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지난 호 보기
다국어
FLOW

‘문학이 힙하다’는 이율배반:

‘텍스트힙’ 열풍에 관한 단상

2024년 7월, 웹진 <에이스퀘어>는 오늘날 문학 독자를 분석하며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아도 되고 읽을 필요가 없는 우리 사회”에 대한 염려를 담았다.1) 그러나 2024년 하반기부터 젊은 독자층을 중심으로 ‘텍스트힙’ 열풍이 이어지며 독서문화의 저변이 팝업스토어, 독서 연계 프로그램, 필사, 유튜브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오늘날 ‘텍스트힙’ 열풍은 과연 문학을 새롭게 바꿀 수 있을까? 텍스트힙 열풍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와 함께 현직 출판 관계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 본다. (편집부 주)

‘텍스트힙’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어가 문학·출판계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우리에게 문학은 늘 ‘엄숙한 어떤 것’이었다. 찌르듯 아프며 한없이 진지하고 세계 전반의 고통을 사유하게 하는 그런 글. 하지만 텍스트힙이라는 말에는 요즘 독자가 문학을 ‘그렇게’ 읽지 않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글로 된 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말인 ‘텍스트’와 ‘힙하다’라는 신조어가 결합한 텍스트힙 유행에서는 독자가 문학을 문학 그 자체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 도드라진다.

문학의 역사를 작가와 독자 사이의 투쟁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두 주체 사이에는 언제나 긴장감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작품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한 긴장이었지 문학 그 자체를 상정한 것은 아니었다. 텍스트힙이 정말로 존재하는 뚜렷한 현상이라고 본다면 거기에 충실한 독자는 문학을 ‘나를 멋지게 꾸며줄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소비하고자 한다. 텍스트힙에서 읽히는 독자의 욕망은 과연 문학을 바꿀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일시적인 유행에 불과할까? 요즘 문학 시장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을 이 한 단어로 꿰는 게 과연 온당할까? 텍스트힙을 둘러싼 작가와 출판사의 속내는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텍스트의 개념은 상당히 폭넓다. 하지만 텍스트힙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질 땐 그런 점까지 고려되지 않은 것 같다. 이 유행을 설명하는 데 한해서는 ‘글자로 쓰인 것’, 즉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문학을 의미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힙’은 힙스터(hipster)라는 말에서 왔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힙스터는 “유행 같은 대중의 큰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패션과 음악 문화를 좇는 부류를 일컫는 말”로 정의된다. 여기서부터 혼란해지기 시작한다. ‘유행 같은 대중의 큰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는 부분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앞서 텍스트힙을 하나의 ‘유행’이라고 설명하지 않았나. 그러나 ‘힙’이라는 말에는 애초에 ‘유행을 거부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텍스트힙을 하나의 유행으로 정의하는 것은 모순이다. 말만 놓고 보면 ‘유행을 거부하는 유행’이 되기 때문이다. 이 역설적인 명명은 ‘힙’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말 때문에 가능해진다. 힙스터의 정신을 ‘개성’이라고 요약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 힙스터가 되길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다만 이 논리가 성립하려면 어느 특정한 소설이나 시집, 에세이가 일변도로 유행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다행히 문학은 다양성의 세계이다. 만약 세상에 작가 100명이 있다면 그들이 축조한 문학의 세계는 100의 100제곱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굵직한 장르부터 살펴보자. 크게 시와 소설로 나눌 수 있다. 둘은 같은가? 그렇지 않다. 문학이라는 한 테두리 안에 있지만 시인과 소설가는 서로 대단히 다른 언어로 이야기한다. 때에 따라서는 ‘번역’이 필요할 정도로 두 세계의 거리는 대단히 멀다. 물론 시와 소설을 동시에 쓰는 작가도 있지만 그만큼 저마다 방대한 세계를 갖추고 있다. 어느 한 시인의, 어느 한 소설가의 세계만 파고들기도 벅차다. 하지만 그렇기에 문학을 읽고 소비하는 것은 ‘힙한 것’이 될 수 있다. 한 2000년대생 시인은 최근 젊은 층 사이의 문학 소비 열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얼마만큼 비밀스러운 세계를 향유하고 있는지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의 발로인 것 같다. 그만큼 자신의 정체를 쉽게 들키고 싶지 않으려는 욕망과도 맞닿아 있다.” 개성을 추구하며 힙스터가 되고자 하는 욕망은 그렇게 유행이 되어 번진다. 어느 특정한 시인과 시가 유행하는 게 아니다. 문학 그 자체가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문학이 마련한 다양한 세계. 언제 어디서나 ‘나만의 멋짐’을 표현하고자 하는 힙스터의 욕망은 텍스트를 통해 실현된다.



FLOW.png
짧고 강렬한 시의 감각, 힙스터를 자극하다

 

창비,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민음사 등 국내 주요 문학 출판사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최근 텍스트힙을 이끄는 장르가 ‘시’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단순히 숫자만 놓고 비교할 순 없다. 필자가 교보문고에 의뢰해 받은 텍스트힙의 주역인 20대 이하 연령층의 올해 1~3월 단행본 구매 비중을 보면 소설(약 21%)이 시·에세이(약 10%)를 압도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지난해 말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영향도 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소설 판매가 단연 시를 압도하는 게 분명한데 어째서 출판사 관계자들은 텍스트힙의 주역을 시라고 이야기하는 걸까? 이는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현 X)를 비롯해 최근 SNS 플랫폼이 점차 짧은 호흡의 텍스트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과도 맞물린다. 인스타그램에 감각적인 이미지와 함께 시 한 구절을 툭 올리는 것이다. 이미지와 짧은 글의 만남과 공명은 그 게시물을 올린 이의 세계를 비밀스럽게 드러낸다. 2000년대 이후 한국 현대시는 상당히 난해해졌다. 시가 어려워지는 경향을 비평가들은 ‘미래파’라고 명명하며 그것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도 했다. 하지만 텍스트힙 시대에는 시가 어렵든 말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쉬운 건 잘 읽혀서 좋고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의미가 있다. 이런 움직임은 대형 서점의 판매 수치나 통계로는 확인할 수 없는 현상이다.

순전히 입소문만으로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큰 화제를 몰았던 고선경 시인의 《샤워젤과 소다수》의 흥행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기에 1970년대에 시작된 한국의 대표 시인선인 창비의 《창비시선》과 문학과지성사의 《문지시인선》이 각각 500호, 600호 돌파를 기념해 출간한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창비)과 《시는 나를 끌고 당신에게로 간다》(문지) 역시 소위 ‘대박’을 쳤다. 특히 시집을 주제로 한 ‘팝업스토어’가 열리고 그곳으로 젊은 독자의 발길이 몰리는 현상은 최소 지난 10년간 현장에서 문학을 만들고 편집해 온 출판사 관계자들조차도 예상할 수 없었을뿐더러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이진혁 창비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창비시선》 500호를 맞아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저희로서는 드문 시도였음에도 엄청난 사람이 몰렸다. (다른 것도 아닌) 시집에 이렇게 사람들이 관심이 많다고? 대표적인 것이 망원동에서 진행했던 ‘시크닉’ 팝업스토어였다. 여기서 시집과 굿즈를 판매하는 한편, ‘시 이어쓰기’, ‘시에 어울리는 음악 추천’ 등을 진행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매출이 무척 크게 나왔다.”

06-01.png

《창비시선》 특별시선집 《한 사람의 거리가 온 거리에 노래를》과 팝업스토어 ‘시크닉’ ⓒ창비

 

그러나 시가 전부는 아니다. 텍스트힙은 시에서 촉발됐지만 이후 문학과 그것을 둘러싼 인문, 나아가 예술 전반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경향도 보인다. 문학과지성사의 ‘문지살롱’은 텍스트힙으로 시작된 문학을 향한 관심을 가장 감각적인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는 사례로 주목된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문학과지성사 사옥 1층에 문학을 주제로 여러 사람이 교류할 수 있는 살롱과 같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지난해 문을 연 이곳에서는 작가나 시인과 함께하는 초대석을 비롯해 독서클럽, 영화 상영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이어진다. 꼭 행사에 참여해야만 이곳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심이 있는 독자는 언제든 찾아와서 책과 굿즈를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다. 이근혜 문학과지성사 편집주간은 최근 문지살롱을 운영하면서 젊은 독자들이 책과 독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고 전했다.

“커피나 디저트에 함께 놓고 찍어서 올리기 좋은 그럴싸한 ‘데코형 독서’를 넘어 500~600페이지도 너끈한 인문·학술이나 영화 및 예술 장르 교양서, 이른바 ‘벽돌책’의 독자도 꽤 늘어나고 있음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있다. (그런 벽돌책은) 대개 번역서인 경우가 많고 번역에서 제작까지 1년에서 10년까지 걸리기도 해 출간 자체를 매번 주저하게 된다. 그러나 요즘에 이런 책에도 의욕적으로 도전하고자 3~4만 원이 넘는 책에 투자하는 젊은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06-02.png

문지살롱 전경 및 김연덕 시인 초대석 현장 사진 ⓒ문학과지성사

 



FLOW.png
눈으로 놓칠세라 손으로 몸으로 읽는다

문학은 눈으로만, 머리로만 읽는 것이 아니다. 텍스트를 온몸으로 만끽하는 적극적인 행위로서 ‘필사’ 역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필사책 판매는 전년 대비 무려 7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출간 종 수도 57권에서 81권으로 늘었다고 한다. 특별한 사례를 콕 짚을 필요도 없다. 지금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들어가서 ‘필사’를 검색하면 수백 종에 가까운 필사책을 확인할 수 있다. 필사 행위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눈으로 휙 읽고 넘어가면 놓칠 수 있는 문장의 독특한 감각을 필사를 할 때는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간 필사는 주로 장노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활자로 정보를 접하는 것이 더 익숙한 세대라서다. 지금이야 SNS를 비롯해 독서에서 느낀 감상을 저장하고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 매체가 많지만 그렇지 않았던 시절에는 온전히 글을 손으로 옮겨 적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오히려 젊은 독자가 필사에 앞장서고 있다. 교보문고의 필사 책 연령대별 판매 비중 추이를 보면 2023년 20대의 비중은 8.7%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무려 21.3%로 껑충 뛰었다. 같은 기간 30대도 23.8%에서 30.8%로, 10대도 0.7%에서 2.4%로 늘었다. 40대는 28.8%에서 28.4%로 비슷했지만 50대는 28.2%에서 13.1%로, 60대 이상은 9.8%에서 4.0%로 줄었다. 이는 장노년층의 필사 행위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이른바 엠제트(MZ)세대로 불리는 젊은 세대 가운데 필사 책을 구매하고 실제로 필사를 실천하는 이가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이는 유튜브 ‘쇼츠’를 위시한 짧은 영상 콘텐츠에 피로와 염증을 느끼는 젊은 세대가 조금 긴 호흡의 텍스트로 관심사를 돌리고 있는 분석으로도 이어진다.




FLOW.png

어려운 문학, 독서라는 경기를 돕는 ‘볼보이’

 

그러나 문학은 어렵다. 문학이 잘 팔리고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다. 어떤 책은 여전히 두껍고 어떤 작가의 문장은 여전히 길다. 시인이 흩뿌려 놓은 감각은 잘 와닿지 않고 저기 먼 나라의 작가가 쓴 소설의 풍경은 생경하기만 하다. 고전으로 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 시대의 그 작가가 처했던 상황과 지금은 분명히 다를진대 둘 사이의 시간적 거리는 어떻게 좁혀야 할까. 문학을 읽는 데에는 이런 난제가 수두룩하다. 텍스트힙이 그저 책을 산 뒤 일부 문장만 찍어서 올리는 유행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이런 어려움을 돌파하게끔 도와 줄 ‘친절한 안내자’가 필요하다.

민음사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은 요즘 독자가 필요로 하는 친절한 안내자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이전에도 문학을 해설해 주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민음사TV는 ‘지금 이곳의 감성’으로 독자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넨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이상형 월드컵’을 진행하는가 하면 회사로 들어가고 있는 직원들을 붙잡고 출근길에 무슨 책을 읽었는지 다짜고짜 물어보기도 한다. 민음사TV의 영상 콘텐츠에는 꼭 ‘문학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출판사 직원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엿볼 수 있는 사생활 브이로그(V-log) 등 문학이 삶인 이들의 일상을 그저 즐겁게 보여준다. 민음사TV를 보고 있는 구독자는 이렇게 생각할 만하다. ‘아, 문학과 함께하면 저렇게 재밌고 유쾌할 수 있구나.’ 민음사TV 콘텐츠에 자주 출연하는 김민경 민음사 편집자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분이 해외 고전 독서의 가장 큰 장벽이 따분함이라고 말한다. 그 장벽을 낮추고 즐거운 면면을 소개하며 독서라는 ‘경기’를 열심히 할 수 있게 (우리가) ‘볼보이’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텍스트힙 문화의 핵심은 누군가 정해준 걸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독서 리스트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강요하거나 가르치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원래 취지를 잊지 않고 소개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 텍스트힙이요?” 갑자기 찾아온 독서 붐에 대한 출판사 직원들의 솔직 심경 인터뷰 ⓒ민음사TV

 



FLOW.png
텍스트힙 그리
고 문학과 세계의 미래

 

텍스트힙을 둘러싸고 문학계에는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공존한다. 물론 여기서 ‘우려’는 텍스트힙의 부정적인 영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기꺼이 책을 사서 읽겠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건 모로 봐도 나쁠 건 없다. 다만 그것이 얼마나 지속될지가 중요하다. 텍스트힙 열풍이 문학을 달라지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편집자는 “그저 하나의 유행에 불과할 뿐 작가들이 문학을 쓰고 출판사가 책을 편집하는 관행에 영향을 줄 여지는 적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2015년을 전후로 이어진 ‘페미니즘 리부트’와 같은 현상은 비가역적인 것으로서 문학을 그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는 분수령이 됐다. 이런 엄밀한 의미에서, 텍스트힙은 문학을 조금도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는 걸까? 예전 같았으면 읽히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었던 많은 문학이 더 많은 독자에게로 스며든다. 어떤 문학이든 그것을 읽은 사람은 그것을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텍스트힙은 세계 전방위로 문학을 ‘살포하고’ 있다. 그것은 결국 우리의 문학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변화시킬 것이다. 아주 천천히. 비가역적으로.

 

 

 

*본 웹진에 수록된 원고는 필자 혹은 인터뷰이 개인의 견해를 담고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경진
오경진
서울신문 기자

2017년 서울신문에 입사했다. 글을 읽고 쓰는 게 좋아 기자가 됐지만 갈수록 힘들고 어렵다. 현재는 문화체육부에서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한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시상식을 현지에서 취재한 경험은 평생의 자부심이다.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으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동시대 한국 현대시에 관심이 많다. 내가 쓴 글이 100년 뒤, 1000년 뒤 어느 독자에게 읽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매일 한 글자씩 조심스레 적어 나간다.

좋아요 4
코멘트
작성하기

코멘트 내용이 부적절한 경우 관리자 확인 후 비공개 처리될 수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