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한 AI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AI 활용 예술 창작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예술의 경계가 흔들리는 시대
AI가 예술을 대신할 수 있을까? 컴퓨터 알고리즘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에 이 질문은 담론을 넘어 현실이 되었다. 이미 전시회와 경매장에서는 AI가 만든 작품이 사람의 손을 거친 것보다 높은 가격에 팔리기도 한다. 이제는 사람이 만든 예술과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예술 창작의 주체는 여전히 사람일 수 있을까? 그리고 예술의 감동은 어디서 오는가? 과연 예술의 패러다임은 정말 바뀌는 것일까? 지금의 예술 생태계는 지속가능한 것일까? 한 예술가라도 AI로 작품 지원 공모를 우리 위원회에 신청한다면 과연 배제할 수 있을 것인가? 배제할 수 없다면 어떻게 심의하는 것이 공정하고 정당한 것인가? 이런 수많은 질문과 복잡한 마음을 안고,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비상임위원으로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의 ‘생성형 AI와 예술창작·저작권 자문 워킹그룹(이하 AI 워킹그룹)’활동에 참여해왔다.
예술 창작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다
젊은 시절부터 깊은 감동을 준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작품을 처음 마주한 곳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었다. 그 작품은 기술혁신에만 몰두해 있던 나에게 ‘예술의 혁신이란 무엇인가’, ‘왜 그 감동이 그렇게 벅차올랐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었지만, 정작 그때의 나는 그것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다. 그동안 수많은 기술이 발전해 왔지만, 최근 들어 이런 질문들이 다시 떠오르게 만든 계기가 AI의 등장이라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호크니는 창작 활동에서 아이패드를 이용하는 작가로 눈길을 끈다. 그는 디지털 도구를 단지 새로움(novelty)으로만 보지 않고, 보는 행위(act of looking)를 확장하는 수단으로 인식한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이 말은 회화의 본질이 세상을 보는 방식(ways of seeing)으로 본다는 뜻이고, 그는 도구의 변화 속에서도 인간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그가 기술이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가능하게 하지만, 여전히 사람의 세상 보기라는 행위에 중심을 둔다는 의미이다. 김환기 작가는 지인이자 시인인 김광섭의 한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작품을 완성해 자신의 비전을 세상과 소통하려고 했다. 이 사례들은 인간의 내면과 감정, 그리고 가치관이 세상과 만나는 창작 과정을 인간이 주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환기미술관에서 펴낸 김환기 에세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예술에 대한 감동의 주체는 인간이다
AI는 인간에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예술가는 AI의 생성 결과를 통해 자신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색채나 구성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계기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 이런 의미에서 AI는 통찰의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을 대할 때 우리가 느끼는 감동의 주체는 인간이다. 나의 뜨거운 젊은 시절, 위대한 러시아 문학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 ‘인간의 삶은 무엇인가?’라는 작가의 물음은 지금도 내 가슴을 울린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이 지닌 고뇌와 윤리적 선택의 갈등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진실한 시선에서 비롯된다. 언젠가 그의 기념관을 직접 방문해, 그가 살았던 시대의 공기와 그가 글을 쓴 공간의 온기를 느끼고 싶다. 아마도 작가의 삶과 시대를 이해할 때 작품의 감동이 더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AI가 만든 문학작품은 이런 체험의 깊이와 인간적인 배경을 품기 어렵다. AI 창작은 맥락의 재현일 뿐, 작가의 삶과 사유의 축적이 만들어내는 정서적 울림을 찾기 어렵다.

‘Self-Portrait’(1887-1888), ‘Self-Portrait as a Painter’(1887-1888)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Foundation)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에는 그의 고독과 고통, 그리고 치열한 생의 흔적이 캔버스 위 붓질마다 배어 있다. 그 그림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기술적 완성 때문이 아니라, 삶의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또한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이라는 비극 속에서 예술가가 분노와 슬픔을 시각 언어로 승화시킨 결과였다. 이 두 작품이 세대를 넘어 공감과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작가의 심정이 인간의 고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예술을 감상할 때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그것이 누구의 손에서 만들어졌는가보다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이 얼마나 진실하게 전달되었는가에 달려 있다. AI가 여전히 발전 중인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AI가 만든 작품과 인간이 만든 작품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AI는 감동을 계산할 수는 있지만, 사람의 감정을 창조할 수는 없다.
AI 시대, 예술은 어디로 가야 할까?
AI가 예술을 대신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더 이상 이론적 논쟁이 아니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AI가 만든 이미지가 전시에 걸리고, 소설 초안이 알고리즘에서 흘러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예술가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고유한 감정의 진동과 기계가 계산해낸 매끄러운 결과물이 뒤섞이며 예술의 경계는 흔들리고 있다. 이런 변화에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난 여름, 예술과 기술, 법과 정책 분야의 전문가들과 AI 워킹그룹을 출범시켰다. 여러 달 이어진 논의 과정은 마치 한 시대의 전환점에서 시작된 걸음이지만, 각자에게 전달되는 이슈를 나누는 여정 같았다. 해외 선진국 기관들의 사례를 살펴보며, 세계는 이미 예술지원정책에서 AI 기준을 세우는 일은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AI 워킹그룹 전문가들은 문학, 공연예술, 시각예술, AI 기술, 법률 등 각자의 현장에서 마주한 AI의 가능성과 염려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아울러 예술지원기관인 예술위의 입장에서 누구든 AI를 활용해 공모사업을 신청한다면 배제할 수 없고, 또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심의는 어떻게 해야 정당한가 등 수많은 질문과 대답을 모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예술 분야의 ‘AI 활용 공모사업 지원신청 및 창작 가이드라인(안)’을 마련했고, 이를 기반으로 2026년 문예진흥기금 공모사업 공고문에 ‘AI 활용에 대한 안내’를 반영했다. 호크니가 아이패드를 통해 ‘보는 행위의 확장’을 이야기했듯, 기술은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제공할 수는 있을지라도, 예술의 감동을 대신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김환기가 시인의 시 구절에서 받은 영감에 덧붙여 작품을 완성했듯이 결국 예술은 작가 자신의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를 향한 이상이 만나 작품으로 탄생된다. 이를 통해 예술가는 우리들에게 시대를 넘어 감동을 주는 혜택을 준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만이 갖고 있는 경험의 깊이와 삶의 결 속에서 만들어내는 예술의 힘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 위에서 AI 워킹그룹은 다음 다섯 가지의 원칙*을 제시했다. (*‘AI 활용 공모사업 지원신청 및 창작 *가이드라인(안)’에 제시됨. 다만 예술계에서 현재 AI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공존하는 상황을 고려해, 공모사업 공고문에 수록된‘AI 활용에 대한 안내’에는 해당 가이드라인(안)의 내용을 선별하여 반영함.)
첫째, 예술 창작의 중심은 인간 예술가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둘째, AI 활용의 투명성 확보를 강조했다. 셋째, AI를 활용한 창작자의 책임성을 명확히 했다. 넷째, AI가 타인의 저작물을 침해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다섯째,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대응하도록 지속적인 교육과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러한 원칙을 기반으로 세부 가이드라인은 실무적이고 현실적인 요구들로 구성되었다. 더 나아가 이 내용은 다분히 창작자의 권리와 아울러 윤리적 자세도 함께 곁들여 있다. 우선, 공모사업 지원 과정에서 AI 활용은 허용되며, 사용 여부만으로 심사 결과가 불리하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도 제시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AI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예술가가 작품에서 어떤 역할과 기여를 했는지다. 다음으로 AI로 아이디어 초안이나 참고자료를 얻는 데 사용하는 것은 유익할 수 있지만, 그것을 그대로 작품으로 제출하는 것은 예술적 독창성과 창작자의 고유성을 약화시킬 위험이 크다. 따라서 예술가는 AI의 결과물을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최종 작품에서 인간 창작자로서의 분명한 기여가 드러나도록 요구된다. 이 가이드라인은 창작의 진정성이 드러나고 창작자의 윤리적 책임을 부담하도록 당부하는 것이다. 또한 지원신청서 작성 시 창작 과정에서 AI를 활용했다면 그 사실을 투명하게 밝히도록 권고하였다. 어떤 AI 서비스를 사용했는지, 기반 모델은 무엇인지, 그리고 창작 과정의 어느 단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도록 권유한다. 이는 공정한 심사를 가능하게 하고, 예술가 스스로 자신의 창작 기여를 명확히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AI를 사용했더라도, 작품과 지원신청서에 대한 책임은 모두 예술가에게 있음을 강조했는데, AI로부터 일부 도움을 받았더라도 최종 결정과 창작의 주도권은 예술가에게 있기 때문이다. AI 결과물이 기존 작가의 스타일이나 기성 작품과 지나치게 닮아 있는 경우 표절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에 예술가는 이미지, 문장, 형식 등의 유사성을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특히 학습데이터로서 타인의 저작물을 허락 없이 입력하는 행위는 법적인 위험이 크므로 반드시 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모사업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심의위원은 지원서 평가 과정에서 AI에 평가자료를 입력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하였다.
예술가는 자신이 작품에 어떤 의미와 창작적 결정을 담아냈는지를 명료하게 신청서에 반영하는 것이 예술가로서의 품위와 신뢰 유지에 중요하다. 이번 이번 AI 워킹그룹의 ‘AI 활용 공모사업 지원신청 및 창작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AI가 넓혀주는 가능성을 활용하되, 예술의 중심이 여전히 사람에게 있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어떠한 새로운 여건에서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모사업의 심사와 결과가 공정하고 투명한 방향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새로운 예술 생태계를 향하여
AI가 예술의 경계를 흔드는 변화의 한 가운데에서 결국 우리가 지속해야할 질문은 예술의 본질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하는 것이다. 기술이 앞으로 더욱 정교하게 사람을 닮아간다고 해도, 우리의 가슴은 여전히 창작자의 삶과 시선, 그리고 세계를 이해하려는 그 내면의 움직임에서 반응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정리한 이 가이드라인과 공모사업 공고문 수록 안내문은 이러한 인식 위에서 출발하며, AI시대에도 예술의 품위와 예술가의 위치를 지켜내려는 최소한의 움직임이고 첫 발걸음이다.
유네스코가 2025년 출간한 보고서, ‘인공지능과 문화’에서 강조한 것처럼 문화예술 영역에서의 AI 정책은 새로운 충격인 AI를 기술로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창작의 자유, 문화다양성, 인간 주도성을 보호하는 일이다. 우리 위원회의 AI 워킹그룹에서 수립한 다섯 가지 원칙인 인간 중심의 창작, 투명성, 책임성, 저작권 및 데이터 윤리, 지속적인 교육과 제도적 보완 등은 이 국제적 기준과도 잘 맞닿아 있다. 디지털 도구로 호크니가 자신의 예술적 사고와 새로운 통찰의 기회를 얻어 남다른 예술적 지평을 넓혔듯이, AI도 우리의 예술생태계를 확장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양날의 칼과도 같이 AI가 오용될 경우 기존 생태계를 교란시킬 잠재력도 상당할 것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이 이와 같은 충격을 얼마나 완화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적어도 AI 시대에서 우리 예술생태계를 어떻게 돌보고 성장시킬 것인지에 대한 작은 이정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가이드라인(안) : 'AI 활용 공모사업 지원신청 및 창작 가이드라인(안)'은 '예술창작을 위한 AI 기술 이해와 사례' 부록 내 확인 가능하다. 워킹그룹 활동의 결과물은 '예술창작을 위한 AI 기술 이해와 사례:기술 개요, 장르별 사례, 법적 개념 중심' 사례집이고, 이 자료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