울 드래곤시티에서 ‘2025 문화체육관광 AI-디지털혁신포럼’이 열렸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분야 전문기관들(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ARKO), 한국관광공사, 한국저작권위원회, 한국문화정보원, 국민체육진흥공단)과 공동으로 주최한 것인데요. 올해로 3회차인 이번 행사는 '디지털이 바꾸는 문화 일상, 인공지능(AI)이 이끄는 혁신'을 주제로 각 분야의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기반 관련 사례를 공유하고, 모두가 함께 누리는 디지털 문화 생태계의 발전 방향 등을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1부에서는 '2025 문화 디지털혁신 및 데이터 활용 공모전' 시상식과 기조연설이 진행됐고 2부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발제가 이어졌어요. 행사장 외부에서는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각 기관의 대표 혁신 사례를 소개하는 체험관이 운영되었는데요. 아르코에서는 오주영 작가의 ‘불가능한 조감도, 황조롱이 드론’을 전시했고, 한국관광공사에서 마련한, 오늘의 기분에 따라 어울리는 향기를 추천해주는 ‘AI로 나만의 향수 만들기’ 등 참가자들이 직접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을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인기였습니다.
(오른쪽) 아르코 홍보부스 설치 작품(2024 다원예술창작산실 선정 오주영 작가의 『불가능한 조감도 : 황조롱이.드론.AI』 전시 전경
아르코는 예술·콘텐츠 분야 트랙 C의 첫 세션을 맡았는데요. ‘AI가 다시 쓰는 문화예술 창작지형도: 분야별 좌표 살펴보기’를 주제로 AI를 둘러싼 막연한 불안 대신, ‘예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놓고 예술가·연구자·지원기관이 한 공간에 모여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좌장이자 첫 번째 발제자는 민세희 작가(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겸임교수, DATA/AI 아티스트). 그는 인공지능을 “우리의 데이터로 훈련된 시스템”으로 규정하며, 인간과 기계의 역할을 섞어 쓰는 대신 “서로 잘하는 일을 분리해서 쓰는 공동지능(co-intelligence)”의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더불어 현실적인 문제도 짚었는데요, 아이돌 연습생의 얼굴 데이터를 학습시킨 분류 모델이 편향된 데이터 때문에 사람의 ‘등급’을 매기는 장면을 예로 들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AI 모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클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완전히 진짜도, 완전히 허구도 아닌’ 이미지를 생성해내는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며, AI를 통해 “허구적인 사실, 추상화된 현실”을 재현하는 방식을 보여줬어요. 실제 인물의 SNS 데이터를 모아 ‘생성된 자아’를 만들고, 그 자아와 원래의 사용자가 대화하는 ‘에이전트 프로젝트’는 “어떤 시점의 데이터로 나를 학습시키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나가 생성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실험이라고 밝혔죠.
마지막으로 민 작가는 10년 전 서울시 재정 데이터를 시각화하던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며, 과거의 질문이 “이게 기술적으로 가능한가?”였다면, 지금은 “이걸 만드는 게 과연 가치가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제안했는데요. 공공기관을 향한 제언도 명확히 밝혔습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AI 창작물 속에서 무엇이 좋은 것인지 선택하고 큐레이션하는 공적 역할, 그리고 유·무료 서비스 사용 환경에 따라 창작 수준이 갈리지 않도록 하는 보편적 인프라 구축, 마지막으로 선례와 사례를 축적하는 교육·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죠. 민 작가의 발제는 인간의 창작도, AI를 활용한 창작도 동시에 중요해지는 시대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민세희 작가에 이어 두 번째 발제자인 한하경 아르코 기획조정팀 책임연구원은 같은 질문을 지원 기관의 입장에서 바라봤습니다. 한 연구원은 인쇄술 도입, 산업혁명, 정보화 혁명 등 역사적 전환기들을 짚으며 “기술은 늘 문화를 뒤흔들었고, 그때마다 불안과 저항, 그리고 새로운 질서가 함께 나타났다”며 항상 양면성을 띠는 변화의 시기를 짚으며 발제를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알파고 이후의 전문가들을 ‘AI를 활용하는 전문가’ ‘AI를 더 잘 활용하는 전문가’ ‘AI를 활용하지 않는 전문가’ 세 부류로 나눈 장강명 작가의 문구를 인용하며, 예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라고 강조했죠. 그러면서 할리우드 배우와 배우 노조의 AI 배우 반대 성명 발표, 국내외 창작자들의 혼란이 진행형인 와중에 호주예술위원회, 영국예술위원회 등 해외 기관들이 “공정성·윤리·투명성·인간 창의성 존중”을 핵심 축으로 한 가이드라인을 내고, 직원 교육과 워크숍을 진행하며 AI 리터러시 증진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선례를 소개했습니다.
이런 조사를 바탕으로 아르코에서도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소개했는데요. 먼저 AI 예술정책 이슈를 공론화하기 위해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어 해당 주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정책 방향 마련 필요성을 느껴 아르코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AI 인식과 활용 현황 조사 실시, 전문가 'AI 워킹 그룹'을 운영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발표했습니다. 특히 AI 워킹 그룹에서 아르코 비상임위원, 내부 연구자 및 실무책임자, 장르별 예술가, 기술·저작권 전문가, 예술정책 연구자가 모여 합의한 'AI 활용 공모사업 지원신청 및 창작 가이드라인'과 2026 문예진흥기금 공모사업 내 'AI 활용에 대한 안내'를 발표해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더불어 아르코가 ‘예술계의 혼란을 줄이는 최소한의 공적 기준’을 제시해야 할 책무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죠.
이후 세 번째 발제자인 손상원 교수(서울사이버대, ㈜디아랩 대표)는 협업의 예술인 공연 예술계 현장에서 느끼는 바와 어떻게 AI와 협업할 수 있는지를 발표하며, AI와의 협업은 결국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예술의 또 다른 여정일지 모른다”는 의미 있는 인사이트를 공유했습니다. 다음으로 이어진 우다영 소설가는 소설가로서 AI가 개인에게 미치는 일대일 관계의 변화보다는 AI가 우리 사회에 스며들며 우리 사회에 미치는 환경적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마지막 발제로 참가한 서지은 한화문화재단 큐레이터는 “AI가 창작의 도구에서 세계를 감각하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변화 중”이라며 코리아나미술관의 <합성열병>전시, 프랑스 주드폼(Jeu de Paume)미술관의 <The World Through AI> 전시 등을 소개했습니다.
이번 포럼을 통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건 이제 예술이 던져야 할 질문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만들 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과 AI, 자본과 노동, 공공과 민간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같은 질문 말이죠. 그 질문을 향해 예술가와 기관, 현장의 목소리가 함께 그려본 첫 번째 좌표. 앞으로 아르코가 어떤 실험과 지원 모델을 만들어갈지, 그리고 예술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AI와 손을 맞잡게 될지, 다음 포럼을 기대하게 만든 자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