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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활동의 흔적을 기록하는 곳

아르코예술기록원 정보원 원장을 만나다

작성자
인터뷰이_정보원(아르코예술기록원 원장)·최혜조

국내 최초(最初), 최고(最古), 최대(最大) 예술기록 전문 아카이브, 예술의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만날 수 있는 아르코예술기록원이다. 원로예술인의 구술채록(口述採錄)을 통해 우리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통해 생산한 기록들을 수집한다. 수집한 기록들은 영구보존하고 우리 모두에게 서비스하여 미래의 연구와 예술창작의 기틀이 되고자 한다. 예술인의 숨결이 살아있는 기록물을 더 많은 이용자에게, 더 편리하게 서비스하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아르코예술기록원을 이끌고 있는 정보원 원장을 만났다.

독특한 냄새가 났다. 처음엔 오래된 종이에서 나는 냄새인 줄 알았는데 조금 달랐다. 정보원 아르코예술기록원 원장을 만나는 날, 회의실에서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보존 처리를 위한 약품 냄새’였다. 인터뷰를 위해 수장고에서 미리 꺼내어 준비해 주셨던 기록물을 이렇게 감각으로 먼저 만났다. 열람실에 들어서자, 소장 기록물을 활용한 기획전시 <원 테이블>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고 그 너머로 다양한 예술 서적과 음반 등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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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예술기록원 기획코너 <원 테이블: 3. 그리고, 신동헌> 포스터와 전경

 

1979년에 개원한 아르코예술기록원(예술의전당 내 위치, 이하 예술기록원)은 한국 근현대 예술사 연구를 위해 영구적 보존 가치가 인정된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수집, 보존하며 서비스하는 곳이다. 예술기록원은 기록물 컬렉션 134개, 예술분야 단행본과 간행물 약 7만 건, ‘한국 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으로 생산된 구술 기록 343건, ‘공연영상화사업’을 통해 수집된 공연실황영상 2,260편을 보유하고 있다.(2024년 기준)

이렇게 숫자로만 보면 소장기록물의 규모나 가치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방문하기 전에 온라인으로 먼저 찾아보면 도움이 된다. ‘한국예술디지털아카이브(DA-Arts)’는 소장 기록의 일부를 디지털화하여 원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 플랫폼이다. 예술기록원에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기록을 접할 수 있다. 한국예술디지털아카이브에서 제공하지 않는 아날로그 기록물은 예술기록원 누리집에서 사전 예약을 한 후에 서초동 본원 열람실에서 실물 열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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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디지털아카이브 ⓒ아르코예술기록원 제공

 

예술기록원은 그간 아르코예술정보관, 국립예술자료원, 예술자료원 등의 이름을 거쳐 2019년 예술기록원으로 개칭하였다. 정보원 원장은 국립예술자료원 시절부터 학예연구사로 근무해 온 전문 아키비스트이다. 구술채록을 비롯한 연구, 행정, 기획, 관리의 영역까지 두루 거친 ‘실무자 출신 원장’답게 인터뷰하는 내내 끊임없는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 근현대예술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그의 언어 속에 살아 있었고 기록을 살피며 설명하는 그의 표정에는 생기가 넘쳤다.



아르코예술기록원은 어떤 곳인가요?

정보원: 한국근현대 예술사 연구를 위해 문학, 시각예술, 공연예술, 복합예술 등 다양한 장르의 기록물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본부에서 생산된 기록물도 일부 소장, 서비스하고 있는데요. 우리 예술진흥을 목적으로 제도적 틀이 형성돼 가는 과정을 해당 기록을 통해 살필 수 있습니다. 예술기록원은 이러한 기록들을 수집‧보존・관리하고 이용자들이 쉽게 온오프라인으로 활용하실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예술을 기록한다는 건 어떤 작업인가요?

정보원: 아카이브기관에서 주목하는 지점은 예술활동의 과정별 흔적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즉 완성된 예술의 최종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것이 생겨나는 단계별 과정에도 주목하는 것인데요, 기록물을 보면서 설명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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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가 김화례의 <기억의 퍼레이드> 기록물 ⓒ아르코예술기록원 제공


이것은 발레리나이자 무용가 김화례 선생님께서 <기억의 퍼레이드>라는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기록한 테크니컬 라이더(Technical Rider)입니다. 김화례 선생님께서 안무, 의상, 구성, 동선, 음향, 조명 등 무대 연출을 위해 연구하고 고민하셨던 흔적을 살필 수가 있습니다. 공연 프로그램북, 실황 영상과 같은 공식적인 기록에서는 볼 수 없는 ‘작품의 탄생과 변용의 과정’을 엿볼 수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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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작곡가 이만방의 작곡 스케치, (우)작곡가 이만방의 작곡 스케치를 펼치는 정보원 원장

상단의 그림을 가리키며) 이 그림은 작곡가 이만방 선생님께서 남긴 악보입니다. 작품이 나오기까지 작곡가께서 생각하신 악상을 그림으로 표현하셨어요. 컬러와 드로잉으로 음악의 느낌을 표현하셨는데요. 작곡가와 미술작가의 구술을 통해서 ‘한국성’, ‘현대성’을 고민하는 지점이 서로 비슷해서 굉장히 놀라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커다란 스케치 형식의 기록물은 그 취약성으로 인해 열람실에 비치할 수가 없어 수장고에 보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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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연감》(좌)과 육필 원고(우)


(두꺼운 책을 펼치며) 여기 이 기록들은 1976년 창간호 《문예연감》에 게재하기 위해 문학비평가 김병익 선생님께서 작성하신 육필원고입니다. 교정, 편집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문예연감》에 실리기까지의 작업 과정을 살필 수가 있습니다.


아르코예술기록원의 기록물은 어떻게 수집이 되나요?

정보원: 기록물 수집 방식은 크게 ‘기증·기탁, 구입, 제작’ 등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기증·기탁’은 말 그대로 예술인 소장 기록물을 입수하는 방식입니다. 예술기록원이 아카이브로 거듭나는데 크게 기여한 '음악감상실 르네쌍스 컬렉션'1)을 가장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술기록원 초창기에는 예술 전문 도서관을 지향했습니다. 1980~1990년대만 해도 예술현장의 수요가 해외 음반, 잡지, 컬러 화집에 있다 보니 이러한 자료를 ‘구입’하여 열람 서비스로 제공했었습니다. 지금은 예술기록원이 보유한 컬렉션의 완성도를 높이기는 차원에서 필요한 경우에 한해 자료 구입을 하고 있습니다. ‘제작’은 기록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방식인데, ‘한국 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과 ‘공연영상화사업’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기증자가 있으신가요?

정보원: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이하 한국관)의 공동설계자인 프랑코 만쿠조(Franco Mancuso, 1937~)와 동료 건축가인 에르네스타 세레나(Ernesta Serena, 1941~) 두 분이 한국관 관련 기록물 약 4,000건을 2022~2023년에 기증하셨습니다. 한국관은 건축가 故 김석철(1943~2016) 선생님과의 공동설계작이기도 합니다. 한국관은 1995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만, 철조건물이다 보니 리모델링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음에도, 이탈리아의 건축법이 까다로워서 증개축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죠. 그런데 이번에 두 분이 기증해 주신 각종 기록물 덕분에 당시 한국관 건립을 둘러싼 여러 행정적, 건축적 제약을 어떻게 극복해 가며 한국과 이탈리아 양국의 문화 교류의 산물로 자리매김해 갈 수 있었는지를 살필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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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준공 당시 전경(좌) 및 스케치(우) ⓒ만쿠조&세레나 건축사무소. 아르코예술기록원 제공

일반적으로 예술기록원에 기증 기록이 입수되면 내부 직원들이 기록물을 조사하고 분류하여 목록을 작성합니다. 그런데 만쿠조 건축가께서는 이탈리아어, 영어로 표기된 각종 건축 설계 및 시공 과정의 기록들이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한건 한건 들춰가며 분류하고 일목요연하게 목록화하여 기증해 주셨습니다. 즉 1992년부터 2017년을 포괄하는 한국관 건립 및 운영기록물이 생산된 맥락을 누구보다 잘 아시다 보니, 컬렉션 구축 과정에 직접 참여하시게 되었고, 이를 통해 기증자 스스로 학계와 현장에서 활동해 온 이력을 되돌아보며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터라 특별히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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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만쿠조가 직접 작성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기증기록물 목록을 설명하는 정보원 원장



'한국 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은 정보원 원장님께서도 직접 담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보원: 한국은 정치적, 사회적 격변을 거치며 한국근현대 예술사의 다층적 맥락을 살필만한 기록이 충분칠 않은 상황입니다. 예술인의 이력조차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확인을 위해서는 원로 예술인들을 직접 찾아뵈어야 했죠. 더불어 예술창작활동의 배경과 창작관에 대한 심층 조사를 수행할 목적으로 2003년도부터 '한국 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술가들의 표정과 말의 뉘앙스를 그대로 담은 채록문, 영상까지 이용자들께서 모두 열람하실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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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가 김매자(좌) 및 시인 신경림(우) 구술채록 현장사진 ⓒ아르코예술기록원 제공


‘순간의 예술’인 수많은 공연 중에서 어떤 것이 ‘공연영상화사업’을 통해 기록되나요?

정보원: 예술기록원에서는 1980년대부터 예술현장의 공연실황을 영상으로 기록해 왔습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공연을 기록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어떤 공연을 기록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데, ‘영구적으로 보존하여 활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공연인지’를 주요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기준에 따라 각 분야별 전문가들을 통해 촬영 공연을 선정하고 공연단체의 활용 동의를 거쳐 공연 현장을 찾아가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부에서 추진 중인 공연예술 분야 기획 컬렉션 구축 방향에의 부합성을 검토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접근성 확대 측면에서 배리어프리(barrier-free) 공연도 기록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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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영상화 사업 소개 영상 ⓒ아르코예술기록원 제공



아르코예술기록원 공식 SNS와 유튜브 채널에서도 다양한 기록을 선보이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정보원: 기록을 좀 더 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에서 나아가 다양한 열람 도구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교육 프로그램, 학술 행사, 기획전시 등의 형태로 이용자가 더 편리하고 친숙하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식 채널을 통해 선보이는 영상과 사진 기록을 활용한 콘텐츠도 열람 도구의 하나라고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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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예술기록원 인스타그램(@arkoartsarchive) ⓒ아르코예술기록원 제공

구술 채록 영상을 활용한 ‘예술가의 말’, 공연영상화사업 촬영작을 소개하는 ‘아르코 화요극장’, 예술기록원 소장기록물 소개를 위한 기획코너 <원 테이블, 원 시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다.

 

아르코예술기록원 홈페이지가 3월 20일에 개편되었습니다.

정보원: 2024년도부터 약 1년간 기능 개선, 내부 점검을 거쳐 이제 막 공개가 되었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기록물을 기존의 ‘파편화된 단건 아이템’ 단위에서 ‘구조화된 컬렉션’ 단위로 검색하실 수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메모, 스케치, 도면, 악보처럼 각 단위 기록들은 예술활동 과정에서 여러 버전으로 생산되면서 집합체를 이룹니다. 이로 인해 동일한 활동에서 산출된 기록물 간의 앞뒤, 선후 관계 파악이 중요한데, 이러한 기록물의 특성에 기초한 분류와 집합적 특성을 살리고자 기록물 계층구조를 적용하여 이용자들께서 편리하게 열람하실 수 있도록 누리집을 개편했습니다. 이로 인해 예술창작 과정에서 생산된 과정별 기록의 특성을 살리고 이용자들에게는 예술활동의 배경과 창작 맥락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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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편된 아르코예술기록원 홈페이지 자료검색 화면 ⓒ아르코예술기록원 제공



아르코예술기록원의 수장이자 아키비스트로서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정보원: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요. 먼저, 예술기록원이 보유한 모든 기록물을 이용자에게 신속히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아카이브는 소장기록물의 적체 현상을 막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예술기록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등록 기록들이 꽤 있는데, 담당업무를 오랜 기간 해온 사람으로서 소장기록물이 제 위치를 부여받아 올바로 관리되어 활용될 수 있도록 서둘러 공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새로운 ‘기획형 열람 도구’를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 예술인들이 생산한 기록을 잘 살펴보면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기록물 간의 내재적 속성에 기초한 분류, 사용자들에게 신속한 이용 편의를 제공할수 있는 다양한 열람 도구를 만들어 예술창작 및 교육, 연구 지원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현장사진 촬영: 프로젝트 룹

최혜조
최혜조
더브로드 대표

문화예술 전문 홍보마케팅 ‘더브로드’ 대표. 콘텐츠를 빛나게 하는 것에 재능이 있다. 피아노 전공자로 시작해 월간 ‘피아노 음악’, 음반사 ‘EMI 클래식’, 공연기획사 ‘크레디아’를 거치며 재주를 발견했고, 홍보대행사 ‘PRM’에서 12년간 구르며 역량을 갈고닦았다. 공연, 전시, 축제, 공공사업, 기관 등 문화예술 전 분야에 걸쳐 마케팅 전략을 짜고 콘텐츠와 뉴스를 만든다. 더 의미 있고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서 2024년 ‘더브로드’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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