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000명, 1,000억원, 450만 달러, 9,600명…. 2025년 9월 첫째 주, 서울은 숫자의 향연이었다. 프리즈와 키아프라는 두 거대 아트페어가 쏟아낸 이 숫자들은 한국 미술시장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이면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드러낸다. 과연 이 숫자들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며, 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Frieze Seoul 2025. Courtesy: Frieze and Wecap Studio. Photo © Wecap Studio
미술주간의 숫자들:152,0001)명과 1,000억2)의 의미
지난 몇 년 간, 9월 첫째 주는 공식적·비공식적 '미술주간(Art Week)'으로 자리잡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으로 2015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원래 9월 말 즈음하여 열리곤 했는데, 프리즈·키아프 공동 개최 2년차인 2022년부터 운영 기간을 9월 초로 전격 변경했다. 그리고 2024년, 10년간 쌓아온 '미술주간'은 '대한민국 미술축제'로 명칭을 바꾸며 전국 규모의 통합 문화 브랜드로 진화했다. 두 아트페어가 열리는 서울시에서는 지방 정부가 발 벗고 나선 덕분에, 2023년부터 '서울아트위크'가 시작되었다.
혹시 헷갈리시는 분들을 위해 미리 정리해두자면, 9월 초의 '아트위크' 혹은 '미술주간'은 2012년부터 주로 5월 이어져온 '박물관·미술관 주간'과는 완전히 다른 행사다. 시기적으로도 다르거니와, 그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는 점에서다. '박물관·미술관 주간'은 세계 박물관의 날(5월 18일)을 기념하며 시민들에게 문턱을 낮추는 교육적 행사인 한편, 9월의 행사는 비엔날레와 아트페어 등 대규모 미술 행사들이 집중되는 시기에 맞춰 미술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축제로 기획된 것이다. 한마디로 전자는 '공공성', 후자는 '축제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
9월 첫째 주가 '미술주간'이 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프리즈와 키아프라는 두 아트페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다 보니, 이 기간을 생각할 때는 무엇보다 숫자가 두드러진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이를테면 152,000명의 관람객이 두 아트페어를 찾았고, 추정 거래액은 1,000억 원대를 기록했다. 프리즈 서울에서는 마크 브래드포드의 회화 작품이 450만 달러(약 62억 6천만원)에 거래되며 프리즈 서울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고, 키아프는 24년 역사상 처음으로 "공진(共振)"이라는 통합 주제를 내걸었다. 주최측에서 밝힌 VIP 프리뷰 참석자만 9,600명으로 전년 대비 30%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정작 인상적인 순간들은 이런 헤드라인 숫자들 사이사이에 숨어 있었다. 몇 개의 특별한 장면들을 숫자와 함께 풀어보자.

Frieze Seoul 2025. Photo © Wecap Studio. Courtesy of Frieze
450만 달러3): 최고가 신기록의 빛과 그림자*
200만 달러 혹은 33억. 결코 작지 않은 이 숫자는 2025년 프리즈 서울에서 판매된 최고액 작품과 두 번째로 비싼 작품의 가격 차이다. 스위스 취리히에 본사를 둔 하우저 앤 워스가 공개한 세일즈 리포트에 따르면, 마크 브래드포드의 〈Okay, then I apologize(오케이, 그렇다면 내가 사과할게요)〉(2025)는 프리즈 첫 날 아시아의 개인 컬렉터에게 450만 달러에 판매되었다. 두 번째로 비싼 가격에 판매된 작품은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Es ist dunkel, es ist(어둡다, 그것은)〉(2019)으로, 또 다른 유럽계(오스트리아) 갤러리인 타데우스 로팍에서 180만 유로(210만 달러)에 팔렸다. 구매자가 누구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프리즈 서울 페어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알려진 마크 브래드포드의 〈Okay, then I apologize(오케이, 그렇다면 내가 사과할게요)〉(2025)가 걸린 하우저앤워스 갤러리의 부스.
Installation view, Hauser & Wirth at Frieze Soul, Stand A25, 2025. Photo © Creative Resources
이런 정보는 각 갤러리들이 자율적으로 배포하는 '세일즈 리포트'를 토대로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되는 숫자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거래는 VIP 프리뷰나 일반 관람이 시작되기도 전에 일어나는 경우도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페어 시작 1~2주 전에 소수의 VIP 고객들에게 작품 리스트를 공개하는 '프리세일' 역시 갤러리들의 관행이다. 세일즈 리포트상의 판매 기록은 원칙적으로 페어장에서 이뤄진 거래만을 대상으로 삼으며, 공개 여부는 갤러리의 선택이다. 어떤 갤러리는 모든 거래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반면, 어떤 곳은 선택적 공개와 침묵을 택한다. 이런 구조적 특성상 아트페어에서 '무엇이 얼마에 팔렸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완전한 답을 얻기는 어렵다. 결국 우리가 접하는 숫자들은 갤러리들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런데 판매 순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드러난다. 3번째로 비싼 작품 역시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또 다른 작품(〈 Erstens, bitte schön(무엇보다, 부디)〉(2014), 판매가 150만 달러, 화이트큐브 판매)이었고, 그제서야 4위에 김환기의 〈구름과 달〉(1962)(판매가 약 20억원(140만 달러), 학고재 판매)이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톱5에 이름을 올렸다. 5위와 6위는 모두 조지 콘도의 작품들이지만 서로 다른 갤러리에서 판매되었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규모가 큰 갤러리들이 고가 판매를 독점하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제갤러리만 해도 15점을 판매했고, 이 중 제니 홀저 작품은 40-48만 달러, 하종현의 회화는 23-27만 달러에 거래되는 등 여러 점이 수십만 달러 가격대를 기록했다. 반면 40여 개 갤러리가 작년에 이어 올해 참가를 포기했고, 상하이의 한 갤러리는 첫날 대부분의 작품을 판매했다가 이튿날 한국 컬렉터가 가장 큰 거래를 취소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렇다면 이런 거래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좌) 게오르크 바젤리크의 〈 Erstens, bitte schön(무엇보다, 부디)〉(2014)를 들고 나온 화이트 큐브 갤러리의 부스 전경.
White Cube at Frieze Seoul 2025. Photo © White Cube (Alex Burdiak and Benjamin Cheung).
(우)조지 콘도, 〈Thinking and Smiling〉, 2025. 이미지 제공: 작가 및 Sprüth Magers. Photo © Genevieve Hanson

로버트 인디아나의 조각 작품과 유영국의 <물>(1979) 작품이 걸린 페이스 갤러리 부스 전경.
Photo © Sangtae Kim, courtesy Pace Gallery
VIP 경제학:9,600명4) VS 1,000명5)까지
9,600명. 키아프 VIP 프리뷰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진, 지난 해보다 30% 늘어난 숫자다. 평일에 시간을 내어 아트페어에 참석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람'이 갑자기 30%만큼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수치일까? 작년에 비해 유명인사들의 참여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만은 사실이다. 예컨대 BTS는 작년에는 혼자 왔던 RM이 올해는 뷔, 제이홉까지 동행했고, 블랙핑크 역시 작년에 혼자였던 로제가 지수, 리사를 데리고 나타났다. 이외에도 세븐틴 등 여러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VIP 프리뷰에 새롭게 얼굴을 비추었다. 뿐만 아니라 정치계에서도 작년보다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작년 VIP프리뷰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참석했는데, 올해는 김혜경 영부인이 개막식에 등장해 'K-컬처의 위상 상승'과 '서울의 매력적 도시 만들기'를 언급하며 행사를 격려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VIP라는 호칭이 과연 유의미한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키아프와 프리즈의 관람객 수는 15만 2,000명으로 알려졌지만 (키아프 82,000명, 프리즈 서울 70,000명) 실제로는 한 사람이 두 아트페어를 모두 관람하는 경우가 많다. 동시 관람 비율을 70% 이상이라고 가정한다면, 실제 순수 관람객은 7-8만 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 경우 키아프 측에서 밝힌 VIP 9,600명은 전체 관람객의 12~14%에 해당하는 수치가 된다. 열 명 중 한 명 이상이 VIP라면,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는 호칭의 의미가 희석되는 건 아닐까? 어쩌면 이건 아트페어의 구조적 딜레마를 보여주는 현상인지 모른다. 갤러리들에게 필요한 건 고객이지만, 아트페어 전체적으로는 대중적 성공 역시 놓칠 수 없다. 이 두 목표 사이의 긴장 속에서 VIP의 범주는 계속해서 확장한다. 미술계 종사자라면 누구든, 작품을 한 점이라도 구입한 적이 있다면 누구든, 심지어 SNS 팔로워가 많다면 누구든 VIP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특별해지는 순간, 아무도 특별하지 않게 된다는 역설이 현실화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누가 '진짜 VIP'일까? 같은 기간, 서울에 분점을 둔 두 해외 갤러리가 공동으로 개최한 한 작가의 개인전 오프닝 애프터 파티가 신라호텔 영빈관 전체를 빌려 진행되었다. 초청장과 사전등록 없이는 입장할 수 없었던 이 행사에, 1,000여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영빈관이 꽤 북적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숫자로만 따져보자면 VIP 프리뷰에 참석한 9,600명 가운데 대략 10% 정도가 이곳에서 다시 모인 셈이다. 물론 영빈관의 애프터 파티에서도 미묘한 구분짓기를 관찰할 수 있었다. 잠재적 구매자로서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네트워킹이나 사교를 목적으로 참석한 듯 뵈는 사람도 많았다. 누가 어떤 작품을 구매했는지 추측하거나 정보를 교환하는 대화가 오가는 한편, 작가와 함께 인증샷을 찍으려 길게 줄을 늘어서는 모습도 보였다. 행사를 주최하는 갤러리 경영진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면, 1~2억을 들여 성대한 애프터파티를 개최하는 건 미래를 위해 썩 나쁘지 않은 투자다. 언젠가 거둬들이게 될 수십억 또는 수백억의 판매고를 생각하면 말이다.
Liam Gillick, Frieze Seoul 2025. Courtesy: Frieze and Wecap Studio. Photo © Wecap Studio
투자 대비 수익률을 계산해보자. 영빈관 대관료와 케이터링, 부대비용을 포함해 2억원을 지출했다손 치더라도 이를 계기로 형성된 인맥을 통해 향후 2~3년안에 단 한 점의 고가 작품을 판매한다면?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린 브래드포드급 작품 하나면 갤러리 커미션만 수십억 원이다. 마크 브래드포드의 450만 달러 작품을 기준으로 하면, 갤러리가 가져가는 커미션은 원화 기준으로 30억 가량에 달한다. 참석자 1,000여 명 가운데 단 한 명만 고객으로 전환되더라도, 투자 수익률은 1,000%를 훌쩍 뛰어 넘는다. 더 극단적으로 계산해볼 수도 있다. 영빈관 파티 참석자 1인당 20만원의 비용이 들어갔다면, 이는 고급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 한 끼 가격 정도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갤러리 담당자가 받은 명함 한 장의 주인이 20억 원 가량의 작품을 구매한다면, 그 명함 한 장의 실질 가치는 9억원이 된다. 1인당 투자비 20만원 대비 수익률은 무려 4,500배.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도 가장 수익성 높은 명함 교환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모든 거래가 이런 수익률을 자랑하는 건 아니며, 모든 갤러리가 즉각적인 수익을 거두는 것도 아니다. 올해 키아프 참여 갤러리 수는 작년의 206개에서 175개로 줄었다. 프리즈 역시 작년도 참가 갤러리 중 18곳이 불참했다. '양보다 질'을 추구한 결과라는 설명도 있지만, 참가비 부담으로 인한 자발적 포기와 선별적 초청 정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더불어, 경제적 불확실성의 여파가 아트페어에까지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통계 출처마다 수치가 상이하지만, 2022년 1조원 규모로 추산되었던 한국 미술시장은 현재 1/3에서 1/2까지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아트페어에는 숨은 비용이 많다. 부스 임대료, 작품 운송비, 설치비 등 각종 부대비용을 합치면 작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투입 대비 회수는 보장되지 않는다. 갤러리 입장에서 아트페어는 일종의 '도박'이기도 하다.

KIAF, Photo © Creative Resource
프리즈의 아시아 전략과 한국의 위치
121과 31, 121과 45. 프리즈 서울 2025 전체 참가 갤러리 수와 한국에 본사를 둔 갤러리, 그리고 아시아 지역 갤러리의 숫자다.6) 한국 갤러리의 참가 숫자는 전체의 25%에 불과하지만, 2022년 열린 첫 번째 프리즈 당시의 12개에서 31개로 2.5배 늘어난 비율이다. 더 주목할 점은 한국 외에 나머지 지역의 갤러리 중 절반에 가까운 45개가 아시아 지역 갤러리라는 사실이다. 45개 아시아 갤러리 중에서도 일본이 22개(49%)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며, 이는 중국을 능가하는 단일 국가 최대 규모다. 런던, 뉴욕에 이어 세 번째로 시작된 프리즈가 '아시아의 허브'를 표방하는 것이 그저 명분상의 구호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부분이다. 실제로 아시아 갤러리 비율이 2024년 48%에서 올해 64%로 급증한 것은 프리즈 서울이 처음으로 50%를 넘긴 역사적 전환점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키아프가 먼저 개척했어야 하는 길인지도 모르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되어버린 듯한 모습이다.
24년 역사상 처음으로 주제를 내걸며 차별화를 시도한 키아프는 수치상으로 프리즈보다 많은 82,000명의 관람객을 기록했지만, 작년보다 31개나 줄어든 참가 갤러리 수는 여전히 아쉬웠다. 키아프·예술경영지원센터·프리즈 서울이 함께 기획한 9개의 무료 강연에서는 3일에 걸쳐 미술계의 다양한 현안을 국내외 연사들의 목소리로 들어볼 수 있었지만, 행사장에서 가장 궁금했던 건 ‘키아프와 프리즈라는 두 아트페어의 '협력'이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키아프와 KAMS가 파트너로 참여한 프리즈 토크 프로그램 전경.
Courtesy: Frieze and Wecap Studio. Photo © Wecap Studio
숫자 너머의 질문들
152,000명의 관람객과 1,000억 원의 거래액이라는 성과 뒤에 남겨진 건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프리즈 서울의 급속한 아시아화는 글로벌 미술 환경의 지형 변화를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단순한 소비시장을 넘어 창작과 담론의 중심지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인가. 9,600명의 VIP라는 화려함 이면에 가려진 진짜 컬렉터 층은 얼마나 두텁게 형성되고 있는가.
키아프와 프리즈의 전략적 협력이 상징하는 것처럼,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함께 하면서도 고유한 정체성을 잃지 않는 균형감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떠들썩했던 미술주간이 끝난 지금, 이제는 2025년의 숫자들이 던지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고민해볼 시간이다.
KIAF, Photo © Creative Resource
이미지 출처 | KIAF, Frieze, Wecap Studio, Creative Resource, 화이트큐브, 하우저앤워스, 페이스 갤러리
수치 출처 | 각 주최측 공식 발표 수치 및 신라호텔 웹사이트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