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관계에 기반한 공연 멤버십
공연계에서 멤버십 마케팅은 안정적으로 고정 관객을 확보하기 위한 고전적인 마케팅 방법으로 자주 언급된다. 공연계 멤버십 프로그램은 유통이나 다른 분야의 멤버십 프로그램에 비해 한정된 집단을 대상으로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어느 곳에서도 제공할 수 없는 자신만의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이용한 회원 서비스가 가능하므로 멤버십 운영의 우월성을 갖게 되지만, 그 우월한 혜택을 원하는 사람들이 한정돼 있다는 점 때문에 확장성이 적다.
공연은 무한 복제하거나 재생산할 수 없는 한정 상품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소멸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실제 티켓이 오픈했을 때 안정적인 구매율을 확보하지 못하면 리스크가 크게 발생한다. 공연 제작사 입장에서 멤버십은 충성도 높은 고정 관객을 통해 안정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다. 반면 관객 입장에서 멤버십은 특별한 서비스를 받으며 조금 더 유리한 환경에서 공연 관람 혜택을 주어서 실질적인 이익 이외에 호의적인 감정을 얻게 된다.
일본 극단 ‘시키(四季)’의 경우 1984년부터 운영한 멤버십 프로그램의 유료 회원이 무려 25만 명에 이른다. 시키가 회원들에게 주는 혜택은 단순하다. 회비(오프라인 잡지 배송 3,300엔, 온라인 잡지 구독 2,200엔)를 내면 일부 공연의 할인 혜택과 시키가 발행하는 공연잡지 ‘라 아르프(ラ・アルプ)’를 제공하고 선 예매 권한을 부여한다. 시키는 멤버십을 통해 안정적인 작품 운영을 도모한다. 2021년 6월 신작인 ‘겨울 왕국’은 회원들의 선 예매와 단체 예매만으로 1년 치 티켓이 거의 다 팔렸을 정도다.

매거진 ‘라 아르프(ラ・アルプ)’
국내에서도 지속해서 공연 콘텐츠를 제공하는 극단이나 공연장이 충성도 강한 회원을 확보하기 위해 멤버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유료 멤버십을 운영하는 곳은 콘서트 관객을 주 대상으로 하는 예술의전당과 롯데콘서트홀이 대표적이다. 국내 클래식 시장에서 해외 유명 필하모닉의 내한 공연이라 하더라도 1회 이상 공연하기 힘들다. 그만큼 관객층이 얕아 공연장으로서는 극장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충성도 있는 관객 확보가 중요하다. 반대로 클래식 마니아 관객은 적은 공연 횟수에서 좋은 좌석을 선점하길 원한다. 그래서 유료 회원에게 가장 중요한 혜택은 선 예매이다. 모두 할인율이나 추가 혜택 등에 차등을 두는 등급형 유료 멤버십 제도를 운영하지만, 회원 등급에 상관없이 유료 회원이라면 선 예매를 할 수 있다.
무료 멤버십을 운영하는 단체들은 장르의 관심과 더불어 단체에 충성도 높은 회원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편이다. 무료 멤버십을 운영하는 대표적인 단체로 ‘LG아트센터’, ‘신시컴퍼니’, ‘HJ컬쳐’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관람 실적에 따라 일반 회원과 우수 회원으로 구분해 우수 회원에게 높은 할인율과 더 많은 혜택을 준다. LG아트센터의 경우 일반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가입만 하면 되지만, 지난 1년 동안 10회 이상 공연을 관람하거나 100만 원 이상 구매한 경우 다음해에 우수 회원 자격이 주어진다. 신시컴퍼니 역시 LG아트센터와 유사하게 등급을 나눠 운영한다. 단지 종종 신시컴퍼니는 멤버십 회원을 쇼케이스 등 특별 이벤트에 초대하는 등 특별 혜택을 제공한다. 대학로 뮤지컬 마니아를 주 타깃으로 하는 작품을 주로 선보이는 HJ컬쳐는 더 세분화한 기준으로 다양한 등급의 멤버십을 운영하면서 단체에 충성도 높은 회원을 양성하고 있다.
공연 단체들이 멤버십 제도를 운영하는 부차적인 이유는 마케팅을 위한 관객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체들은 멤버십 운영을 통해 기본적인 마케팅 데이터에 활용할 수 있는 회원 정보를 얻는 동시에 회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해당 작품의 만족도를 파악하기도 한다. 멤버십은 기본적으로 거래의 원리로 유지되지만, 주최사와 회원과의 밀접한 관계를 토대로 한다. 공연 멤버십은 감정과 관계의 밀도가 다른 분야의 멤버십보다 크다. 국립극단은 유료 회원과 무료 회원을 병행한다. 국립극단의 멤버십 제도가 다른 점이 있다면 단체와 작품에 애정을 갖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점이다. 2021년까지 운영했던 ‘읽어양득(일거양득)’과 같은 회원 참여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읽어양득’은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희곡을 회원들과 즉석에서 배역을 정하고 읽어보는 프로그램이다. 회원들에게 작품과 가장 먼저 만나는 특별한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단체와 작품에 대한 애정을 갖게 한다. 국립극단 작품이 초반 사전 예매율이 40~50%대로 상당히 높은 데에는 멤버십 프로그램을 통해 연극과 극단 자체에 애정을 갖게 된 회원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크게 한몫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