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만남을 설계하는 방식
Global Connect 캐나다 ① 손세경
축제가 만남을 설계하는 방식
이번 APE CAMP 참여자 중 선정되어 MUTEK Montréal에 파견되었던 김의진, 손세경, 신은송, 최혁진, 추호승 작가의 비평 원고 중 첫 번째로, 손세경 작가가 현지에서 겪은 '만남'의 순간들을 기록했습니다.
축제에서 '만남'은 무엇을 의미할까.
몬트리올에서 MUTEK을 경험하기 전까지 나는 축제를 주로 공연이나 작품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동안 MUTEK을 경험하고 나니,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된 것은 개별 공연뿐 아니라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다시 마주치고,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는 방식이었다.
MUTEK은 5박 6일 동안 진행됐고, 공연은 다섯 곳의 베뉴 Esplanade Tranquille, Maison symphonique, Studio-Théâtre des Grands Ballets, SAT의 Satosphère와 Espace SAT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마지막 날에는 PIKNIC의 Scène BN까지 추가되면서 축제의 장소는 여섯 곳으로 늘어났다. 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서로 다른 장소에서 공연하면 공연을 보다가 다른 베뉴로 계속 이동해야 했다. 처음 몬트리올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숙소를 오가는 데에도 지도가 꼭 필요했는데, 축제가 끝나갈 무렵에는 공연장 사이를 지도를 보지 않고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도시의 낯선 길들이 며칠 사이 축제의 동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진 1 — MUTEK 전체 타임테이블]](/raonk/2026/10/RESIZE_20261008_181805570_09359.jpg)
MUTEK 전체 타임테이블
우리 ARKO 팀은 MUTEK이 시작되기 전 SAT에서 이틀 동안 현지 테크니션들에게 워크숍을 받았다. 서로의 작업을 소개하고 앞으로 만들고 싶은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피드백을 받았다. 당시에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워크숍을 해주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축제가 시작되자 그 관계가 조금 달라졌다.
SAT 워크숍 현장
그들은 MUTEK의 테크니션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축제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낮에는 따로 연락해 함께 피크닉을 하기도 했고, 한 테크니션이 MUTEK 이외의 장소에서 공연을 한다고 해서 그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다. 저녁에는 공연장에서 다시 만나 함께 공연을 봤다. 특히 MUTEK 둘째 날에는 워크숍에서 만났던 SAT 테크니션들과 공연장에서 다시 만나 같이 놀았던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SAT 워크숍 현장
한국에서 네트워킹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딘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서로를 소개하고 명함을 주고받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MUTEK에서 경험한 네트워킹은 훨씬 자연스럽고 자유로웠다.
물론 MUTEK 안에는 네트워킹을 위해 따로 마련된 공식적인 자리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 역시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정해진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하거나 명함을 교환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로비에 핑거푸드와 마실 것이 준비되어 있고,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자연스럽게 옆 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식이었다.
그 자리에서 우연히 몬트리올에 거주하며 공연이나 전시의 배급과 관련된 일을 하는 한국인을 만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이야기하다가 앞으로의 일정까지 공유했고, 이후 다시 연락할 수 있도록 연락처도 주고받았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업을 보여줄 사람과 장소를 찾고, 반대로 작품을 소개하고 연결하는 사람 역시 새로운 예술가를 찾는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찾고 있는 셈인데, 평소라면 존재조차 알기 어려웠을 사람을 같은 공간에 모아 만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이런 공식적인 네트워킹 자리의 역할을 실감했다.
MUTEK 공식 네트워킹 행사
이런 경험은 공연장에서도 반복됐다.
첫날 야외 공연에서 우연히 한 미국인을 만나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만 해도 그냥 한 번의 스몰토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후 내가 가는 공연장에서 이상할 정도로 계속 그 사람과 마주쳤다. 두 번째에는 조금 반가웠고, 세 번째부터는 서로 웃으며 인사를 하게 됐다. 특별히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비슷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같은 시간 동안 여러 장소를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마주친 것이다.
축제는 그렇게 낯선 사람들을 조금씩 익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아티스트와의 관계도 비슷했다. 우리 팀원 중 한 명은 한 공연자에게 직접 연락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이전에도 SAT 앞에서 우연히 그 아티스트와 마주쳐 먼저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무대 위의 아티스트와 무대 아래의 관객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이 적었다.
![[사진 4 — SAT 외관]](/raonk/2026/10/RESIZE_20261008_181918746_07182.jpg)
SAT(Société des arts technologiques) 외관
SAT 앞의 바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축제 중간중간 그곳에서 술을 마셨는데 바텐더와 스몰토크를 하다가 우리가 한국에서 온 아티스트들이고, 지원을 받아 MUTEK을 경험하러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 역시 음악을 하고 있다며 자신의 작업을 이야기했고, 서로의 SoundCloud를 공유하게 되었다. 공연장이나 공식 네트워킹 프로그램이 아닌 바에서조차 자연스럽게 작업 이야기가 시작됐다.
MUTEK이 시작되기 전 우리가 직접 준비했던 NOMADlife.tv에서의 공연 역시 이런 연결의 일부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공연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후 이곳이 몬트리올의 미디어아트 신과 여러 방식으로 연결된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공연 준비 과정에서도 현지 DJ, 비주얼 아티스트, 포토그래퍼 등 여러 사람들과 협업하게 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공연 당일이었다. 혼자 우버를 타고 이동하면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가 NOMAD에서 공연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버 기사가 그 공간을 알고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간이 되면 공연을 보러 오라고 말했는데, 정말로 그 사람이 공연을 보러 왔던 기억이 꽤 놀라웠다.
물론 모든 몬트리올 사람이 공연이나 미디어아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그 도시에서는 나도 음악을 한다, 그 축제에 관심이 있다, 그 공간을 알고 있다는 식의 반응을 꽤 자주 경험했다. 몬트리올에서는 크고 작은 음악과 예술 축제가 끊임없이 열린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예술가와 관객, 기술자와 음악가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가까운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 몬트리올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낯선 도시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조금 무서워했다. 하지만 축제가 진행될수록 점점 혼자 돌아다니는 시간이 생겼다. 늦은 밤 공연이 끝난 뒤 도시를 걷기도 했고, 대부분의 시간은 팀원들과 함께였지만 때로는 혼자 보고 싶은 공연을 찾아가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도시에 익숙해지고 MUTEK과 가까워져 있었다.
그 과정에서 공간에 대한 인상도 달라졌다. 워크숍에서 SAT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 MUTEK 첫날 SAT 돔에서 빈백에 누워 공연을 봤던 경험, 공연장에서 처음 느꼈던 압도적인 소리, 둘째 날 테크니션들과 함께 공연을 보며 놀았던 기억도 모두 장소와 사람의 기억이 겹쳐졌다.
관객들의 태도 역시 인상적이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앞쪽으로 몰려드는 분위기가 강하지 않았고, 앞으로 가고 싶으면 생각보다 쉽게 무대 앞까지 갈 수 있었다. 각자 자신이 편한 방식으로 공연을 보고, 춤을 추고, 자리를 옮겼다. 나 역시 며칠 동안 점점 긴장을 풀고 사람들과 섞이게 됐다.
다만 그곳에서 나눈 모든 대화가 축제가 끝난 뒤까지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서로의 작업에 관심을 보이고 연락처를 교환했더라도 각자의 도시와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흩어진 관계도 있었다. 짧은 축제 기간과 물리적인 거리, 언어의 차이는 국제적인 만남이 지속되는 데 분명한 한계이기도 했다. 그래서 오히려 귀국 이후에도 이어진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에게 가장 구체적으로 남은 것은 SAT의 한 테크니션과의 관계였다. 몬트리올에서 돌아온 뒤에도 우리는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고, 내가 작업을 진행하면서 궁금한 것이 생기면 질문을 보내거나 기술적인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그 관계는 실제 작품의 변화로도 이어졌다. 몬트리올에서 돌아온 지 약 2주 뒤 나는 국제컴퓨터음악제 Fest-M에서 아두이노 센서를 이용한 작품을 연주할 예정이었다. 마침 SAT에서 받은 워크숍의 주제도 센서와 임베디드 시스템을 활용한 인터랙션이었고, 그곳에서 배운 Puara를 실제 작업에 적용해볼 수 있었다.
Puara는 SAT와 McGill University의 IDMIL이 함께 개발하고 있는 오픈소스 프레임워크다. ESP32 같은 임베디드 보드에서 센서와 제스처 데이터를 다루고 Wi-Fi, OSC, BLE 등을 통해 무선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다. 덕분에 이전에는 유선으로 사용하던 센서 시스템을 무선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고, 실제 Fest-M 연주에서도 그 방식을 사용했다.
나에게는 이것이 축제 이후까지 이어진 네트워킹의 가장 분명한 결과였다. 몬트리올에서 만난 테크니션에게 배운 기술과 이후에 이어진 피드백이 한국에 돌아온 뒤 실제 작업의 형태를 바꾸는 데까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MUTEK은 사람들에게 서로 네트워킹 하기를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며칠 동안 같은 도시 안에서 여러 장소를 오가고, 같은 공연을 보고, 같은 바에 앉고, 같은 사람과 여러 번 마주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었다.
한편으로는 로비에 사람들을 모으고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공식적인 네트워킹 자리를 마련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축제의 여러 공간과 프로그램 사이를 이동하며 우연히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게 했다. 하나는 의도적으로 마련된 만남이고, 다른 하나는 우연이 반복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만남이었다.
어쩌면 축제가 만남을 설계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인지도 모른다.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발견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 스몰토크를 작업 이야기로 만들고, 테크니션을 친구이자 동료 아티스트로 다시 만나게 만드는 것.
MUTEK에서 내가 경험한 만남들은 대부분 계획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많은 우연이 반복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며칠 동안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MUTEK은 몇 개의 좋은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공연장 사이를 걷던 길, SAT 앞의 바, 피크닉, 우연히 다시 만난 사람들, 함께 춤췄던 테크니션, 인터뷰를 했던 아티스트, 그리고 공연을 정말 보러 와준 우버 기사까지. 그리고 축제가 끝난 뒤에도 이어진 대화와, 그 대화가 실제 작업으로 연결된 경험까지 포함되어 있다.
축제가 끝난 뒤에도 연락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축제가 설계한 만남은 축제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축제가 끝난 이후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쓴이]
2026 APE CAMP Global Connect 참여자 손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