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피어나고 사라지는 찰나를 염원하는 순간. 오늘날 우리가 낙화(落火)놀이에 열광하는 이유는?
낙화(落火)놀이:
[명사]
① 불을 붙인 낙화봉(落火棒)을 줄에 매달거나 공중에 띄워 불꽃이 흩어지는 모습을 감상하는 한국 전통 불꽃놀이.
② 불교의식 낙화법(落火法)에서 유래한 민속놀이로, 액운을 막고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
③ ‘줄불놀이’로도 불리며, 경남 함안과 세종시 등지에서 무형문화유산으로 전승되고 있다.
©국가유산청
[어원]
‘낙화(落火)’는 문자 그대로 ‘불이 떨어지는 것’을 뜻한다. 고려시대 연등회(燃燈會)에서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던 불교 낙화법(落火法)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정. 연등의 불빛 아래에서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며 번뇌를 태워 없애고, 밝은 광명으로 복을 기원하던 관화(觀火)의식이 민간으로 전파되면서 조선시대에 민속 놀이화 되었다.
[역사]
낙화법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며 민간의 놀이로 변모했다. 《동국세시기》와《해동죽지》에는 부처님오신날(4월 초파일)의 대표 세시풍속으로 ‘낙화’가 등장한다. 사찰의 광명 의식이 마을 축제로 흘러 들면서, 불꽃은 점차 마을 공동체의 축제이자 액막이 의식이 된 것. 불교낙화법보존회에 따르면 낙화는 고려시대부터 사찰에서 행해오던 의식으로, 천년 동안 계승되어 온 우리 전통 불교문화이자 불꽃놀이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불교의식으로 출발했지만, 조선 후기에는 정월 대보름의 액막이 행사 혹은 봄밤의 풍류로 변주되며 마을 잔치의 일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다가 1985년 ‘함안낙화놀이보존회’의 복원으로 다시 불이 켜졌고, 현재 경상남도 무형문화유산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다.
▪ 함안 낙화놀이
경상남도 함안군 괴항마을에 전승된 ‘함안 낙화놀이’는 17세기 조선 중엽에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함안군수로 부임한 학자 정구가 군민의 안녕을 빌기 위해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며, 1970년대 산업화로 중단되었다가 1985년 ‘함안낙화놀이보존회’가 복원했다. 현재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유산 제3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마을에서 직접 만든 수천 개의 낙화봉을 줄에 매달아 이수정 위에 불을 붙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붉은 불빛이 물 위로 흩어지며 ‘불꽃비’를 만드는 이 장면은 매년 수만 명의 관람객을 불러 모으는 함안의 대표적인 전통문화행사로 자리잡았다.
©한국관광공사
▪ 세종 불교 낙화법
불교에서는 세종시 영평사에서 잊혀진 불교 낙화법을 복원했다. 주지 환성 스님이 평양 노장 스님에게서 배운 의식을 이어 2024년 ‘세종 불교 낙화법’이 시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낙화법보존회는 고려와 조선 시대 낙화 의례를 바탕으로 염송-점화-관화 순서로 진행되는 의식과 축제를 함께 진행한다. 불꽃을 관조하는 낙화법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빛을 통해 번뇌를 태우고 마음을 비우는 수행의 형태를 지닌다.
[형태]
낙화봉은 숯가루, 소금, 사금파리 가루, 목화솜을 섞어 한지에 말아 만든다. 줄에 매단 낙화봉에 불을 붙이면 붉은 불빛이 피어오르며 탁탁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짧은 시간에 불이 흩어지지만, 그 잔광은 오래도록 물 위와 밤하늘을 물들인다. 낙화의 미학은 순간의 아름다움에 있다. 불이 꺼지는 찰나에 오히려 빛이 가장 강렬하게 타오르는 무상함 속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예술.
©백제문화단지
[의의]
최근 낙화놀이의 특별한 아름다움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알려지며 전국 곳곳에서 낙화놀이가 부흥 중. 함안, 세종, 안동, 부여, 울산 등 여러 지역에서 지역색을 살린 낙화놀이를 지역축제와 관광 콘텐츠로 재해석해 선보이고 있다. 최근 한국관광공사는 경상남도, 함안군과 함께 무진정 일대에서 ‘함안 낙화놀이 스페셜 데이’를 개최해 일본·대만 관광객 1,300명이 방문하며 지역 관광을 활성화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