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벗어나 여름밤의 낭만을 공유하는
정동진독립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는 강릉에서 영화가 좋아서 모인 이들의 손으로 시작되었다. 회비 한 푼 두 푼을 모아 공간과 프로젝터, 갖가지 비디오테이프를 모으던 강릉씨네마떼끄 회원들은 1999년, 강릉 시민과 관광객에게 독립영화를 선보일 영화 축제를 한국독립영화협회와 함께 열기로 했다. 큰 후원도 없이 직접 비계를 쌓고 사다리에 올라 합판에 하얀 페인트칠을 해가며 스크린을 만들었다는 옛날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무모하지만 참 대단했구나 싶었다. 20세에 처음 룰라(장기 자원 활동가)로 영화제에 참여했던 필자 또한 ‘땡그랑동전상’의 깡통에 붙일 영화 제목 종이를 오려서 붙이고, 후원자에게 보낼 티셔츠를 접어 포장했던 기억이 선하다. 그리고 영화제 당일이 되면 우리의 어설픈 손길이 모여 올해도 영화제를 무사히 열었다며 좋아했다. 물론 정든 에어스크린이 생명을 다하고 22회에 터져 버려서 가설 스크린이 들어서고, 손수 꾸미던 디스플레이는 전문 업체에 맡겨 제작하는 등 영화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핸드메이드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영화제를 함께 만들었던 옛날의 즐거움과 낭만은 여전히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편하게 돗자리를 깔고 쑥불 향을 맡으며 독립영화를 보던 순간, 비 없이 영화제를 즐길 수 있게 해달라는 염원이 담긴 우리의 토템인 우산살소녀, 영화제의 기억과 전하고픈 마음을 담는 별밤우체국, 비가 오면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은 체육관으로 들어가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영화를 봤던 추억 그리고 이 모든 낭만을 표현한 슬로건인 “별이 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 이 모든 것에는 작은 공간에서 머리를 맞대고 영화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던 영화제 선배들의 순간이 담겨 있으며, 영화제에서 여름을 보낸 관객의 순간도 담겨 있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독립영화를 매개로 낭만적인 여름을 함께 나누는 것. 이것이 바로 ‘정동진독립영화제’라고 생각한다.
제26회 정동진독립영화제 현장 사진(2024) c정동진독립영화제
제26회 정동진독립영화제 현장 사진(2024) c정동진독립영화제
제1회 정동진독립영화제 현장 사진(1999) c정동진독립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마스코트 ‘우산살소녀’ c정동진독립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동전상’ c정동진독립영화제
올해 정동진독립영화제의 관객 수는 1만 4,553명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남겼다. 이례적인 기록이 너무나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공간의 수용 인원 한계를 더더욱 실감하였다. 운동장을 꽉 채운 관객들 사이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영화제 시설을 이용하기 위한 대기 줄이 너무 길어서 모두 불편을 겪었다. 관객 규모에 비해 관리 인원이 부족한 것을 체감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인해 뾰족한 수는 없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을 꼽자면 지역에는 영화제를 함께 꾸려갈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매년 사무국 인원의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 지역 영화인 그리고 여러 영화제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타 지역의 스태프가 참여하고 있지만 지역 영화의 지원 예산이 삭감되며 지역 영화 생태계는 물론이고 독립영화의 제작 환경도 어려워진 지금,
전문 인력의 충원 또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제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20회부터는 사무국 외에 집행위원회와 선정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들 부서는 정동진독립영화제에 대해 잘 알 뿐만 아니라 상영, 창작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영화인들로 구성되었다. 또한 강릉씨네마떼끄 회원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의 참여 기회도 넓히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최근에 영화제 사례를 발표하러 간 자리에서 배리어프리 버전 상영과 수어 통역에 주목한 관객의 얘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상영작을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상영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는 말에 ‘정동진독립영화제를 계속해서 찾아가고 지지하는 이유’를 만들어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느꼈다. 영화제와 독립영화가 아직 낯선 지역 환경에서 우리 영화제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설득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관객이기 때문이다.
신영극장에서 관객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간혹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의 좋은 추억을 안고 강릉으로 이주해 온 관객을 만나곤 한다. 바다와 서핑에 이어 강릉이란 도시에서의 삶이 기대되는 계기 중 하나가 정동진독립영화제라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이야기이다. 이들은 영화제를 계속 찾아주는 관객이자 가까이에서 영화제를 만들어가는 동료가 되곤 한다. ‘이런 식으로 영화제가 계속될 수도 있겠구나’ 하며 즐거운 그림을 그리게 된다.
제26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단체 사진(2024) c정동진독립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문자·수어 통역 현장 사진 c정동진독립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문자·수어 통역 현장 사진 c정동진독립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