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가교를 놓는
‘공연 코디네이터 타카하라 요코’
영단어 코디네이터(Coordinator)에는 “무언가를 조정하거나 통합하여 하나의 성과를 도출한다.”라는 의미가 있다. 나는 공연 코디네이터로서 한국과 일본의 작품을 소개하고, 한일 배우들이 상호 교류하며 활동할 수 있도록 조정하여 한일 양국의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통역과 번역을 비롯해 작품의 매입 계약, 회의 조정, 시장 조사, 트렌드 파악, 보고서 작성까지 다양한 일을 수행한다. 또한 한국 창작뮤지컬을 번역해 일본 제작사와 미디어에 소개하고, 일본 배우가 한국의 뮤지컬 워크숍에 원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처음으로 한일 공연 교류에 참여하기 시작한 때는 201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한류의 붐이 크게 일었고, 한국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뮤지컬에 출연하면서 한국 뮤지컬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당시 나는 서울에서 치과 마케팅 일을 하면서 블로그를 통해 한국 뮤지컬과 배우들을 일본 관객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 관객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파워 블로거가 되었고, 일본 제작사에서 “대학로에서 유행하는 작품, 한국 뮤지컬의 트렌드를 알려 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본어와 영어, 한국어에 모두 능했기 때문에 브로드웨이와 한국, 일본을 잇는 비즈니스에 수월하게 참여할 수 있었다.
한국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출연하는 뮤지컬이 일본에 진출하는 사례는 줄어들었지만, 한국 뮤지컬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높아졌다. <스모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나빌레라>, <전설의 리틀 농구단> 등 한국의 우수한 뮤지컬을 라이선스 형태로 일본에 판매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한국 제작사가 일본에 직접 가서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대본과 음악 등만 판매하는 스몰 라이선스(Small License) 방식이 일반적이다 보니 현지화 과정은 필수적이다. 이때 코디네이터로서 한일 제작사의 요구를 잘 조율하는 일이 중요하다. 일본 제작사는 한국 특유의 표현과 정서를 일본 관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바꾸기를 원한다. 일본 창작진의 이런 아이디어를 한국의 원작자에게 전달하고 섬세하게 조율하는데, 이 과정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는지에 따라 일본 초연의 성공 여부가 크게 좌우된다.
한국과 일본 뮤지컬 배우들의 인적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뮤지컬 배우 양준모가 일본 대형 제작사 ‘토호(東寶)’의 <레미제라블> 장발장 역에 도전할 때 오디션부터 계약, 홍보 활동을 모두 일체를 대리했고, 뮤지컬 배우 김수하가 <미스 사이공> 킴 역에 지원할 때도 도왔다. 김수하 배우가 오디션 과정에서 캐머런 매킨토시(Cameron Mackintosh)의 눈에 띄어 일본보다 먼저 영국 무대에 데뷔하게 됐을 때는 영국 활동을 돕기도 했다.
2023년은 한일 뮤지컬 교류가 크게 진일보한 해다. <마리 퀴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전설의 리틀 농구단> 등 한국에서 검증받은 양질의 작품이 일본의 연출과 배우들에 의해 더 발전적인 작품으로 현지화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주로 중국에서 이루어졌던 한국 뮤지컬의 글로벌 유통 사업인 ‘K-뮤지컬 로드쇼’가 도쿄 중심지인 유라쿠조에서 개최됐다. 토호와 시키(四季), 호리프로(ホリプロ), 다카라즈카(寶塚) 등 일본을 대표하는 제작사의 프로듀서들을 포함해 약 100여 명의 일본 프로듀서가 참여해 성황리에 행사가 마무리되었고, 한국 뮤지컬에 대한 일본 공연계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 포스터 Ⓒ리틀농구단 제작위원회(リトルバスケットボール団 製作委員会)
뮤지컬 <마리 퀴리> 포스터 ⒸAMUSE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토호(東寶)
한일 간의 공연 교류는 점점 확대되고 활발해질 전망이다. 올해만 해도 필자가 참여한 뮤지컬 5편이 일본에서 공연된다. 연말에는 한일 제작사와 창작자가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한국 뮤지컬 작품을 일본에 소개하고 수출했다면 올해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2.5차원 뮤지컬’을 한국 시장에 소개할 기회가 생길 것 같다.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인 <진격의 거인>, <주술회전>, <귀멸의 칼날> 등을 원작으로 한 2.5차원 뮤지컬은 일본에서 약 230억 엔(약 2,057억 원) 규모의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배우뿐만 아니라 한국의 뮤지컬 창작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만큼, 한국 창작진이 일본 뮤지컬에 참여하거나 반대의 경우도 발생하는 등 다양한 협업과 교류가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