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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살아 숨쉬는 그림, 민화

원로 민화가 송규태 화백, 전통의 해학으로 오늘을 그리다

저자
글_에이스퀘어 (편집부)
발행일
2025-10-30

전통 민화의 1세대 원로이자 대한민국민화전통문화재 제1호, 은관문화훈장 수훈 작가인 송규태 화백은 복원가이자 창작자로 한국 민화사에 앞장서서 명맥을 잇는 귀한 인물입니다. 고구려 무용총, 능산리 고분벽화 등 수많은 고화가 그의 손길로 복원, 재현되었죠. 사라진 경희궁을 되살린 대작 <서궐도>는 새로운 역사적 가치를 창조해 낸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의 붓길은 과거의 결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의 숨을 불어넣는데 집중했습니다. 4년 전 아르코예술기록원에 142점(809건)의 화본을 무료 공개로 기증하며 “열어 놓을수록 전승된다”는 믿음을 실천하기도 했죠. 붓을 든 손길에는 여전히 열정이 서린 송 화백을 만나 그가 인생을 바쳐 지켜온 우리 민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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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한 글로벌 콘텐츠의 인기로 인해 ‘작호도’의 호랑이와 까치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민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실감하시나요?

그럼요. 요즘 들어 민화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걸 피부로 느낍니다. 특히 ‘작호도’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까치가 글로벌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소개되면서, 예전에는 생소했던 우리 전통 그림이 세계인의 눈길을 끌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하고도 반가운 일입니다. 예전에는 민화가 단순히 옛 그림, 서민의 그림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그 안에 담긴 상징성과 해학, 그리고 독특한 미감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조명되고 있어요. 전시회에 오시는 관람객들 중에서도 외국인들이 부쩍 늘었고, 호랑이의 익살스러운 표정이나 까치의 의미를 물어보는 분들도 많습니다.


Q. 1990 년대 민화 배우기 열풍의 중심에 계셨습니다. 당시 분위기와 그 이후의 변화는 어땠나요?
1990 년대는 민화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이전만 해도 민화는 박물관이나 고서 속에만 존재하는 옛 그림으로 여겨졌죠. 그 무렵부터 ‘우리 그림’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전국 각지에서 수강생들이 몰려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열풍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민화의 따뜻함과 상징성에 사람들이 매료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민화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 창작의 영역으로 확장되었고, 현대적인 감각과 다양한 재료를 접목한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게 됐죠.


군록도

©군록도, 송규태 화백 작


Q. 민화를 그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원래 고미술품 중 회화 수리와 복원 작업을 오래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복원 중이던 민화 한 점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화려하거나 정교한 기법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 담긴 해학과 따뜻한 정서, 그리고 민중의 삶을 위로하던 그림의 힘이 너무도 강렬히 다가왔습니다. 그때 처음 ‘아, 나는 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죠. 조자룡 선생님과의 만남 또한 제 작업에 큰 전환점이었어요. 선생님은 민화를 단순한 옛 그림이 아니라, 민중의 철학과 세계관이 담긴 예술로 바라보셨죠. 그분의 연구는 민화의 상징성과 구조, 그리고 시대적 맥락을 깊이 있게 풀어내는 데 집중되어 있었고, 저 역시 그림을 그릴 때 단순히 예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정신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통하는 지점은 바로 ‘민화는 살아있는 그림’이라는 믿음입니다. 조자룡 선생님은 학문으로, 저는 붓으로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고미술품 재현 작업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시대가 변하며 복원의 기준이 달라진 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고미술 복원은 단순한 복사가 아닙니다. 특히 색과 안료의 농담을 결정하는“ 과정은 그 작품이 지닌 시간의 깊이와 원작자의 의도를 되살리는 일이죠. 예를 들어 고구려 무용총이나 능산리 고분벽화 같은 경우, 원래의 색이 많이 퇴색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릴 수는 없습니다. 당시 사용된 안료의 성분, 채색 방식, 그리고 시대적 미감을 고려해 농담을 조절해야 하죠. 오늘날의 보존 과학 기준으로 다시 한다면 바꾸고 싶은 점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원형을 최대한 복원하는 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보존’과 ‘존중’의 균형이 더 중요해졌어요. 원작의 손상된 부분을 무리하게 복원하기보다는 그 손상 자체를 역사로 받아들이고 최소한의 개입으로 작품의 생명을 유지하는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Q. 사라진 경희궁을 되살린 대작 <서궐도>의 작업 과정도 궁금합니다.
‘서궐도’는 제게 단순한 회화가 아니라,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었습니다. 경희궁은 지금 거의 흔적이 남지 않아 ‘서궐도안’ 같은 몇 안 되는 자료를 토대로 상상과 고증 사이를 오가며 그려야 했죠. ‘추정’과 ‘창조’의 경계는 늘 고민이었습니다. 너무 상상에 의존하면 역사성이 흐려지고, 너무 고증에만 매달리면 그림이 생명력을 잃으니까요. 그래서 당시의 건축 양식, 궁궐 배치, 주변 지형, 조선 후기의 회화적 표현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했습니다. 마치 시간의 안개 속에서 실루엣을 더듬듯이, 붓을 들었습니다. 하나의 전각이 완성될 때마다 마치 잃어버린 역사의 빈 자리에 숨결을 불어넣는 듯한 감동이 있었죠. 이 작품을 통해 경희궁의 웅장함뿐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의해 사라진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아픔도 함께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서궐도’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기억을 복원하고 미래를 향해 되새기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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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복원가와 작가, 두 정체성은 어떻게 공존하나요?
복원가와 작가라는 두 길은 얼핏 보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것 같지만, 제 안에서는 늘 함께 움직여 왔습니다. 복원은 과거를 존중하고 지켜내는 일이고, 창작은 현재를 살아내며 미래를 그리는 일이죠. 복원 작업을 할 때는 원작자의 흔적을 해치지 않고, 작품이 지닌 시간의 결을 보존하는 것이 우선이죠. 그래서 제 손이 아니라 그 시대의 손이 움직인 듯한 결과를 남기려 노력합니다. 반면 창작의 순간에는 제 감정과 상상, 시대의 흐름을 자유롭게 담아냅니다. 하지만 그 자유도 전통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요즘 선생님의 일상은 어떻게 흘러가나요? 신체 리듬을 고려해 작업 컨디션을 관리하는 생활 루틴이 따로 있나요?
요즘은 거의 작업을 하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밤을 새워 작업하는 일이 많았지요. 신체 리듬을 고려해 오전 시간에 가장 집중력 있는 작업을 배치합니다. 붓을 드는 시간은 보통 아침 7시부터 정오까지, 그리고 밤 8시 이후가 손과 눈, 마음이 가장 조화를 이루는 시간입니다. 작업은 체력과 감정의 균형이 맞아야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고 생각해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 외에는 되도록 많이 걷고자 해요. 그릴 수 있는 몸과 마음을 만드는 시간도 중요합니다. 예술은 결국 삶의 리듬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Q. 많은 제자를 양성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가장 강조하신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민화는 단순한 기법이나 형식으로만 접근해서는 그 깊이를 느낄 수 없습니다. 그 안에는 시대의 정서, 사람들의 염원, 그리고 삶의 해학이 담겨 있거든요. 그래서 붓을 들기 전에 먼저 마음을 다스리고, 그림이 전하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전통을 배우는 일은 과거의 예술가들과 대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의 손길과 정신을 존중하면서도 오늘의 감각으로 풀어내는 균형을 잡는 것이 민화의 매력이죠. 그래서 저는 제자들에게 항상 말합니다. ‘잘 그리려 하지 말고, 그림을 이해하려고 해라.’ 작업 원칙으로는 ‘느리고 깊게’를 강조합니다. 민화는 빠르게 완성하는 그림이 아닙니다. 선 하나, 색 하나에도 의미가 담겨 있기에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 의미를 되새기며 그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태도가 쌓이면 결국 그림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게 되죠. 그 마음을 지키는 것이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전하고 싶은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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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은관문화훈장과 문화재 지정 이후, 현장 분위기도 달라졌나요?

많이 달라졌습니다. 은관문화훈장과 문화재 지정 이후, 민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기반이 눈에 띄게 강화되었고, 현장에서도 그 변화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민화를 ‘옛 그림’ ‘서민의 그림’ 정도로 여겼지만, 이제는 전통문화의 핵심 자산으로 보는 인식이 확실히 자리 잡았어요. 공공기관과 문화재단의 지원, 교육 프로그램도 늘었고, 지자체에서도 민화 창작을 위한 공간과 예산을 활발히 마련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민화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식적인 플랫폼이 부족했지만, 지금은 미술협회나 문화재청 등에서 민화 분야를 독립된 예술 장르로 인정하고, 관련 전시·공모·교육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덕분에 젊은 작가들도 민화를 전공하고, 창작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데 훨씬 더 수월해졌죠. 무엇보다 민화가 단순한 재현을 넘어 창작과 현대적 해석의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 가장 반갑습니다. 그런 변화에 제가 조금이나마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게 느껴지고요.


Q. 젊은 세대의 작업은 색과 재료가 다양해졌습니다. 어떤 시선으로 보시나요?
세대별 제자들의 변화는 아주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기성 세대는 전통의 틀을 지키는 데 집중했다면, 요즘 20~30대 작가들은 민화를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색채는 더 과감해졌고, 소재도 한지나 먹에 국한되지 않고 캔버스, 디지털, 아크릴, 섬유 등 다양한 재료로 확장되고 있어요. 매체 역시 NFT, 영상, 설치미술까지 민화의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민화가 시대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예술이라는 증거입니다. 이런 흐름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콘텐츠’가 살아 있어야겠죠. 제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감성, 그리고 시대와 연결된 콘텐츠가 없다면 민화는 박제된 전통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민화는 본래 민중의 삶과 염원을 담은 그림입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도 자신들의 감정과 현실을 민화에서 느낄 수 있어야 진짜 예술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Q. 142 점(809건)의 화본을 아르코예술기록원에 기증하고 디지털로 공개하셨습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오랜 시간 공들여 그린 그림들이고, 제 삶의 흔적이 담긴 작업들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늘 ‘예술은 나눌수록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민화는 혼자 품고 있으면 사라지고, 함께 보면 이어지는 그림입니다. 민화는 원래 민중의 그림이었고, 누구나 보고 즐기고 그릴 수 있었던 예술입니다. 그 정신을 오늘날에도 이어가려면, 작품을 감추기보다 드러내고, 기록을 쌓기보다 공유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디지털 공개는 특히 젊은 세대에게 민화를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직접 전시장을 찾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민화를 보고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들이 민화를 보고, 질문하고, 다시 그리게 된다면, 그 자체로 전승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저는 제 그림이 누군가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길 바랍니다. 디지털 공개는 특히 젊은 세대에게 좋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그림을 볼 수 있고, 그들이 다시 그리고 질문하게 된다면 그 자체로 전승이 이루어지는 셈이니까요.


까치호랑이 (2)

©까치호랑이, 송규태 화백 작



Q.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민화의 장면은 무엇인가요?

저는 언제나 ‘작호도’의 호랑이와 까치를 좋아합니다. 호랑이는 권위와 위엄의 상징이면서도 민화 속에서는 익살스럽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등장하죠.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길조로, 둘이 함께 있을 때 이야기가 살아납니다. 제가 이 장면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해학과 역설 때문입니다. 무서운 호랑이가 까치 앞에서는 어리둥절하거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는 모습은 권위와 유머가 공존하는 우리 문화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민화는 늘 삶을 위로하고 웃음을 주는 그림이었고, 그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이 호랑이와 까치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꼭 완성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완성하고 싶은 프로젝트라기 보다는 붓을 들 수 있는 마지막까지 민화를 그리는 것이 제 남은 인생의 목표입니다. 그림은 붓으로 시대를 기록합니다. 저는 그 붓으로, 제가 지나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민화로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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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평생을 민화와 함께하셨습니다. 오랜 세월 붓을 놓지 않고 작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지, 또 선생님께 민화란 어떤 의미인지요?

돌이켜보면 평생을 민화와 함께 걸어왔습니다. 붓을 놓지 않고 작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민화가 제 삶의 언어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저는 늘 그림 앞에 앉았습니다. 민화는 저에게 위로였고, 질문이었고, 때로는 답이기도 했습니다. 민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닙니다. 민중의 마음을 그린 예술,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시각적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는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고, 소망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민화를 그릴 때마다, 마치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신 써주는 마음으로 붓을 듭니다. 오랜 세월 작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도 민화가 늘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같은 호랑이를 그려도 그날의 감정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고, 계절에 따라 색이 달라집니다. 민화는 살아있는 그림이고, 저 역시 그 생명력에 이끌려 지금까지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민화는 제가 삶을 그리는 방식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창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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