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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30주년의 의의를 다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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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여선희(한국문화예술위원회 미술관운영팀 과장)·박여민

5월,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전 세계인이 모이는 예술의 도시로 옷을 갈아입는다. 2025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이 5월 10일에 막을 올리기 때문이다. 1895년 시작된 베니스비엔날레는 세계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글로벌 예술 축제로서 당대 예술계의 경향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지향점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하는 자리로 성장했다. 현재 미술전과 건축전이 격년으로 열리고 있는데 1980년에 시작된 건축전은 올해로 19회째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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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 건립 30주년,
유기적 생명체로 공존하는 건축의 재발견

 

올해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이 개관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 1995년 건립된 한국관은 올해 카타르관이 설립되기 전까지는 자르디니 공원에 들어선 국가관 중 가장 늦게 세워진 것이었다. 고(故) 김석철 건축가와 이탈리아 건축가 프랑코 만쿠조(Franco Mancuso)가 공동 설계했는데 공원 내의 나무를 한 그루도 베지 않고 시민 공간으로 기획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번 한국관의 전시 주제인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은 이러한 한국관의 건축을 탐구함으로써 그간 수많은 작가와 작품이 오고 간 파빌리온의 의미를 ‘전시의 집’이라는 관점에서 재고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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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 포스터 및 전시PR 이미지 ⓒ2025 한국관 추진단

 

우리에게 익숙한 전래동요이기도 한 <두껍아 두껍아>는 아이들이 흙으로 집을 짓는 놀이를 할 때 부르는 노래로, 가사에는 집에 대한 우화가 가득하다. 이를 활용해 전시 제목을 정한 데는 다층적 의미를 지닌 유기적 생명체로서 한국관을 바라보고 읽으며 다시 쓰겠다는 전시 의도가 담겨 있다. 특히 두꺼비는 동서양 문화권 모두에서 재생과 변화를 상징하는 설화적 존재이므로 이를 통해 전시의 주제를 좀 더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올해 한국관의 예술감독은 건축 전문 큐레이터 집단 CAC(Curating Architecture Collective)가 맡았다. CAC는 그간 한국관의 예술감독을 맡은 이들 중에서 가장 젊은 세대로, 이번 전시는 전업 건축 큐레이터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최초의 전시이기도 하다. 이들은 공원의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지어진 한국관을 자연과 건축의 물리적 지속가능성을 드러내는 존재로 보았다. 이와 더불어 참여 작가 4명은 한국관 아카이브를 조사한 후 그간 드러나지 않은 한국관의 의미를 보여주기 위해 파빌리온을 해체하고 재조립했다. 그동안 한국관의 역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숨은 존재를 화자로 내세워 다양한 존재가 공존하는 한국관의 의미를 돌아보고(이다미), 몇 천만 년 전에 묻혀 있던 가상의 땅속 이야기를 통해 자르디니 공원의 원초적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앙예나) 등 한국관을 중성적인 전시 장소가 아닌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 유기적 생명체로서 바라보고 그 안에 숨은 변화와 재생, 공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및 운영을 총괄하는 여선희 과장을 만나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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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이다미, <덮어쓰기. 덮어씌우기>, 2025 ⓒ이다미 ②양예나, <파빌리온 아래 삼천만 년>, 2025 ⓒ양예나
③김현종, <새로운 항해>, 2025 ⓒ김현종 
 박희찬, <나무의 시간>, 2025 ⓒ박희찬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특징을 설명해 주세요.

한국관은 1995년 한국의 건축가 고(故) 김석철과 이탈리아 건축가 프랑코 만쿠조가 공동 설계한 건축물입니다. 그런데 흔히 생각하시는 직육면체 형태의 화이트 큐브와는 모습이 많이 다릅니다. 한국관은 19개의 모서리를 가지고 있고 직선이 아닌 여러 개의 곡면을 품고 있으며 외관은 투명한 유리와 철제 골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국관 초기 건립 당시, 자르디니 공원 내의 수목과 지형을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베네치아시의 지침에 따라 설계되면서 이렇듯 독특한 구조의 건축물이 나오게 되었는데요, 유리로 된 곡선형 벽면 탓에 한국관은 전시하기에 매우 불편한 공간이라는 평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달리 해석하면 인간에게는 다소 불편한 공간이지만 비인간과는 가장 조화를 이루는 국가관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나무뿌리 한 가닥, 풀 한 포기, 흙 한 줌 해치지 않기 위해 여러 번 휘어지고 꺾여진 방식으로 지어진 한국관은 그 태생부터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해 왔다는 점에서 미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비엔날레 한국관의 공동 설계자인 프랑코 만쿠조 교수와의 대담이 진행되었고 한국관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기증받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밝혀진 한국관만의 특징은 무엇이며 이렇게 밝혀진 이야기가 이번 전시나 구상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만쿠조 교수님의 기증 자료에는 한국관 초기 도면과 서신, 베네치아시의 승인을 득하기까지 제출된 여러 행정 서류와 주요 사진 기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해 한국관 전시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은 한국관의 초기 서사와 의미를 되짚어 보면서도 참여 작가 네 분이 각각 한국관이 쌓아온 시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하면서 한국관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확장해 나갑니다. 국가관과 나무의 관계성이 비단 한국관만의 고유한 특징은 아니지만 이번 전시에서 나무에 대한 존중을 공통 키워드로 품고 있는 국가관들의 연대를 상상한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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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 준공 당시 전경(좌) 및 한국관 모형(우) ⓒ만쿠조&세레나 건축사무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제공.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은 한국관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전시물로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설치된 개별 작품들의 의미도 크지만 좀 더 넓은 시야로 전체를 바라볼 때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번 전시는 한국관을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유기체로서의 한국관은 주변의 다양한 존재와 이웃하며 살아오고 있는데요, 한국관을 둘러싼 수목들과 필로티 하부에 서식하는 땅의 존재, 한국관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고양이까지… 확장된 시공간 안에서 한국관과 더불어 살아가는 다양한 존재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그 밖에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맞이하여 특별히 준비하시는 것이 있나요?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프리뷰 기간에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건축포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포럼의 제목은 〈비전과 유산: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년〉(Vision and Legacy: 30 Years of The Korean Pavilion at La Biennale di Venezia)입니다. 한국관 공동 설계자인 프랑코 만쿠조 교수님을 포함하여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 연구자 마르코 물라차니(Marco Mulazzani) 교수님, 2002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김종성 교수님 그리고 201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소장님께서 발제자 및 토론자로 참여하실 예정입니다. 프리뷰 기간에 베네치아를 방문하실 예정이시라면 건축포럼을 통해 한국관을 더욱 풍성하게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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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전 세계 예술인이 모이는 축제의 장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기간에 베네치아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한국관 외에도 도시를 풍성하게 채우고 있을 비엔날레의 주요 행사를 미리 확인하면 좋을 것이다. 베니스비엔날레 전시는 19세기 조선소를 활용한 ‘아르세날레(Arsenale)’ 전시장과 국가관들이 모여 있는 ‘자르디니(Giardini)’ 공원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비엔날레 주최 측이 임명한 예술감독의 지휘 아래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모이는 국제전 본 전시와 각 국가가 자율적으로 기획·운영하는 국가관 전시를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의 본 전시 테마와 그 밖에 눈여겨보면 좋을 이모저모에 대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여선희 과장과 나눈 대화를 이어서 소개한다.



2025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본 전시의 테마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제19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은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MIT 교수인 카를로 라티(Carlo Ratti)가 예술감독을 맡았습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의 핵심 키워드는 라틴어 ‘Intelligens’인데요, 전시 타이틀을 자세히 보시면 ‘intelligens’에서 공동체를 뜻하는 'gens'에 밑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intelligens’는 라틴어로 지성(intelligence)의 어원이 되는 단어인데 카를로 라티는 그 안에 숨어 있는 ‘gens(집단, 무리)’를 강조함으로써 지성이 ‘집단적이고 관계적’이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계기상기구(WMO)의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은 지구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시기로 기록되었는데요. 이러한 기후 위기 속에서 카를로 라티는 “불타는 세상에 맞서기 위해, 건축이 우리 주변의 모든 지성을 끌어 모아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지칭하는 “모든 지성”에는 자연적(Natural)인 것, 인공적(Artificial)인 것 그리고 집단적(Collective)인 것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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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라티 ⓒLA BIENNALE DI VENEZIA

 


올해 국가관에서는 총 66개국의 전시가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그중 4곳(아제르바이잔공화국, 오만 술탄국, 카타르, 토고)은 처음으로 참여하는 국가이고요. 특별히 주목받는 국가관이나, 여선희 과장님께서 흥미롭게 보시는 곳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아무래도 카타르관에 관심이 갑니다. 카타르관은 1995년 한국관 건립 이후 30년 만에 자르디니 공원 내에 새로 지어지는 국가관인데요. 카타르는 올해 아카데미아 다리 근처에서 열리는 장외 전시와 더불어 자르디니에서도 국가관 개막 행사를 예정하고 있어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밖에 2025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 눈여겨볼 만한 내용으로는 무엇이 있나요?

올해는 국제전이 진행되던 센트럴 파빌리온이 리모델링 공사로 휴관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카를로 라티는 ‘살아있는 실험실(living laboratory)’로서 베네치아시 곳곳을 활용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어요. 아르세날레를 비롯한 도시 전역을 활용하여 작품 설치와 실험적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포럼, 필름 스크리닝, 퍼포먼스, 워크숍 등 다양한 공공 프로그램이 열릴 예정입니다. 한편, 올해 건축전은 오픈 콜을 통해 본 전시 참여 작가를 구성한 점도 눈에 띕니다. 오픈 콜을 통해 선정된 프로젝트에는 건축가, 엔지니어, 수학자, 기후학자, 철학자, 예술가, 셰프, 작가, 농부, 패션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할 예정입니다. 한국에서도 유망하고 참신한 여러 건축가의 프로젝트가 선정되었는데, 놓치지 마시고 꼭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비엔날레 기간 동안 도시 전체에서 다양한 행사가 동시에 열립니다. 축제 기간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분에게 비엔날레를 좀 더 잘 즐기기 위한 팁을 주신다면요?

체력이 아닐까요?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뿐만 아니라 베네치아 본 섬 내의 주변 지역과 주데카섬까지 매우 다양한 장소에서 국가관 전시와 병행 전시, 기타 전시가 열립니다. 하루 3만 보 정도는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체력과 편안한 신발을 꼭 챙겨 오시길 바랍니다.

*본 웹진에 수록된 원고는 필자 개인의 견해를 담고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여민
박여민
프리랜서 에디터

예술과 문화, 산업 등 다양한 분야의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지역성이 담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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