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에이스퀘어> 17호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원동력이자 매개체로서 문화예술의 역할에 주목했습니다. 문화예술은 시민사회와 공동체 그리고 지역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예술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예술 현장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불타는 세상에 맞서기 위해, 건축은 우리 주변의 모든 지성을 활용해야 한다.”1)
이는 2025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의 예술감독을 맡은 카를로 라티(Carlo Ratti)의 말입니다. 카를로 라티는 세계적인 도시건축가이자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의 센서블시티랩(Senseable City Lab)의 소장으로서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오늘날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미래 사회를 전망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정유 공장을 수력발전소로 바꾸고(<WATER BATTERIES>) 오렌지껍질로 바이오플라스틱을 만들며(<FEEL THE PEEL>) 커피 찌꺼기, 왕겨, 조개껍데기 등을 새로운 건축자재로 적극 활용하면서 지속 가능한 건축 방안을 제시해 오고 있죠.

①카를로 라티 ⓒLA BIENNALE DI VENEZ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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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불타고 있다’는 인식 그리고 ‘우리 주변의 모든 지성을 활용해 불타는 세상에 맞서야 한다’는 책임감은 비단 카를로 라티나 건축가에게만이 아니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예술인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실제로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 인터뷰를 진행한 임근혜 아르코미술관 관장은 ‘(그동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참여한) 모든 작가가 코로나19나 기후변화 등 인류 공통의 과제를 의식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2) ‘지구와 공존하는 문화예술’을 다뤘던 <에이스퀘어> 7호와, ‘지역소멸에 대응하는 문화예술의 힘’을 주제로 다뤘던 13호에서도 각 부문의 예술인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에 <에이스퀘어> 17호에서는, ‘문화예술의 미래’를 다뤘던 16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원동력이자 매개체로서 문화예술의 역할에 주목하며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문화예술을 일상과 분리된 별개의 것으로 보거나 필수재가 아니라 부차적인 사치재로 바라보는 시선이 일부 남아 있는 지금, 문화예술은 우리의 일상을 더 나아가 우리의 내일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SQUARE에서는 ‘시민사회’와 ‘지역’을 키워드로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과, 문화예술과 지역이 관계 맺는 방식을 예술 현장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봅니다.
SCENE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베니스비엔날레 전시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여선희 과장을 만났습니다.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맞아 한국관의 역사적 의의를 새롭게 읽고 쓰는 전시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에 대한 생생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FLOW에 수록된 박여민 에디터의 <일상과 예술을 새롭게 잇는 곳-2025년 문 여는 문화예술공간 3>에서는 올해 개관이 예정되어 있는 문화예술 공간 세 곳을 소개합니다. 부산 최초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 ‘부산콘서트홀’, 국내 최초의 사진 특화 공립미술관인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경기도 최초의 광역 도서관인 ‘경기도서관’ 등 다채로운 공간이 문화예술계와 시민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서울AI페스타 2025’에 참여한 카를로 라티 ⓒ서울특별시
올해 3월 9일 ‘서울AI페스타 2025’에 참여한 카를로 라티는 “미래는 열려 있다. 미리 정해져 있지 않으며 우연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를 예측할 수 없다.”라는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의 말을 소개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기도 바쁜 지금, 미래의 불확실성은 때로 막연한 불안감이 되어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카를로 라티가 인용한 칼 포퍼의 문장은 그 앞쪽에 있는 문장과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생략된 부분을 덧붙여 다시 한번 소개합니다.
“우리의 의무는 낙관론자로 남아 있는 것이다. …… 미래는 열려 있다. 미리 정해져 있지 않으며 우연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를 예측할 수 없다. 미래에 놓인 가능성은 무한하다.”3)
‘막연하다’가 막막함과 불안함의 언어라면 ‘무한하다’는 상상력과 가능성의 언어입니다. 그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오늘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미래를 낙관적으로 상상하며 새로운 꿈을 꾸는 예술인의 작업은 미래의 가능성을 더욱 증폭하며 무지갯빛 미래를 실현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에이스퀘어>가 문화예술의 미래에 대한 단편을 소개하는 일도 낙관적인 미래를 구현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 웹진에 수록된 원고는 필자 혹은 인터뷰이 개인의 견해를 담고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