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절된 세계에 가교를: 문화 간 협업과 연대
2026 APECAMP 1st Mission
분절된 세계에 가교를: 문화 간 협업과 연대

"우리는 서로의 곁에서 살아가지만, 함께 살아가지는 않는다." 올해 에이프캠프의 첫 번째 미션에 응답한 한 팀의 기획서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국경과 언어, 세대와 플랫폼을 따라 세계가 잘게 쪼개지는 시대에 예술과 기술의 융합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지난 6월 13일부터 16일까지 코엑스 마곡에서 열린 제5회 에이프캠프(APE CAMP 2026)는 이 물음을 첫 번째 미션으로 삼았다. 국내외 청년 예술가(Artist)·기획자(Producer)·기술전문가(Engineer) 120인이 3박 4일 동안 팀을 이루어 두 개의 미션을 수행했고, 첫 번째 미션에서는 두 개의 프로젝트가 선정되었다. 이 글은 두 편으로 나누어 싣는 미션 리포트의 첫 장이다.
에이프캠프에서 미션은 단순한 과제가 아니라 사회적 의제를 창작의 언어로 번역하는 장치로 봄이 더욱 적절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이 캠프는 사회 문제나 협력 기관의 의제를 반영해 미션을 설계하고, 즉석에서 결성된 팀들은 캠프 기간 내내 그 질문을 붙들고 융복합 프로젝트 기획안을 구체화한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몬트리올의 SAT, 버닝맨 프로젝트 등에서 활동하는 해외 멘토와 국내 각 분야 전문가들의 피드백을 수렴해 최종 피칭에 이르는 과정은, 융합이 단계적인 실천임을 보여준다. 올해의 첫 미션은 이 실천을 국제 협력의 지평 위에 올려놓았다.
첫 번째 미션은 싱가포르예술위원회(NAC)와의 합작으로 마련되었다. 주제는 '문화 간 협업과 연대(Cross-cultural Collaboration & Unity)'이다. 점점 더 분절 되어가는 세계에서, 예술과 기술의 융합은 어떻게 서로 다른 차이와 문화를 이어주는 가교가 될 수 있는가. 미션의 전제는 명료하다. 전 지구적으로 사람의 이동이 늘어날수록 서로 다른 신념과 문화, 정체성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상이 되고, 상호 이해와 공감을 위한 공통의 매개가 없다면 분절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예술과 기술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스스로를 표현하게 하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싱가포르, 두 예술위원회가 함께 미션을 설계했다는 사실 자체가 문화 간이라는 수식어의 첫 번째 실천이었던 셈이다.
눈여겨볼 것은 미션이 요구한 사유의 순서다. 참여자들은 먼저 자신이 겪고 있는 분절의 구체적인 장면, 곧 언어와 세대, 지역과 온·오프라인의 간극을 지목했고,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 실제로 그 간극을 좁힌 선례와 그것이 효과적이었던 이유를 검토 했으며, 그 위에서 어떤 매체와 기술, 대상을 선택할지, 이 프로젝트가 만들어낼 구체적인 변화는 무엇인지 답했다. 분절이라는 거대한 화두에서 출발하되 연대라는 말이 구호로 증발하지 않으려면, 그것은 결국 누군가의 감각과 신체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종 피칭과 심사를 거쳐 두 개의 프로젝트가 선정되었다. 선정은 미션이 피칭에 반드시 담도록 요구한 네 개의 항목에 이미 내재해 있었다. 첫째, 우리가 정의한 문제, 곧 어떤 분절을 다룰 것인가. 둘째, 우리의 접근, 어떤 예술과 기술의 융합인가. 셋째, 우리의 제안, 구체적인 컨셉과 시나리오. 넷째, 예상되는 임팩트, 누가 어떻게 연결되는가. 네 항목은 문제의식이 클수록 해법은 작고 정확해야 한다 목표를 향한다. 선정된 두 팀은 이민 사회의 긴장과 전쟁이라는, 분절의 가장 일상적인 얼굴과 가장 극단적인 얼굴을 각각 골랐고, 후각과 청각이라는 서로 다른 감각으로 답했다.

향으로 길을 찾다 — 팀 4, 인터랙티브 향 설치
팀 4는 이민 사회의 균열을 다뤘다. 덴마크의 평행사회 정책과 프랑스의 종교 상징 금지법이 보여주듯, 갈등에 대한 통상적 처방은 동화(同化)를 요구해 왔다. 팀은 이 방향을 뒤집어, 강제적 동화가 아닌 공존을 우선하는 관점의 전환을 제안한다. 이들은 문화적 차이의 은유로 향을 선택했다. 김치와 커리, 식용유와 두리안. 특정한 냄새는 한 문화의 기억이자, 때로 타자를 향한 정서적 거부감이 응결되는 표면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어떤 향에는 강한 애착을, 어떤 향에는 거부감을 갖는다는 것, 그리고 향은 언제나 특정한 맥락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이 팀의 관찰이다. 작품에서 참여자들은 둘씩, 혹은 무리를 지어 완전히 어두운 미로로 들어선다. 바닥은 모래로 덮여 있고, 시각이 차단된 공간에서 소리와 촉각, 서로의 존재, 그리고 갈림길마다 분사되는 서로 다른 향에 의지하게 된다. 이 작품의 구조적 전제는 하나의 균질한 향만으로는 미로를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서로 대비되는 향들이 공존하기에 비로소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고 출구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차이는 장애물이 아니라 항법의 조건이 된다. 출구에서 만나는 인터랙티브 지도는 각자가 어떤 향의 곁에 오래 머물렀는지 되비추고 각 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일러 준다. 특정 집단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이 향유할 프로그램으로 자라날 여지도 넉넉하다. 이 작품이 사회적 긴장의 즉효약이 아니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성찰할 기회라고 짚는 팀의 신중함 또한 미덥다.
무기를 조율하다 — 팀 16, Misfire
팀 16의 〈Misfire〉는 1914년 크리스마스 휴전을 그린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Joyeux Noël)〉에서 출발한다. 참호전의 한복판, 독일군 테너 병사가 부르기 시작한 고요한 밤에 스코틀랜드 병사의 백파이프가 화답하고, 병사들이 무인지대로 걸어 나와 초콜릿과 샴페인, 사진을 나누던 어느 밤 말이다. 휴전이 끝난 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총을 쏘는 일이 불가능해졌음을 깨닫는다. 팀 16은 노래 한 곡이 적대의 경계를 허물 수 있다는 이 실화의 메시지를 오늘의 기술로 다시 쓴다. 수류탄은 던져질 때마다 자갈이 춤추는 셰이커로, 총은 트롬본으로, 사격 표적은 풍부한 배음을 내는 징으로 치환된다. 오케스트라 피콜로와 클라리넷은 단거리와 장거리 저격수의 자리를, 워터 드럼은 오케스트라의 템포를 지키는 역할을 맡고, 백파이프는 병사가 등에 메는 무거운 배낭을 대신한다. 참호를 파던 삽은 바이올린과 결합해 쓰일 때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K.626)을 연주한다. 이 악기들을 연주하는 것은 다름 아닌 군인들 자신이다. 각 악기에 장착된 마이크가 수집한 소리는 드론에 탑재된 믹서로 전송되어 하나의 음악으로 합쳐지고, 스피커를 단 드론들은 감시와 폭력 대신 화합과 음악을 싣고 마을과 도시 위를 난다. 40헤르츠에서 2만 헤르츠에 이르는 음역을 최대 121데시벨로 송출하는, 말하자면 하늘을 나는 확성기다. 파괴 대신 멜로디를 전달한다는 팀의 문장은 선언이라기보다 설계도에 가깝다. 무기의 형상과 작동을 정확히 알아야만 그것을 악기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두 프로젝트는 각기 다른 감각을 경유하지만 같은 통찰에 도착한다. 연결은 차이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차이를 조율하는 일이라는 통찰이다. 균질한 향만으로는 길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는 미로와, 서로 다른 악기들의 소리가 하나의 음악으로 섞여 드는 하늘은, 같은 문장의 두 가지 표기법처럼 보인다. 선정된 프로젝트들은 에이프랩의 실험활동 지원을 거치며 구체화되고, 그 여정은 오는 12월의 프로젝트 공유회와 2027년 1월의 전시·쇼케이스로 이어질 예정이다. 종이 위의 시나리오가 실제 공간과 관객의 신체를 만날 때, 가교라는 은유는 비로소 검증대에 오른다. 분절의 시대에 예술과 기술이 놓을 수 있는 다리의 너비를, 우리는 곧 실물로 가늠해 보게 될 것이다.
[글쓴이]
APECAMP 2023 참여자 · 2026 협력기획자 이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학사 ·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미디어아트전공 석사 졸업
문화예술 현장과 정책 사이의 접점에 관심을 두고 실천과 연구를 병행하는 창작 기반 연구자이다.