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small a thought it takes to fill a whole life."
(한 사람의 전 생애를 채우기에 얼마나 작은 생각이면 충분한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문장
어쩌면 우리 각 사람의 삶은 하나의 간결한 문장으로 대변될 수 있을지 모른다. 1950년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은 인공지능에 대한 첫 번째 논문으로 평가되는 논문을 발표한다. 그의 논문 "컴퓨팅 기계와 지성(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의 말머리에는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Can machines think?)"라는 질문이 쓰여 있다. 같은 해 미술계에서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그 시기의 현대미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술은 스스로 자신의 본성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 예술자체의 자율적 본성에 대한 질문이다. 이와 같이, 20세기의 기술과 예술의 본질에 대한 통찰의 움직임은 21세기에 기술과 예술이 융합되어 경계가 허물어진 ‘아트라는 현상’을 비추고 있다.
한편, 인터넷 아티스트이자 이론가이며, 비디오 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인 올리아 리알리나 (Olia Lialina)는 "뉴미디어가 동시대 예술의 주제가 되어 그 안으로 녹아든다면 이것은 정말 손실이 아닐 수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문장은 단순히 매체 중심적 사고로 인한 예술 개념의 상실을 우려하는 것을 넘어, 여러 산업 분야와의 관계망 속에서 예술이라는 장르의 현 위치에 대해 재고해 보도록 만든다.
AI에 대한 연구는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지만, AI에 대한 대중적 차원의 관심은 21세기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을 화두로 증폭되고 있다. 방대한 규모의 데이터 양과 고성능 컴퓨터의 사용은 신경망 기반의 ‘딥러닝(Deap Learning)’을 성공시키며, 이에 대한 연구가 독자적인 영역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AI 기술 발달에 대한 관심은 곧 미래의 생활양식을 예측하는 척도로 이어진다. 현재는 특정 작업을 수행하도록 설계된 AI (Artificial Intelligence)를 목적에 따라 활용하는 수준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인간 수준의 일반적인 지능을 가진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모든 면에서 능가하는 ASI(Artificial Superintelligence)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대미술 작가들은 이러한 흐름 위에서 작가 자신에 대한 성찰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토대로 특정한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면, 인문학적 리서치를 통해 유의미하다고 판단되는 매개를 발견한다. 여기에서 비롯한 내러티브를 적합한 기술을 활용하여 표현하는 방식으로 최초 질문의 종적, 횡적 깊이감을 확장한다. 나아가, 현대미술가들은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AI를 비롯한 기술과 미래라는 화두에 대해 탐구하기도 한다. 세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인지로부터 ‘미래에 인간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까지, 그 사유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지금부터는, 현대미술의 현장에서 AI를 활용한 작업의 실제 사례들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먼저, 대형 자연 모델인 LNM을 만들어 작업에서 AI의 비중과 역량을 극대화한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의 작업을 소개한다. 이어, 시간개념에 대한 철학적 상상을 생성형 AI와 게임엔진을 활용하여 제안한 김아영 작가의 작업을 다룬다. 끝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이상촌(理想村)의 개념을 구현하며, 그 마을에 대한 내러티브를 구현하는 데에 AI를 활용한 AHA콜렉티브의 작업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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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의 대형 자연 모델: LNM(Large Nature Mo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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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푸투라서울 #레픽아나돌⠀갤러리 3에서는 서울바람(2024)과 인공현실- 태평양(2024) 두 작품을 동시에 만난다. 〈서울 바람(2024)〉은 아나돌(@re (3).](/raonk/2025/11/20251111_101413002_61896.jpg)
©Living Archive:LNM, 2024 ©Refik Anadol, Courtesy of Futura Seoul, Photo by kim dong june, yongjune choi and hnh
AI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대표적인 작가인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은 2024년 푸투라 서울에서 열린 그의 전시 ‘ECHOES OF THE EARTH: LIVING ARCHIVE’에서 대형 자연 모델인 LNM(Large Nature Model)을 기반으로 한 작업을 선보였다. AI가 기록 보관소의 역할을 하도록 하여, 2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연과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하여 모델에 학습시켰다. 이때, 시각 데이터뿐 아니라 자연의 향기 또한 데이터화하였다. 몇 년간에 걸친 이 대규모 프로젝트에는 ‘레픽 스튜디오’의 예술 분야와 엔지니어 인력이 동원되었으며, LNM 구축을 위해 엔비디아와 구글의 지원과 협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레픽 아나돌의 작업은 작가 스튜디오가 직접 LNM을 구축하여 학습결과 데이터를 작품의 아웃풋에 활용한 부분이 특징적이다. 기술적 지원을 받아 대형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의 측면에서 차별화가 되는 사례이다. 한편, LNM 구축 자체로부터 담론을 형성하는 방식의 작업이기에, ‘대규모 모델을 학습시키는 내용 선별에대한 기준점’, ‘해당 데이터에 내재한 개발 차원에서의 편향성’, ‘저장소로서의 대규모 자연 모델의 업데이트 여부’, ‘최종 아웃풋의 스타일과 학습된 데이터의 시지각적 관계’ 등 나누어 볼 만한 주제들이 발견된다. 작가의 방법론과 아웃풋을 아우르는 총체적 감상에 있어서, 연구 단계에 대한 공감이 작품에 대한 보다 풍부한 담론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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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의 시간 개념에 대한 질문: <딜리버리 댄서의선:인버스>(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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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ACC 미래상: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 전시 전경, ⓒ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24년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김아영의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는 시간개념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생성형 AI와 게임엔진 등을 활용해 제작한 전시이다. 작가는 작품 인터뷰에서 “작업 과정에 있어서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의 절반 정도를 AI와 함께하는 협업의 영역으로 열어두었다. 내러티브의 직조의 과정, 이미지를 생성하는 과정, 마지막으로 영상화하는 모든 과정에 각기 다른 종류의 수많은 AI 툴을 사용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AI는 도구로서 기능을 할 뿐, 의미를 생산하는 주체로서 작용할 수 없었고, 작품의 가치를 생산하는 역할은 인간의 노동에 남겨진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작가는 작품에서 두 개의 가상의 달력-‘현대력’과 ‘고대력’을 만들어 시간에 대한 역설 속에서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서, 리서치 과정과 내러티브를 보여주는 방식 자체에 주목해보자. 예술과 AI를 포함한 기술적 측면이 개념과 매체의 역할로서 나뉘기보다, 내러티브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방식에서 작가가 시간에 대한 또 다른 감각과 인지를 제안하려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한편, 전시에서 영상과 해시계가 조응하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연출을 위한 간학문적인 협업 또한 작업의 중요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과 기술이 결합한 현대미술에 있어서 집단지성의 협업은 이제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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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A콜렉티브의 디제잉을 통한 균형 잡기: <이상촌(理想村)의 도깨비 디제잉>(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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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AHA콜렉티브 <이상촌(理想村)의 도깨비 디제잉> 전시 전경, 사진:허유 ⓒAHA콜렉티브
AHA콜렉티브의 전시 <이상촌(理想村)의 도깨비 디제잉>(2025)에서는 리서치 과정에서부터 작품 제작의 단계까지 필요에 따라 AI가 활용되었다. 먼저, 전시의 초입에 위치한 ‘다성성장군(多聲性將軍)’은 이상촌에서의 과거 행적들을 아카이빙하고, 미래의 이상을 향한 지표를 가늠하는 역할을 한다. 그 안쪽에는 이상촌의 거주자이자, 균형잡기를 실천하는 도깨비 4인의 내면이 투영된 작품 ‘이상촌(理想村)’이 상영되고 있다. 세로로 긴 아치형의 벽면에는 도깨비가 거주하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인 중간 세계를 그린 작품 ‘도깨비 언덕’이 루핑 된다. 이상촌 중심부의 ‘기후비(氣候碑)’는 이상적 환경의 조건을 가늠하는 객관적 지표를 상징한다. 전시장 전체에는 디제잉의 역할을 하는 지성민 작곡가의 사운드가 루핑되는데, 이는 K.Stockhausen - Gesang der Jünglinge (슈톡하우젠 - 게장 데어 융링에 /소년들의 노래)에서 발췌한 목소리와 징의 소리를 재료로 한다.

2025 AHA콜렉티브 <이상촌(理想村)의 도깨비 디제잉>, AI 리서치, 사진:허유 ⓒAHA콜렉티브
이 전시에서 AI의 활용의 당위성은 ‘현재에 위치해 있으면서,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가상적 공간인 ‘이상촌(理想村)’이라는 설정에 비롯한다. 먼저, ‘이상촌(理想村)’의 구성요소인 ‘기후비(氣候碑)’는 콘크리트 덩어리들과 온도기록계로 이루어져있다. 용산의 한 아파트 철거현장에서 수집한 콘크리트 덩어리들과 우연히 발견한 온도기록계에 기록된 기후를 역추적해나가는 과정이 이 작품의 내러티브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AI와의 협업은 일어난 사실과 이에 대한 인지과정이 내포한 불분명한 특질을 공유한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다성성장군(多聲性將軍)’은 ‘이상촌(理想村)’을 상징하는 또 다른 지표다. 과거에 이상을 추구했던 사회적 사건들로부터 현재진행형의 이슈들을 분류, 재조합해나가는 과정이 반복된다. 이는 ‘다성성(多聲性)’개념에서 착안한 방식으로, 이념과 의지에서 비롯한 여러 행적들의 독립된 의미가 공존하거나 교차하며, 사건들 간 연계성을 중심으로 한 내러티브를 형성해나간다. 정보에 대한 리서치로부터 시각적 구현의 단계까지 생성형AI를 적극적으로 개입시킨 사례이다.
AHA콜렉티브의 경우, AI를 활용함에 있어서 작품의 전면에 그 아웃풋이 드러나기 보다는 레퍼런스의 용도로 AI를 사용하는 양상을 보인다. AI로부터 유의미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생성된 정보의 정합성에 대한 신중한 선별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작품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제적 디렉션과 디테일 조정에 있어서 여전히 작품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주관적 사유와 객관화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AI를 활용한 현대미술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제작 과정에서의 간학문적 협업의 양상’과 ‘리서치 기반의 내러티브 형성 방법론’과 같은 공통된 맥락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대미술에서 AI가 활용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지점은 ‘예술가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방향’이다. 예술가는 기술의 습득 자체에 주목하기 보다 ‘그 기술로 인해 도래할 미래’에 대한 철학적, 인문학적 접근을 제시한다. 예측하건데, AI-AGI-ASI의 발전 단계에서 기술에 대한 담론은 우리에게 늘 시간을 관통하는 선(線)의 개념으로 존재할 것이다. 이미 도래한 기술 중심의 흐름 위에 예술가는 어떠한 균형점을 제시할 수 있을지 질문해 본다. 끝으로, AI에 대한 통찰에 있어서 되려 ‘AI라는 기술의 활용이 필수적일까?’ 라는 간단한 문장과 함께, 일명 ‘AI스럽지않게 시대를 관통하는 작업’의 가능성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